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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Jul 22. 2023

콩밭 매는 아낙네

칠갑산 산행기

콩밭 매는 아낙네상

이른 시간 콩밭 매는 아낙네상 앞에 선다. 칠갑산에 올 때면 언제나 이 아낙을 제일 먼저 만난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아낙네 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인다. 흰색 페인트가 묻었는지, 도색이 벗겨져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아낙네 눈이 보기 흉하게 변다.

"혹시 백내장이라도 걸렸나."


무던한 표정과 또렷한 입술 모양을 가진 미인형의 젊은 아낙네 모습이었는데, 부쩍 나이 들어 보이고 호미 든 손 병든 사람처럼 힘이 다. 며칠 전 폭우 때문에 이리된 걸까....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콩밭 매는 아낙네를 흥얼거리며 장곡사 방향으로 향한다. 정상까지는 3km 남짓한 거리, 길이 험하지 않으니 한 시간 정도로 잡고 서두른다. 반바지 차림에 운동화처럼 생긴 등산화를 신은 탓에 발걸음이 가볍다.


장곡사 앞에 이르니, 주차된 차량만 몇 대 있을 뿐 산사가 조용하다. 사찰을 옆으로 비껴 곧장 가파른 등산이 시작된다. 며칠 전 폭우 때 세워진 입산통제 경고판이 그대로 서 있지만 무시하고 나무 계단을 빠르게 치고 오른다.


덥지 않은 날씨가 그나마 다행이지만, 먹을 거라곤 생수  통과 사과 반쪽이 전부라 얼른 다녀와야 한다.

조망 없는 숲길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한참을 지나 '아흔아홉구비' 촬영장소라는 안내와 함께 첫 조망이 터진다. 푸른 녹음 위로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을 즐기며 잠시 땀을 식힌다.


다시 정상으로 향하니, 이내 "山"이라 적힌 정상에 도착한다. 조망이 뛰어난 곳은 아니지만 널찍한 평지 한 귀퉁이로 넝쿨나무와 조화를 이룬 평상 하나가 한가로이 놓여 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음식 나눠 먹으며 쉬어 가기에 딱 좋아 보이는 곳이다.

저쪽으로 내려가면 천장호 출렁다리를 구경할 수 있지만, 장승공원에 차를 두고 왔으니 원점 회귀를 해야 한다.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 하나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먼저 내려간 산객들을 따라잡았지만 가벼운 인사말만 나누고 급히 앞지른다. 아침을 안 먹고 올라온 터라 산행에 대한 감흥보다 산채비빔밥 생각이 간절한 상황이다.


다시 장곡사에 이른다.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이끌려 하(下) 대웅전 앞으로 나아간다. 맞배지붕 형식을 띤 아담한 대웅전 안으로 스님 뒷모습이 보이고 염불 외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비구스님인가 하는 의구심만 잠시 스칠 뿐 확인할 수 없다. 국보 두 점에 보물도 몇 개 가진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지만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목탁소리 뒤로하고 경내를 돌아 나온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고, 발걸음은 어느덧 밥집으로 향하고 있다.


아직 점심 먹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한 테이블밖에 없다. 딸만 셋인 가족인데, 세 명 모두 비슷한 이미지를 가졌기에 한번 더 눈길이 간다.

산채비빔밥 한 그릇 주문하고 기다리자니, 따님들이 떠드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다 큰 딸만 셋인 가족이라 그런지 음식 주문하는 것부터 의견이 다르고 말이 엄청 많다. 무뚝뚝해 보이는 아빠는 아무 말씀 없으시지만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묻어난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식당을 나서니 올라올 때 만났던 콩밭 매는 아낙네를 또 만난다.


저 아낙네처럼 머리에 수건 두르고 호미로 밭 매는 모습은 어릴 적 흔히 보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밭고랑마다 비닐 덮고 농약을 수시로 뿌려대니, 콩밭 매는 풍경은 없어졌고 '고추 따는 아낙네'만 가끔 볼 수 있다. 


칠갑산은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는 딸과 입하나 덜고자 어린 딸을 시집보내는 모녀간 애절함이 묻어나는 슬픈 산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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