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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Dec 02. 2023

고성산

고성산 산행기

짙은 어둠이 깔리 원곡면사무소 앞으로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일본 순사 정보망을 피해 며칠간 몰래 준비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는 바로 그날이다.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 모인 주민들이 1000 이른다. 갑자기 몰려 을 보고 놀란 정보원은 멀찍이 떨어져서 동태를 살필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더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군중들이 외치는 "조선 독립"이 실제로 이뤄지기라도 한다면, 일본 순사 끄나풀로 활동했던 이력 때문에 저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번뜩이는 횃불과 성난 함성으로 면사무소를 접수한 주민들은 이웃한 양성면으로 나아갈 것을 결의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양성면에는 일제의 통치기구들이 모여있고 일본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동네였으니, 이곳 주민들에게는 적개심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들의 발은 이미 양성고개에 다다랐다.

몽둥이와 횃불을 치켜든 주민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일본인을 쫓아내고 곧 조선 독립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에 부풀었다.


저 아래 내려가면 양성 땅이다. 한 판 결전을 앞두고 전열을 정비하며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각오를 다진다.

그때 한 젊은이가 군중 앞으로 나서 연설을 시작한다. 차분하지만 힘 있는 그의 목소리에서 죽기를 각오한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오늘 밤 기약함이 없이 이렇게 많은 군중이 집합하였음은 천운이다. 제군은 양성경찰관주재소로 가서 일본인 순사와 함께 조선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 순사 이에 응하면 좋으나, 만약 응하지 않을 때에는 자기로서도 할 바가 있다."


"조선은 독립국이 될 것이므로 일본의 정책을 시행하는 관청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두 같이 원곡면, 양성면 내의 순사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서 등을 파괴하라. 또한 일본인을 양성면 내에 거주케 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 일본인을 양성으로부터 물리쳐라. 제군은 돌과 몽둥이를 지참하여 활발히 활동하라."


연설이 끝나자 군중들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또 한 번 젊은이에게 화답한다.


그날의 횃불과 함성이 양성면으로 돌격하여 잠시나마 식민지배를 벗어나 자주권을 회복했고 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후로 이곳은 '만세고개'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 들어섰고, 고성산 오르는 등산객과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의 쉼터로 변했다.


고개에 울려 퍼지던 함성은 세월 속에 묻혀버렸고, 할리데이비슨 엔진소리와 아메리카노 커피 향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가죽재킷과 머플로로 한껏 멋을 부린 라이더들을 힐끗힐끗 구경하며, 휴게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고성산 정상으로 향한다.

고성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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