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은 태백과 정선에 걸쳐있고, 한강과 낙동강이 발원하는 거대한 산이다.
산이 높아, 골이 깊고 고갯길도 넘나들기 험난하다.
해발1330미터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중 가장 높은 고갯길이고, 두문동재 또한 1268 미터에 이른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1000미터 넘는 고봉들이 즐비한 첩첩산중이다.
두문동재(杜門洞峙) 고갯길 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곳이다. 아니 어쩌면 못 나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 있다.
"고려 망국을 슬퍼하며 끝까지 공양왕을 섬기던 충신들이 함백산 아래에 터를 잡고 두문동(杜門洞)이라 이름을 지은 데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적막한 산골에 탄광이 개발되면서부터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지만, 함백산 깊은 곳에 검은 보물이 잔뜩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만항재 산행 들머리 만항재에 내리니, 흩나리는 눈발과 차디찬 냉기가 확 달려든다.
며칠 동안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기막힌 광경을 만들었다.
굵은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목화처럼 활짝 폈고, 얼음 낀 잔 가지는 사슴뿔 모양으로 변했다.
눈고드름 눈 구경하며 30여분쯤 걸으니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이른다.
'1330 운탄고도'라는 안내목이 세워져 있다. '운탄고도'는 탄광에서 캔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던 도로가 트래킹코스로 개발되었다.
도로 양쪽 옆으로 등산객들이 몰고 온 차량들이 빼곡히 들어섰고 오가는 산객들로 북적거린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두 시간 내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고, 태백산으로 이동하면 하루에 두 산을 정복할 수 있는 곳이라, 최단코스를 찾는 산객들이 애용하는 코스다.
운탄고도를 가로질러 함백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평탄한 길이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오르막이다. 해발고도 200미터 정도 오르는 코스다.
다른 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함백산에서는 가장 힘든 구간이다. 길이 미끄럽고, 내려오는 산객들과 마주치는 구간이라 진행이 아주 늦다.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가다 서다를 몇 번 반복하니 잘 정비된 곧은 등산로가 나타나고 세찬 바람이 분다. 바람을 통해 정상이 가까웠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몇 발짝 더 치고 올라 정상에 다다른다.
동그랗게 생긴 특색 있는 정상석이 제일 먼저 보인다. 돌판에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지만, 내용 보다 생긴 모양에 더 관심이 간다.
바깥쪽 테두리는 함백산에 쌓인 눈이고 안쪽 검은색은 함백산 땅속에 묻혀 있는 무연탄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어떤 의미로 디자인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겉과 속이 다른 함백산 이미지를 잘 표현한 정상석이란 생각이 든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이지만 눈발 날리는 날씨 탓에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눈꽃산행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눈이 내리고 있을 때는 볼 게 없고, 폭설 후 햇볕 날 때가 구경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눈(雪)이 눈(眼)을 부시게 하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백산 정상 인증사진 몇 장 찍고 정상석 아래 바위틈으로 끼어든다. 바람을 피해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여유를 부린다. 추운 날씨 탓에 생수병에 칼날 같은 얼음조각들이 생겼지만, 입안에서 천천히 녹여가며 목을 축인다.
함백산 정상 칼바람 맞으며 조망을 실컷 살폈고 배까지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목적지를 향해 또 걸어야 한다. 땀이 식어 한기가 몰려드니 얼른 갈 수밖에 없다. 두문동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중간에 정암사 방향으로 떨어지는 코스다.
능선길은 올라왔던 코스에 비해 눈이 더 많이 쌓였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훨씬 더 탐스럽고, 사슴뿔 같은 얼음도 더 두꺼워진 느낌이 든다. 정상 봉우리가 모진 북서풍을 막아준 덕분에 나뭇가지에 붙은 눈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눈꽃 능선길 중간중간에 주목 나무가 나타나며 산객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보탠다. 저 멀리 북쪽 계곡사이로는 고한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골짜기 왼쪽 옆으로는 하이원스키장 슬로프가 어렴풋이 그려져 있고, 높은 빌딩들이 띄엄띄엄 서 있다.
저곳은 우리네 아버지 세대 광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동네다. 좁고 깊은 골짜기에 돈과 사람이 넘쳐났지만, 광부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 스키장과 골프장, 카지노까지 들어서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 다음 세대에는 함백산과 고한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상상하며, 눈 쌓인 산길을 한 발 한 발 디디며 하산을 서두른다.
함백산 능선과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