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 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
이 시조는 조선시대 김창업이란 선비가 청나라에 다녀와서 지은 시조다. 누구나 출세를 원하면 나라의 근본인 농사는 누가 지을 것이며, 의원이 모든 병을 다 고치면 북망산에 무덤이 저렇게 많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북망산(北邙山)은 중국 낙양성 북쪽에 있는 산인데, 낙양 사람들 묘지가 많았던 탓에 죽어서 가는 저 세상으로 통용되었다.
세월이 흘러 저마다 백세를 꿈꾸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진리에는 변함 없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백세가" 노래처럼 사람들은 북망산에 오르기 보다 이승에 오래 머물기를 간절히 원한다.
장수(長壽) 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신체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무엇 보다도 질 좋은 의료환경이 필수 요소다.
부족한 의사 확보를 위해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40여 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의료정책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지, 몇 명이 적정 선인지 잘 모르지만,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
몇 달 전 손가락이 부러져 집 근처 대학병원에 예약 신청을 했지만, 한 달 뒤에나 예약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날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첫 진료가 그때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하는 수 없이 동네 중소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수술 후 손가락 끝이 시커멓게 괴사 했고, 수술과는 상관없는 엄지손가락까지 저리고 화끈거리는 문제가 생겼다.
수술한 병원에 항의하니, '의료분쟁원'에 의료사고 조정 신청을 하라는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왔다.
새끼손가락 하나 부러져서 병원에 갔는데, 팔병신 된 것 같아 억울하고 괘씸한 생각까지 든다.
사람들은 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지,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중병에 걸렸거나, 큰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당연히 서울로 가려고 할 것이다
300여 년 전 김창업이 살았던 시절 의원과 지금의 의사 간 실력차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우리나라 의사들 실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북망산 붐빌까 겁난다.
등산 좋아하고 건강한 사람도 언젠가는 북망산으로 가야겠지만, 아직 올라야 할 산이 너무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