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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제니 Oct 21. 2021

캐나다는 정말 인종차별이 없을까?

내가 겪은 인종차별 이야기



캐나다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에 항상 랭크되어있고 밴쿠버는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항상 랭크되어있으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이스하고 그 어떤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Sorry'를 입에 달고 살며 모두 매너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캐나다라는 곳은 말 그대로 <환상의 나라>가 따로 없다. 간혹 불친절한 사람들은 '진짜' 캐나다인이 아니라 이민자라는 얘기도 듣기는 했는데 이 말 조차도 인종차별이 아닐까 싶다. '진짜' 캐나다인이 어디 있나? 그래서 이번에는 캐나다에서 당했던 인종차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말할 이야기들은 모두 밴쿠버 살이 초창기에 겪은 일이다. 그중 가만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차도로 내려가서 나를 피해 가던 백인 할아버지도 있었고 앞의 글에서 언급했었던 ICBC의 불친절했던 백인 여자도 있었지만 그 밖에도 세 번 정도가 더 있었다.



나에게 호통치던 백인 할머니


노스밴쿠버로 이사를 하고 익숙하지 않은 길을 찾아다닐 때였다. 버스를 타기에는 40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그냥 걷자 싶어서 론즈데일 키에서부터 어퍼 론즈데일까지 올라가던 길이었다. 새로운 풍경이 시선을 끌기에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내 바로 앞에서 난데없이 큰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으로 걸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백인 할머니가 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오른쪽의 차도로 바짝 붙었다. 그러고 나니 그 할머니는 한 번 더 나를 쓱 훑어보더니 가던 길을 갔다. 넋이 빠져서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고개를 돌리니 그 누구도 우측통행을 지켜서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나에게 호통을 친 할머니 본인조차도 길의 정중앙에서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에이, 기분 탓이겠지. 하지만 그 할머니는 나 아닌 그 누구에게도 오른쪽으로 걸으라는 둥 호통을 치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예민해졌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분풀이를 하는 게 정당화될 수가 있나? 나중에 사람들은 내가 노스밴쿠버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하나도 빠짐없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스밴쿠버에서? 인종차별을? 그럴 리가! 그런 반응은 당연했다. 노스밴쿠버는 나름 부촌으로 그만큼 더 교육 수준이 높을 거라는 인식이 있으니 말이다.



여기 사람 있는 거 안 보여요?


또 다른 일 역시 노스밴쿠버에서 경험했다. 친구를 만나러 다운타운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치 특성상 버스 배차간격이 약 1시간 정도 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버스 도착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놓치면 약속시간에 적어도 30분은 늦게 되기 때문이었다. 약 15분 정도를 기다리니 도로의 끝에서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버스 기사가 나를 보지 못할까 봐 나는 버스 표지판이 있는 바로 아래에 서 있었다. 멀리서부터 버스 기사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당연히 그녀가 버스를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버스를 세우지 않았고 나를 똑바로 보며 나를 그냥 지나쳐갔다. 엥? 소리가 절로 나왔다. 뭐가 뭔지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버스는 분명 정상 운행 중이었다. 간혹 Not in service라고 쓰인 버스는 승객을 태우지 않는데 그 버스는 그렇지도 않았다. 버스가 만원이었냐고?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가 필수였던 그때에 내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느냐고? 당연히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마스크를 쓰고 버스 기사와 아이컨택을 하며 버스 표지판 바로 아래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똑바로 보면서 버스를 세우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결국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약속 시간에 잘 늦었습니다.



Fxxk You!


이번 일은 캐필라노 몰에 있는 월마트를 가던 길에 겪은 일이다. 집에서 캐필라노 몰까지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버스를 갈아타는 일이 귀찮아 첫 번째 버스를 타고 내려 약 14분 정도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다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아랍계 남자 1명, 틴에이저 여자애 1명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때마침 그들을 지나쳐 갈 때였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도로에 쩌렁쩌렁 울렸다. 언어를 배울 때 욕을 가장 먼저 배운다고 Fuck You라는 말이 놀랍도록 또렷하게 잘 들렸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두 사람도 눈이 동그래져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은 별로 없는 그 길에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들이 가득했는데 그중 하나의 차량이 소리의 출처였다. 창문은 열려있고 안에는 젊은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누가 소리를 질렀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며 다 같이 낄낄거리고 있었다.


아랍계 남자와 틴에이저 여자애 그리고 동양인 여자인 나, 셋 중 누구를 향한 욕이었을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던 길을 마저 걸었고 나머지 둘도 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이 일을 인종차별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었음은 확실하다.



번외- 옐로우 피버 다운타운 할아버지


이것을 인종차별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유독 한 인종의 한 성별에만 집착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이 일은 어느 정도 밴쿠버에 적응을 하면서 혼자 쇼핑이 가능했던 때에 경험했던 일로 혹시나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젊은 동양인 여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글을 쓴다.


당시의 나는 H&M을 가기 위해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는 그랜빌 스테이션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웅얼거리는 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들려왔다. 한쪽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돌리니 어느 인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키가 훤칠한 외국인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오늘 날씨가 참 좋지 않니?', '오늘 뭐하니?' 같은 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멍청하게 이것이 바로 스몰톡인가? 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주방에서 일을 하는 터라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는 나는 드디어 영어를 써 볼 기회인가 싶어서 그의 말에 대답을 했다. '응, 날씨가 좋네.', '쇼핑했어.' 여기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고 말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 할아버지가 그 신호등부터 시작해서 계속 나와 나란히 걸으며 말을 거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왔어?
한국인이야?
나도 한국인 친구가 있어.
그녀는 지금 한국으로 돌아갔어.
너는? 학생이니? 일을 하니?



말이 자꾸 길어지니 영어를 하기가 힘들어져서 'I'm sorry, actually I can't speak english.' 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걸 괜찮다고, 영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며 계속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이것저것 묻는데 그 말들을 또 어떻게 용케 알아듣고는 몇 번 대화를 하다가 'I can't explain.' 하고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계속 나를 졸졸 쫓아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스타벅스에 있는 어떤 음료가 정말 맛있다면서 밴쿠버에 와서 스타벅스를 가 본 적이 있냐기에 없다고 답하니 본인이 음료를 대접할 테니 저기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더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친하다는 옛 친구가 20대 한국인 유학생 제니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냥 무시를 했어야 했다.


결국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 얼른 가봐야 한다며 급하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할아버지는 조금씩 잊혔고 한편으로는 내가 그냥 말하기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오해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때 내 번호를 물어본 것도 그렇고 찝찝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가 옐로우 피버라는 사실을 확인받게 된 날이 있었는데 해가 바뀌고 다시 밴쿠버 다운타운의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그 할아버지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물론 아는 척은 하지 않았지만 그 할아버지가 나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는 동양인 여자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캐나다는 정말 인종차별이 없을까?


나의 답은 No다. 살아보니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든 또라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캐나다라고 해서 없어지지는 않는다.


내가 겪은 일은 모두 밴쿠버 살이 초창기에 일어났던 일이고 그때가 가장 코로나가 심각했던 상황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런 일들로 인해 캐나다라는 나라에 많이 실망을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캐나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나이스하고 친절하며 진짜 'Sorry' 라는 말을 많이 했다. 길을 가다 마주쳐도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어떤 사람은 'How is it going?' 하며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인종차별보다는 언어 차별이 더 많지 않나 싶다. 그래도 무슨 차별이건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다. 나는 영어도 하고 한국어도 하는데 너는 영어밖에 못하잖아 같은 심보?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영어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을 무시해도 된다는 법은 아마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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