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으로 살기
#5_'변화'에 대한 깊은 고찰
최근에 참 많이도 고민했던 거 같다.
사람에 대한 고민이었다. 물론 내가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단 한 사람도 변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두고 보고 있자니 안타까워서 마음이 아픈 경우가 가끔 있다. 그래서 결과는 뻔하겠지만 결과를 잠깐 잊어버리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도와보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그게 하루 이틀 잠깐 만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내 친구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친구의 아픈 과거 때문에 그렇다. 어린 친구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한 공간에서 1년 또는 2년 이상을 부대끼며 지내는 그 과정에서 어떤 면에서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내 친구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되었고, 그것 때문에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난 30대 초반이다. 내 친구도 나랑 동갑이고. 그럼에도 내 친구는 아직 사회생활.. 회사 생활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힘든 상태다. 하지만 가만 보면 친구가 혼자서 '착각'하는 것이 많아서 그렇다. 사람을 너무 크게 오해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거기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상호관계가 아니라, 단 한 가지라도 본인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포인트가 포착되면 머릿속에서는 자기식대로 계산해서 사람을 판단하고, 결국 그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 되어 있다.
그렇게 자기 맘대로 해석해 버리면 그 사람과의 관계 이전에 본인이 스트레스받아서 힘들다. 그럼에도 그 프로세스를 반복한다. 본인이 스트레스받아가며 그 사람을 그토록 지긋이 인식하고 집중하고 불편해하니까 그 태도가 당연히 밖으로 새어 나오면서 실제로도 관계가 나빠지는 일이 빈번하다. 취업을 했으니 최소한이라도 실무를 경험해 보고 경력이 쌓이면 좋은데 좀처럼 거기서 버틸 수가 없는 거다.
속이 상하지는 않다. 엄밀히 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미 난 사람을 내가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야 변하는데, 아무리 옆에서 말해도 본인이 싫다면 안 바뀌는 거다. 그래서 속이 상할 일은 없다. 하지만 가끔 나도 혈압이 오를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나마저도 '본인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말이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친구의 답답한 행동에 지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지치는 걸로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은 건 아니다. 끝내고 싶었다면 당장 차단부터 박았겠지...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줘도, 오히려 말이 길어지면 이해력이 떨어지는 모양이다.(비하가 아니라 정말 실제로 말을 잘 못 알아듣는 편이다.) 최근에는 답답함에 쭉 써 내려간 장문의 글을 보고 "그래서 너도 나 때문에 힘들다는 거지?"라고 답변이 돌아와서 말 그대로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래서 당시 날짜 기준으로 제일 빠른 날에 스케줄을 잡아서 친구랑 만났다. 전에 이미 수없이 했던 이야기지만 어쩌겠나. 잘못 전달되었으니 다시 정정하려면 말 꺼낸 놈이 바로 잡는 게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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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의 기준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디선가 '35살 이후에는 생각이 굳어져서 더 이상 내가 먼저 변해 볼 의지를 들이는 일이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누군가의 주관적 견해가 없지 않겠지만, 그 말을 마음에 담아뒀다가 이런저런 케이스에 대입해 보고, 그 말이 얼마나 맞는지에 대해서 계속 계산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 '생각이 굳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안다. '생각이 굳기' 때문에 '내가 나 스스로에게 변화를 바라지도 의지를 들여보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면 '고집'을 부리게 된다. "어휴, 난 싫으니까 니가 좀 어떻게 해봐"가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자기가 마음이 동한다면 자기가 하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싸우거나 의견 취합을 포기하겠지.
난 그 생각이 굳는 게 너무 싫다. 싫다는 표현이 너무 원초적인가? 그냥 싫은 거다. 강단은 있어야 하지만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강단과 고집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다른 거다. 양보해야 할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는 거다. '기꺼이' 먼저 져줄 수 있다면 져주고, '기꺼이' 먼저 피해 줄 수 있다면 피해 주고, '기꺼이' 먼저 양보할 수 있다면 양보하며 살고 싶다. 내 친구는 그게 안된다. 일단 본인에게 불편하거나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은 대화를 해보기도 전부터 이미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고 시작한다. 그걸 좀 제발 고쳤으면 좋겠는데, 일찍이 판단부터 하고 사람을 대하지 말라고 해도 그게 되나.. 본인은 바뀔 생각이 없는데... 불평할 거 다 하고 살고, 불편하면 사람들한테 대놓고 틱틱대고 그러는데.. (내가 '너 혹시 사람들한테 틱틱대고 그러니?'라고 물으면 '응, 나 그러는데?' 하고 대답하는 거 보니 그런 태도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마치 정말 어린애 같다. 그러면서 대접은 어른 대접받고 싶어 한다. 그게 제일 답답한 구간이다. 다른 거 다 괜찮다. 내가 조금 더 안정적이기 때문에 밥도 내가 다 사도 상관없고, 내가 먼저 더 챙기는 것도 괜찮다. 다 괜찮은데 그런 태도는 정말이지 내 마음이 괴롭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같이 일하자고 안 할 텐데, 걔는 아니라고 말해줘도 계속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인은 바뀔 생각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에도 근거가 있다. 수많은 말들, 인간관계에서 친구가 지레짐작으로 넘겨짚고, 사람을 오해하면서 관계 악화를 스스로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해줬던, 그 모~든 말들이 하나도 그 친구 안에 남지 않은 모습을 매번 마주하기 때문이다. 불평이 끊이질 않는다. 예전에 겪은 상황과 형태만 다르지 본질은 똑같은 문제를 여전히 겪고 있고 여전히 그거 때문에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한두 번? 그까진 이해하겠어. 근데 세 번 네 번을 계속 되풀이한다. 다람쥐인가? 왜 그렇게 뱅글뱅글 제자리를 돌고 있는지.. 그 말은 첫째로 '리마인드'하지 않는다, 그리고 리마인드가 안되면 당연히 '반성'이 안 된다. 자기를 돌아보는 과정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거다. (대조해 볼 기준이 머릿속에 없는데 자기를 어떻게 돌아보냐? 그렇게 보면 쓸데없는 '자기 집중'밖에 안된다.) 그래서 이번에 만났을 때는 아예 벽에 써붙이라고 했다.
친구에게는 안 좋은 습관이 한 가지 더 있다. 밖으로는 사람을 극심하게 경계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그렇게도 의심한다. 그리고 자책한다. 계속 '나 때문이야. 내가 이래서 그래'라고 하는 걸 보면서 아니라니까!! 하고 화낸 적도 있었다. 물론 카톡 대화였기 때문에 그렇게 효과적으로 전해지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난 내면에서 이미 비명을 몇 번이고 질렀다. 그것도 벽에 써붙이라고 했다. "니 방 벽에 써서 붙여! 제발 잊어버리지 좀 마. 니가 생각해야 할 방향은 그게 아니라니까? 너 왜 계속 까먹어? 까먹을 거면 써서 붙여놓고 매일 좀 보라고 제발!"
근데 안될 수밖에 없다. 왜? '나를 바꾸는 일'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비워내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보고 접목해 보는 것'이다. 웃긴 건 그것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 점점 잘하게 된다는 거다. 그러려면 기존의 내 못난 모습을 '부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의 습관과 생각하는 방식도 마치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굳어지기도 한다. 그 습관이 오래되면 오래되었을수록 더더욱 그렇다. 근데 만약 그게 컴퓨터의 RAM처럼 잠깐잠깐 남는, 그러나 계속해서 내 속에서 리마인드 되어서 매일 새로운 마음을 먹은 것처럼 새롭게 시도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아픈 경험'에 대해서만 그래야 할 것이다. 아픈 경험을 해보고 거기서 얻은 교훈만 갖고서 또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과정. 그게 너무 필요하다. '좋은 경험, 좋은 습관'에 대해서는 아예 '프로그래밍되는 것'이 좋다. 차라리 내 소프트웨어의 방식이 그렇게 좋은 것들로 틀이 잡혀 돌아가면 정말 좋은 거다. 친구는 사실은 그 과정을 겪고 있는 거겠지.. (아직 한 번을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좋은 건 내 것으로 흡수하고, 나쁜 건 빨리빨리 털어낼 수 있는 것. 그게 '굳어지지 않는 법'인 거 같다.
친구가 단 한 번이라도 '기존의 나'를 개운하게 버려보기 위해 이 일에 집중하면 소원이 없을 거 같다. 작은 일부터, '불평 한 마디 할 것도 안 해보기'부터 시작한다면 정말 좋겠다. 지겹겠지만, 이미 그것도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말해줬다. (내 입은 이미 마르고 닳았다!) '감사노트 쓰기' 이런 건 이제 소용이 없다. 감사노트 쓰기를 하면 될 줄 알았으나, 감사노트는 감사노트대로 쓰고, 불평은 불평대로 계속하고 앉았다. 할 일이 많아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불평 안 하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매일 100개의 불평을 하던 사람이 95개로 줄이면 그것도 노력인 거다. 제발 그렇게 하면 좋겠다. 10개의 불평을 9개로, 8개로 그렇게 쭉쭉 줄여나가 보면 좋겠다.
변화가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사실은 '큰 변화'는 '꿈'이라도 꾸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 '꿈을 꾸고, 목표를 잡는 일'을 잠시 의식의 저 너머에 제쳐두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낫게' 산다면 될 일이다. 그러면 그 '큰 변화'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사이 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그제서야 큰 변화와 인사하고 반갑게 맞이하면 되는 거다.
24.02.10 / '변화'에 대한 깊은 고찰_사람으로 사람과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