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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Jul 09. 2024

마음이 아픈 사람

#3_모든 것을 정복하는 사랑

글을 안 쓴 지 정말 오래된 거 같다. 그 사이 끄적여 둔 건 몇 건 있었지만 도무지 정리해서 다듬고 올릴 여력은 없었던 거 같다. 글이 잘 써지는 상태가 분명 있는 거 같다. 좀 안정적인 정서 상태, 폰보다 주변과 자연을 눈과 마음에 더 많이 담을 때 특히 그랬던 거 같다. 지금은 확실히 그런 여유는 없어진 거 같다. 예전엔 자전거 타고 서울 여기저기를 누볐다면 지금은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게 전부인 거 같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고 노트북을 딱 붙잡고 앉을 틈도 없으니 더더욱 글 쓰는 과정이 힘들어지는 거 같다.


최근에 슬픈 일들이 계속 겹쳤다. 비슷한 맥락의 일이 세 번이나 겹쳤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세 가지의 사건이 최근 한 달 사이에 내 마음과 머리의 생각 속을 마구잡이로 해집어 놓았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 한 사건을 겪고 나서 '그럴 수 있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모든 감정과 모든 잡생각을 대하여 크게 확대 해석하지 않고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려 계속 노력했는데, 다 가라앉을 즈음에 또 새 일이 터지고 또 새 일이 터졌다. 같은 일로 세 번을 연속으로 맞고 나니 이제는 자책을 하게 된다. - 아 지금 생각해 보니 세 번이 아니라 네 번인 거 같다. 지금 막 떠오른 그 일은 지금 언급하는 사건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세 번째 일까지 겪고 나서 보니 마지막으로 떠오른 그 일 또한 최근 일과 일맥상통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대체 얼마나 못난 사람이길래' 하는 생각과 '여태껏 다들 이런 나를 어떻게 참아왔던 걸까?',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잠자코 내가 실수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던 사람들에게 왜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느냐고 화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밀려오는 수치감에 조용히 사라져 줘야 하는 걸까?', '내가 욕심을 너무 많이 낸 걸까?', '누구를 위한 욕심이었던 걸까?', '어디서부터 끝을 냈어야 했던 걸까?', '내가 너무 나댔나?'그런 생각들이 정말 많이도 든다. 다시 사람에 대한 회의감들도 계속해서 올라오고 한 동안은 잠도 잘 못 잤고, 참 가관이다.


내 자리는 어디일까?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할까?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이쯤 하니 나는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나도 이기적이겠지? 그냥 나에 대해 어쩌다 몇 번 심하게 오해를 했던 건 아닐까? 진짜 내가 눈치 없이 이기적으로 군 걸까? 그런 수많은 생각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고 난 후, 결론은 '사람들과 친해지면 안 되겠다. 나를 보이면 안 되겠다.'였다. 내 선에서 친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못난 모습들이 밖으로 계속 보여지나 보다.


난 내 백그라운드가 그렇게 자랑스럽지 않다. 가난한 환경에 자란 것도 아니고, 물론 그렇다고 그렇게 유복하게 자란 것도 아니다. 여느 집과 다름없이 가정을 위해 수 십 년을 열심히 일해오신 아빠와, 아빠를 도와 열심히 가정을 돌본 엄마 사이에서,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의 눈치가 조금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1순위로 뒀고, 부모님은 그에 맞춰 온 힘을 다해 지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집이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정서적인 백그라운드는 그렇지 못하다. 못된 면, 하찮은 면, 고집스러운 면, 천박한 면, 부족한 면 등등.. 그래서 자랑스럽지 않다. 혹시 그런 면에서 내 못난 모습들이 통제되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밖으로 내비친 게 아닐까? 내 약점들을 모두가 감싸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감싸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려면 내 선에서 통제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마음을 놓는 순간이면 그런 못난 모습들이 밖으로 스멀스멀 드러나는 거 같다.


물론 이런 일들 가운데, 나도 불편한 마음들이 있었다. 나도 서운한 게 있었고 아쉬운 게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표현을 하고 드러내서 소통을 하고 싶었고. 어디까지나 뭐가 되었든 지금의 상태를 개선해보고 싶어서 선택했던 방법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갈등을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하는 편인 나는 그냥 그냥 넘기고 넘겼을 거고, 그래도 안되면 거리를 두고 접점을 조금씩 줄여 나가기부터 했을 것이다. 부정적인 말들은 어릴 적부터 잘 표현을 안 했고 불편한 일들은 되도록 피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나는 앞으로 같은 일을 겪지 않을 수 있고, 상대방은 나로부터 듣기 싫은 소리를 안 들어도 되니까 나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이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냥 안 맞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서운한 마음을 내비친 게 잘못일까? 그 정도 대화는 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냥 이 일도 회피하고 끝냈어야 했던 일인 거 같다. 후회마저 든다. 그냥 내가 가만히 있을 걸 하고..


근데 오늘 잠깐 동네에 볼일을 보러 나온 길에 앞에서 걸어가시던 분의 옷에 프린트된 이미지를 발견했다. "Love conquers all."이라고 쓰여있었는데, 그걸 보자마자 '그래! 저런 사랑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정말 사랑이 없네!'라고 생각했었다. 그 문구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똑떨어진 물건을 구매하러 마트로 들어섰다. 내가 사려고 하는 물건이 마침 1+1 행사 중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어차피 사려고 했으니 오히려 잘 된 거다. 그래서 구매해서 봉투 가득 필요를 채워서 매장을 나왔는데, 나오는 길에 다시 그 문구가 떠올랐다. "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내가 필요로 했던 만큼 이상의 것이 내 손에 들어왔다는 지금 상황과 왠지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문구를 봤을 때, 처음엔 '내가 받을' 사랑을 생각했었는데, 사실'내가 줄' 사랑이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받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거다. 중요한 건 '주는' 것이다. -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는 1+1 행사로 받은 이 것을 주변에 선물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금 이 시대에 '주는' 일이 쉽지 않음을 잘 안다. 지금의 나도 '받지 못함'에 집중을 했고 하다 못해 사소한 거라도 내가 '받아야 할 것'에 집중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내가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다. 나도 내게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주변으로부터 '받을 줄 아는 것'도 참 중요하다. 그래야 나라는 사람도 잘 돌아갈 테니까. 그러나 지금 이 주제로 힘들어하는 나 뇌리에 "Love conquers all."이라는 문구가 박히고 그 문장을 '주는 사랑'으로 다시 해석하게 된 것은 꽤 큰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있어 혼란스럽긴 하다.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이 남았는데, '주는 사랑'에 집중을 하면 마치 핵심을 간파당한 것처럼 머릿속이 상당히 클리어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게 좀 전에, 약 30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 이 시점에 같은 일들을 몰아서 겪고, 그러는 중에 그 잠깐의 찰나에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경험을 하게 된 건 이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정말 많이도 한탄하고 싶었고 힘든 내 마음을 누구든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압도적이었지만, 사실은 실제로 그렇게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해도 해결되는 것은 없고, 결국 우는 소리로 끝나고 말 일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복하는 사랑'에 대해서 잠깐이나마 묵상해 봄으로 깜깜한 동굴 속에 새로운 출구가 개방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자리에서 분명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뚫어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일 거라 믿게 됐다. 아직 감정적인 부분들이 남아 조금 삐걱댈지라도 새로운 방향으로의 도전들을 하나 둘 해나가야 할 필요를 발견하게 된 거 같다.


이 일에서 다시 한번 느끼는 바는, '사람은 정말 연약하구나', '사람이 완벽할 수 없구나'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꼭 겪어야지 영글어지고 더욱 무르익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앞으로 더한 일들이 따라올지는 나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모르지만, 지금 여기서 배운 것들을 갖고 가야 적어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을까 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보려 한다. 사람이기에 속상한 마음도 생기고 서운하기도 할 테지만, 그런 감정들을 에라 모르겠다 하고 풀어놓지 않고, 고민하고 끙끙 앓는 시간들을 고스란히 통과한 다음 하나 둘 알아가고 깨달아지고 새로워지고 성장해 나가기만 하면 좋겠다.




24. 6. 27. thu / 모든 것을 정복하는 사랑_마음이 아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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