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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Jun 22. 2024

수국 집착증

잡초 무성한 화단을 좀 가꿔볼까 싶어서 열심히 꽃을 심을 심은 적이 있어요. 야생화도 심고, 잘 자란다는 패랭이도 심었어요. 예뻐보이는 건 다 심어봤죠. 근데 다 죽였어요. 무지한 식집사 시절이었죠.


요즘 식물에 관심이 생기면서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식물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걸요. 여전히 초록별로 떠나보내는 식물들이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화단을 살펴봅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있어요. 이런 적 처음이에요.


자신감이 생겼는지, 여러가지 식물을 키우고 싶더라구요. 화단에서 매번 식물들이 죽어나가다가 틔운에서 옮겨온 꽃들이 잘 자라는 걸 보고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바로, 수국 입니다.


아름다운 수국 @pixabay


수국 좋아하시나요? 화려하고 탐스러운 수국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식생마 시절에도 수국을 심어봤어요. 결과는 바로 꽃이 떨어졌고, 그 뒤로 수국은 자취를 감췄답니다.


한참 뒤, 수국 화분을 선물 받아서 길렀어요. 버티고 버티다가 겨우 새순을 살리는 중에 화분이 한 그들은 번 엎어져서 그만 또 초록별로 가버렸어요.


올해, 봄이 되자 또 수국앓이가 시작되더라구요. 그래서 또 들였죠. 수국!


검색에 검색을 해서 튼튼한 품종으로 찾았어요. 애나벨 수국이라는 미국 품종 이었답니다. 공구를 잽싸게 신청했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다 받은 수국 3주를 받던 날, 날이 엄청 더웠습니다. 이미 그들은 배송 오는 내내 박스 안에서 더위와 싸우고 있었겠죠. 박스를 여는 순간, 하나는 거의 지쳐 쓰러져 있더라구요.


물을 잔뜩 주고 그 다음날 햇빛은 잘 쬐어줬습니다. 무지한 식집사는 그렇게 또 수국을 떠나보냈습니다. 다행히 2주는 살아있어요. 화단에 옮긴 이후에도 잘 자라고 있어요. 꽃은 내년에나 볼수 있을 것 같아요.


애나벨 수국



제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를 떠나보냈으니 하나를 또 들여야죠. 상추 모종 사러 갔다가 한참 잘 자라고 있는 수국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장님에게 계속 물어봤어요.


"잘 자라나요? 노지 월동 되나요? 괜찮을까요? 잘 살까요?"


걱정하는 저에게 사장님은 잘자라는 품종이고, 노지 월동도 된다고 안심 시켜주셨어요. 처음에 물만 잘 주면 된다고 하셨답니다. 그렇게 하얀 수국 꽃이 피는 중인 잘 자란 목수국 한 주를 데려왔습니다.


튼튼해 보여서 바로 화단에 옮겨 심었어요. 그러나 저는 무지한 식집사였습니다. 아직 배울게 많아요. 해의 움직임을 생각하지 못하고 아주 양지바른 곳에 심었답니다. 낮에 쨍쨍한 햇빛을 견뎌야 하는 곳이에요. 그늘이 하나도 없답니다.(수국은 그늘에 심는게 좋다고 합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옮겨 심을까 생각했지만, 옮겼다 죽을까 봐 못 옮겼어요. 해만 뜨면 타 죽을까 걱정하는 저의 마음은 꼭 동화 속 개구리 같았어요. 엄마 무덤이 비만 오면 떠내려 갈까 걱정하던 그 개구리요. 

아침, 저녁으로 물 시중을 들었더니 그래도 수국은 잘 버텨주었어요. 유독 더운 올해, 외출하느라 오후에 한 번 안 줬더니 잎이 축 쳐져있더라고요. 설상가상 그다음 날 폭염주의보가 떴어요. 아침에 물을 먹고는 잎이 살아나는 듯했지만, 오후의 강렬한 해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답니다. 당장 그늘막을 칠 수도 없고, 머리를 굴리다가 방법 하나를 생각해 냈어요.


바로, 우산입니다. 수국한테 우산을 씌워줬어요. 임시방편이었지만, 꽤 마음에 들었어요. 흡족한 미소를 띠며 우산 쓰고 있는 수국을 바라보며 안심했어요. 


우산 쓴 수국



화단에는 수국 3주가 잘 버텨내고 있어요. 새순이 돋아날 때마다 욕심도 돋아났어요. 이 수국들이 1년을 잘 버티면 내년에는 수국 한 주를 더 심어볼까 해요. 1년에 수국 한 주씩 10년이면 수국 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뜨거운 여름날, 강렬한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식물들을 바라보며 뭘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날입니다. 관심이 더 생기고, 날이 갈수록 애정이 더해집니다. 수국 집착도 심해지고요. 그렇게 식집사가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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