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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Oct 14. 2023

아름다운 이별

얼마 전, 드래곤은 이별 신호를 보냈다. 잎이 시들었고, 힘이 없어 보였다. 이별에 가까워졌다는 걸 직감했을까. 물 주는 것을 신경 쓰고 시든 잎은 정리했다. 며칠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천천히 일어나 다시 꽃을 피우며 방긋거렸다.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래곤과 새싹이의 다정한 때



우리 집 강아지 동글이도 그랬다. 엄마가 동글이가 아프다며 아무것도 먹지를 못한다는 말을 전화로 전했다. 눈물을 참으며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포항으로 달려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4시간 동안 동글이와 지내던 10여 년의 세월이 바람을 가르는 풍경 사이로 스쳤다.


그 무섭다는 중2병이 시작될 즈음 동글이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동글이의 엄마 순심이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아빠와 내가 보는 앞에서 낑낑거리며 순산을 했었다. 동글이는 우리 집에서 뱃속부터 자라던 아이인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반려견을 키우던 중학생은 대학생이 되어 타지에 살았고, 동글이는 세월을 못 이겨 이별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본 동글이의 얼굴은 아파 보였다. 몸 전체가 노랗게 황달이 왔고, 축 쳐진 몸으로 누워있었다. 아빠가 항상 사다 주던 통조림도 입에 대질 않고, 먹지를 못한다며 엄마는 닭을 삶고 있었다. 그저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얼굴 한번 보여주려 힘을 내고 있었기에 기특하다 칭찬도 해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동글이와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를 가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걱정이 됐다. 작별을 준비했지만, 마음은 슬펐다. 동글이는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 후로 1년을 더 살았다. 우리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준 걸까. 기적 같은 일이었다.








동글이처럼 드래곤도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거라 생각했다. 이별이 눈앞에 있는데 아직 해야 할 말들이 많아서 붙잡고 있는 나에게 주는 배려의 시간. 눈앞에 있는 이별에 맞서기로 했다. 후회가 없도록 우리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뒤로 며칠이나 지났을까. 또다시 드래곤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줄기가 꺾인 듯했고, 잎이 또 시들었다. 커뮤니티에 물어보자 물꽂이를 해보는 게 어떻냐는 말에 과감히 줄기를 잘라보기로 했다.


지금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당장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의학 드라마 속 주인공 의사처럼 비장한 각오로 가위를 들었다. 꺾인 가지를 조심스래 잘랐다. 아니나 다를까 속이 비어 말라 있었다. 말라있는 줄기를 좀 더 잘라냈다. 꽃이 핀 부분만 탐스럽게 남아있었다. 급하게 꽃을 꽂으려니 크기게 맞는 빈병이 없다. 찬장에 모셔놨던 소주잔에 겨우 걸쳐놨다. 시간이 지나자 꽃이 더 생생해졌고, 다시 일어날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소주잔이라 미안해.


물을 갈아 줄 때마다 시든 잎들이 늘었다. 결단을 내렸다. 아름다운 꽃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때 보내주기로 했다. 볕 좋은 날, 초록별로 잘 날아갈 수 있게 바깥의 화분 위의 흙을 자리 삼아 고이 놓아줬다. 드래곤은 그렇게 하늘을 날았다. 아름다운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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