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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Nov 10. 2024

별일 없는 하루가 선물입니다.

어둑어둑한 새벽녘 까치발을 들고 조용히 욕실로 향했다.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애써 차가운 물로 축여가며 얼른 눈을 뜨라 한다. 텁텁한 입 안에 퍼지는 상쾌한 민트향 치약까지 맛보니 눈이 번쩍 뜨인다. 오늘의 첫 미소를 거울 속으로 건네며 하루가 시작됐다. 하루를 웃으며 보낼 수 있게 해 달라 주문을 곱게 담았다.


눈 못 뜨고 누워있는 네 남자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남편에게는 어서 일어나라 뽀뽀를 해댔다. 한 번만에 놀라 일어날 줄 알았더니 미동도 없다. 첫째는 춥다며 두꺼운 이불을 기어이 가져가더니 이불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자고 있다. 둘째는 아직도 신생아 기념 촬영 할 때의 아기처럼 두 손을 곱게 포개서 옆으로 누워있다. 셋째는 갑자기 쿵쿵 쿵쿵 나에게 다가오더니 포근히 안아주고는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아직도 자는 동안 엄마가 있나 없나를 살피는 어린 아이다.


커피 머신 전원을 켜자 시끄러운 기계 소리에 잠이 깰 법도 한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커피 한잔을 소란스럽내리고 나니 다행히 남편은 일어나 포근히 나를 안아준다. 7시, 아직 꿈나라에 있는 아이들에게 인사는 생략하고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어제만 해도 낮에 반팔을 입고 돌아다녔는데, 오늘은 겨울이다. 남편이 작다며 입으라고 준 두꺼운 점퍼가 꽤 포근하다. 얻어 입은 옷이지만 왠지 남편이 코트 속에 나를 폭 안아주는 느낌이다.(키가 큰지라 품에 쏙 들어가는 로망을 이뤄보지 못했다.) 하나 입던 옷의 채취 때문일까 그 남자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오늘만 입고 세탁소에 옷을 갖다 줘야겠다.


찬바람을 코에 적셨더니 아직은 붐비지 않는 지하철 냄새가 신선하다. 덜컹 거리는 지하철의 소음을 bgm 삼아 한 정거장 두 정거장 다리에 힘을 주며 버틴다. 공복 운동이라며 에스컬레이터는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한다. 한 발을 디딜 때마다 단단해지는 다리를 따라 왠지 모를 자신감이 솟구친다. 튼튼한 두 다리로 못 할 게 없을 것 같다.


별일 없는 하루라 투덜거리는 시간이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 별 볼일 없는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일상에서 숨 쉬는 것이 살아있다는 자체가 선물이었다.  

아무것도 받은 게 없는데, 모든 게 선물이었다.



오늘도 별일 없는 하루가 감사합니다.







사진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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