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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전 Dec 28. 2021

왜? 나만?

워킹맘의 고군분투기

왜? 나만?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 된 것처럼 무겁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양가의 도움 없이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나를 무너지게도 했다. 장거리 출퇴근하는 남편, 공부를 시작한 남편을 두고, 아이들 등 하원, 퇴근 후 저녁 식사, 놀이, 공부, 집안일까지 모두 내 차지가 되어버린 그 순간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집안일도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오롯이 나의 손을 거쳐 가야만 했기에 하루하루 지쳐가던 때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힘들게 버티던 시간이 지나고 남편의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와 함께 내 안에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남편도 합격했고, 이제 육아도 일도 함께하며 좀 더 행복해질 수 있겠지.’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바빴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기다려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나 오늘 늦어.”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남편과 달리, 나는 늦을 수 없었고,

  “죄송해요. 아이들 때문에......”

를 늘 입에 달고 직장생활을 해야 했다. 직장도 가정도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지쳐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나는 남편 일정을 고려해서 겨우 날짜를 잡고, 만나려 해도 때마침 아이들이 아파서 미안해하며 약속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들이 억울함으로 다가왔다.

  “빨리 먹이고, 빨리 재우자, 빨리 치우고, 빨리 아까 못한 일들 마무리하자.”

매일 이런 일상이 반복되었다.





유난히도 잔뜩 어질러진 장난감과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오던 날, 늦은 시간 퇴근한 남편이 한 마디를 했다.

  “내가 도와줄까?"

  “도와준다고? 왜 도와주는 건데? 왜 당신 일이 아니고, 내 일을 마치 도와주는 것처럼 이야기하냐고? 왜 이게 모두 내 일이냐고! 왜? 왜 나만 희생해야 해?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퇴근한 남편의 한 마디에 쌓였던 억울한 감정이 폭발했다. 남편은 나의 기류를 파악하고 그 폭풍우를 고스란히 받아주며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었다. 본인도 늦은 나이에 한참 어린 후배들과 신입 시절을 보내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늦은 시간 퇴근하자마자 쏟아내는 아내의 말에 뭐라도 답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남편은 잘 참아주었다.

 

 당신이 정말 수고가 많아, 하루하루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당신을 보면 정말 고맙고 안쓰러워. 바쁘다는 핑계로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늘 미안해. ”

그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이 말이었다. 내 깊숙한 내면에서는 나의 수고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도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남편의 인정도 받고 싶었나 보다. 그날 남편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침묵 덕분에 폭풍우가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 남편처럼 자상하고,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오히려 핀잔을 주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얼굴이 붉어지는 기억이면서도 워킹맘의 억울함을 풀어냈기에 속 시원한 기억이기도 하다.




그날 이후 얻은 작은 깨달음은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바라고 무작정 인내하기보다,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그 상황 속에서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나는 침묵을 선택했고, 인내를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표현을 선택하고, 나의 행복을 선택한다. 여전히 워킹맘이고 여전히 모든 것이 내 차지인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뭔가 억울함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나의 행복을 선택하고자 한다. 다른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인정과 만족을 위한 일을 찾고자 한다.


코로나로 지친 요즘,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고 스스로에게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재미난 궁리를 해 본다. 아이들과 피아노 합주를 하며 영상을 찍어보기도 하고, 집콕 놀이를 하나씩 완료하는 재미에 빠져본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이 글쓰기 시간도 재미난 궁리 중의 하나이다.


   “왜? 나만"에서

   “응! 나만!"인 삶으로, 나만을 위해, 나의 행복을 선택하며 하루를 살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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