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nfonia Oct 13. 2022

핀란드 유학생의 MBTI를 탐구하다가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유형만 모인 그곳

약 13년 전 나는 대학교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에서 정문까지 숨도 쉬지 않고 뛰어갔다. 한껏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양쪽 볼을 모두에게 내보일 자신이 없었다. 여드름이 창궐하고 난 자리는 피부과에서 받은 치료 덕분에 더욱 돋보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에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말을 들으면서도 웃었다.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학교 심리상담실을 찾았다. 그때 MBTI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심리상담을 진행하기 전에 한 검사였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 작가 모죠도 나와 같은 유형이다

검사결과지에는 INFP라고 쓰여있었다. 네 가지 알파벳을 인터넷에 검색하자 신세계가 열렸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나만 예민한 것이 아니었다니! 우울함, 예민함, 가치관에 대한 고집스러움, 이상한 완벽주의, 그와 상충하는 나태함과 게으름,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 그 모든 것을 16가지 유형 중의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덜 외로웠다.


정확하다. 나는 성악설을 믿고 세상사에 대해 염세적이지만 모든 인간과 세상이 평화롭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말 해봤자 갑분싸가 되므로 온라인에서나 한다. 출처: 무룽빈 작가


그 이후 나는 비공식적인 MBTI 덕후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MBTI가 궁금하였다. 비과학적인 성격검사이며 사람의 다양한 성향을 16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6가지의 유형으로라도 타인과 타인만큼 아득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MBTI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나 혼자 내밀하게 타인의 유형을 추측하였다.


MBTI 광풍이 불자 나는 자신 있게 MBTI의 덕후임을 공표하였다. 마침 그때는 핀란드에서 한국인 친구들을 막 사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들에게 MBTI를 묻기 전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대부분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거의 본 적 없는 성향이었다. 예술대가 없는 학교에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던 나의 모집단과는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겐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세 명을 제외하고 알토대 예술대 또는 디자인대 소속이었다. 세 명은 경영대 소속이었고 그중 두 명은 엄밀히 말하면 디자인경영 트랙이었다. 학부를 그쪽으로 나온 사람이 많았지만 나처럼 인문대를 졸업한 경우도 있었다. 둘째, 미국도 영국도 아닌 핀란드라는 생소한 나라를 유학지로 선택하였다. 셋째,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핀란드로 석사 유학을 왔다. 모두 창의적인 학문을 공부하고자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척박한 나라를 선택하였다. 한국의 쳇바퀴와 같은 삶에 지쳐 선택지에 없는 답을 고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MBTI는 다음과 같았다.


ENFP 2명

ENFJ 3명

ENTP 1명

ENTJ 1명

INFJ 2명

INFP 1명 (그거슨 바로 나)

INTP 1명

ISTP 1명 (유일하게 순수 경영 트랙에 있었다)


표본이 겨우 12명이긴 하나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NT, NF 군이다. 모두 직관(Intuition)을 주기능 또는 부기능으로 사용한다. 여기서 N과 S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인지하는 방법을 말한다. N은 어떤 사안을 바라볼 때 자신만의 직관(Intuition)이라는 깔때기를 넣고 이해한다. 반면 S는 청각, 시각, 촉각 등 자신의 오감(Sense)을 이용해서 상황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개념을 습득한다. N은 자신만의 깔때기에 걸러진 큰 덩어리로 상황을 인지한다. 그래서 S는 자신의 오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적인 경험에 관심이 많고 N은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한 추상적인 개념과 개념 너머의 가능성에 관심을 둔다.   


분석적인 NT군에 속하는 친구들은 물음표 살인마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끈질기게 물어봤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지 못했지만 상황 판단은 빨랐다. 단, 때에 따라서 눈치가 없는 척 또는 모르는 척을 했다. 이상주의자 NF 친구들은 나와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이었다. 공감과 지지를 기반으로 창의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 매우 다른 유형군이지만 NT와 NF를 아우르는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무한한 상상력과 그만큼 팽창하는 대화였다.


핀란드에 가기 전까지 만난 친구들은 현실에 두 발을 착 붙이고 있는 유형이었다. 내가 공상을 하고 있는 시간에 친구들은 현실에서 떨어지는 과업을 척척 해냈다. 슈퍼마리오 게임에서 공주님을 구하러 가는 길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 같았다. 현실적인 과업 앞에서 쉽게 좌절하고 가상 세계로 도피하는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미 독버섯을 먹고 지하로 떨어진 참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공상이나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까워도 그들과 공유할 수 없는 빈자리가 남았다. 그 자리를 인터넷 세상 혹은 책이나 영화 따위의 가상의 이야기에 심취하는 것으로 달랬다. 가끔 '만약'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면 '그런 생각을 왜 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건넨 상상의 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짧고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A로 시작한 대화는 A로 마무리되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았단 게 아니라 그들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만난 친구들과 하는 대화는 스쿼시 볼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한 명이 쏘아 올린 공을 계속해서 이어받다 보면 처음과 전혀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때때로 개드립과 헛소리가 난무했다. 그러다가도 추상적인 주제에 급속도로 몰입하곤 했다. NF 유형은 그에 대해 낭만적으로 접근한다면 NT 유형은 주제 자체에 딴지를 걸면서 합리적인 근거를 찾으려고 했다.


특히나 어느 이야기에서든 자신의 조각을 발견하고 반추하는 유형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 그들은 재기 발랄한 활동가 ENFP, 선도자 ENFJ, 통찰력 있는 선지자 INFJ였다.


세 유형 모두 각자 이상을 품고 있다. 다만 이상과 낭만을 서로 다르게 실현한다. ENFP는 바깥으로 자신의 창의성과 에너지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쪽으로, ENFJ와 INFJ는 현실과 치열하게 저울질을 하면서 면밀하게 계획하는 쪽으로 각자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ENFP 친구가 나의 외향적인 페르소나였다면 ENFJ 친구는 나의 내면을 토닥여주는 상담자와 같았다.


MBTI 개노답 삼 형제. 지독히 미루는 인간들의 모임. 내가 제일 독하단다... 인정


우리의 대화에는 항상 비유가 가득했다. 우리는 종종 핀란드에 와서 무민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이라는 혹독한 현실과 괴리된 삶을 살고 있는 동화 속 캐릭터와 같기 때문이었다. 틴더렐라라는 별칭도 친구들과 함께 키득이다가 나온 말이었다. 왕자님을 만나고 싶지만 밤 열두 시면 돌아가야 하는 애석한 신데렐라처럼 녹록지 않은 데이팅 시장을 비유한 말이었다.


핀란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어언 2년이 지났다. 핀란드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은 진실, 반은 거짓말이다. 핀란드라는 장소보다 그곳에서 나눴던 대화를 그리워한다. 라면 사리를 넣어 떡볶이  사발을 만들어 놓고 연애, 사랑, 이민자의 , 문화차이, 미래, 불안, 각자의 가족사를 매운 양념으로 곁들인 대화. 10유로 이내에   있는 우스꽝스러운 선물을 주고받았던 파티의  장면. 주식시장, 월급쟁이 삶의 불안함, 서울 아파트 가격  현실적인 고민을   없었던 가난한 학생의 처지. 무엇보다 헛소리와 개드립으로 버무려진 대화에서 농담이 진심이고 진심 같은 말이 농담이었다. 고민이 있어도 심각하지 않았다. 말도  되는 농담으로 웃다가도 철학적인 주제를 목도하곤 했다. 우리는 핀란드라는 외딴섬에서 서로를 '상상' '이상'으로 단단하게 묶고 있었다.


한국에 온 이후 나는 제대하고 나서 첫 학기에 들어선 복학생이 되었다. 내가 핀란드에서 정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에 내 또래 친구들은 저만치 진도를 나가버렸다. 4년 동안 뒤쳐진 현실 감각을 되찾아야 했다. 가난한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야할 시기가 한참 지나버린 때였다. 소설책을 잠시 뒤로 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진로를 틀었다. 나에게 숫자로 와닿는 금액을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차례 쉬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공상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일까. 슈퍼마리오 게임보다 장애물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독버섯 하나쯤 같이 먹어줄 사람을 기다린다. 지하로 내려가도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만 있다면 나도 공주님을 구하러 가는 마지막 단계까지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마지막이라는 게,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테레오타입만 남은 라플란드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