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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l 11. 2024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

재산세에 대한 단상

수시로 STAX를 들여다보던 동생이 재산세가 부과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때 되면 알림이 오는데 굳이 굳이 먼저 들어가 확인한 동생.

내가 사는 집의 재산세 내역을 캡처해 보여주면서 얼른 들어가서 내 소유의 아이들 재산세도 확인해 보라고 종용했다.


그래서 자동차세를 낸 후 들여다보지도 않던 택스 앱에 들어갔다.

귀여운 나의 원룸은 10만 원대 초반

그리고 스크롤하다가 폰 떨굴 뻔했다.

10배.... 10배가 넘는 금액이 찍혀있다.


독립 전까지 살던 집, 엄마의 오래된 빌라는 7월, 9월 재산세를 다 합쳐도 15만 원 정도이다.

그리고 나의 귀여운 원룸은 두 번의 부과액을 합치면 20만 원대 초반.

내가 살고있는 투룸은 60만 원 대.

그리고 마지막(이겠지?)으로 매매한 집은 7월, 9월을 합치면 2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게 웬 말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 다녔다.


1. 어쩐지 나의 가난이 체감되었다.

그동안 참 올망졸망한 집에서 살았구나.


2.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던 친구들, 정치적 신념이 대차게 올곧던 부러질 것 같이 강하던 친구들이 부모찬스로 일찍 강남과 송파 등지에 집을 사고 정치적 신념을 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참 속상했다. 

어쩜 저렇게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을 수가 있어-

싶었는데 이번에 재산세를 보자마자 그들이 그때 나누던 이야기들이 어쩐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나도 내 신념을 지키긴 힘들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다른 곳에 표를 던지느니 투표를 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돌았다.

그나마 미리 계산해 본 종부세가 귀여운 수준이라 다행이다.

부동산 수다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다메이트인 O 언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더니 

예전에는 종부세가 재산세보다 훨씬 많아서 정말 못살겠다 죽겠다 수준이었다고 한다.


내 주변엔 어쩌다 보니 목동 원주민, 어쩌다 보니 대치동 원주민이 꽤 많은데 그들이 세금을 낼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알겠더라.

물론 그들 중에는 진짜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일부는 정말 어쩌다 보니 정착한 곳이 그 동네이고 정든 동네를 떠나기 싫어서 소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세금에 멱살 잡히는 기분일 것이다.


3. 조기은퇴 못하겠다.

내 꿈은 조기은퇴이다.

아니다 조기은퇴였다.

이제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또르륵. 내가 조기은퇴 하겠다 그러면 친구들이 비웃는다.

'조기'는 물 건너갔고 그냥 은퇴라고.


내 은퇴에 걸림돌은 근로자가 아닌 상황에서 내야 하는 건강보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재산세도 있었다.

건강보험은 내 계산하에 들어가 있어서 늘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며 생활비를 계산할 때 요리조리 잘 조리해서 끼워 넣었던 항목인데 재산세가 이렇게 클 줄 생각도 못한 나는,

그동안 이렇게 큰 금액을 내야 하는 재산을 소유한 적이 없던 나는,

고지된 재산세를 보고 넋을 잃었다.


내 꿈은 다주택자도 건물주도 아닌 은퇴한 무직자인데....

은퇴하고 제2의 인생 이따위 것 말고

한량, 무직자가 되는 것이다. 

망.했.다.

세금 내려고 적금 들어야 한다는 O언니의 말이 타투하듯 온몸에 새겨진 것 같다.



꿈을 이루기 힘들겠다는 절망.

이른 나이에 한량이 되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삶은 아니더라도 하기 싫은 것은 하고 살지 않는 삶

을 살고 싶다는 꿈은 그냥 꿈으로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2주택자로 처음 접한 재산세는 충격 그 자체였지만 이것은 2주택자가 아니라 내가 비싼 주택을 소유한 1주택자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주택자로서 실질적인 충격은 종합부동산세일 텐데 예기치 않게 여러 도움을 주시는 분들 덕분에(?!?!?!?) 금액이 매우 소소하여 다주택자의 충격이라고 보다는 그냥 그럴듯한 재산을 처음 소유하게 된 흙수저가 마주한 그들만의 세상, 혹은 충격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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