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톨이에게,

1. 너를 맞이하며.

by 알렉스

사랑하는 밤톨아, 아빠야.

너는 네 엄마 태중이고 우리가 너의 존재를 알게 된 지 7주 3일 즈음으로 정의되는 시기야.

성별도 모르고 아직 이름도 없는 (너의 태명은 밤톨이야) 너에게 아빠는 오늘부터 틈틈이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어. 요즘 사람의 삶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하거든. 삶을 지탱하기 위한 순간들은 필요 이상으로 긴 것 같은데 삶의 본질인 순간들은 너무 짧은 거 같아.

엄마가 너를 품고 있는 이 시기를 포함해서 너를 낳아 키우며 보내게 될 시간들이 자칫 허무해질까봐 틈틈이 글로써 뭐라도 남기고 싶어졌어. 우리가 살면서 아빠가 너에게 늘 멋진 모습만 보여주지도 못할 거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너가 아빠보다 강하고 현명해지는 시기가 오면 아빠 조언 같은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편지로 남길게 자라거든 아빠 일기장 훔쳐보는 마음으로 읽어봐.


아빠는 불필요한 순간에도 자칫 진지해지기 쉬운 사람이야. 너와 가벼이 대화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그게 잘 될까 모르겠다.


오늘은 2025년 7월 21일 월요일 밤 9시 4분이고 네 엄마는 침실에 엎드려 누워서 해리포터를 읽고 있어. 아주 숨길 건 없지만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 프로젝트는 자연히 들키게 되지 않는 한 굳이 밝히지 않을 요량이야. 말에는 여러 종류가 있거든. 아빠의 어머니에게는 할 수 있지만 네 엄마에게는 하지 않는 말, 반면 네 엄마에게는 털어놓지만 할머니에게는 굳이 하지 않는 말처럼 말이야. 너도 자라면서 아빠니까 하는 말과 아빠기 때문에 하지 않는 말이 생길 거야. "우리 사이에 비밀을 만들지 말자, 뭐든 편하게 털어놓자" 같이 동화 같은 약속을 강요하진 않을게. 네가 자라면서 잘 판단하겠지. 다만 아빠의 귀는 언제나 너에게 열어둘게.


너는 뱃속이고, 아빠는 햇수로 서른네 살이다.

언제 시간이 여기 닿았는지 모르겠다. 요즘 마음이 자주 추억을 돌아보곤 해. 아빠가 어려서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놀던 게 그리 오래지 않은 거 같은데 이제 널 낳아 학생으로 키워야 한다니. 역시 인생은 참 짧아. 그러니까 밤톨아, 너는 태어나거든 즐겁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아빠가 도와줄게.


오늘은 여기까지.

잘 자라.


추신.

태명은 설명해 줘야겠지?

네 외할머니께서 태몽을 꾸었는데 사과만 한 밤알을 한소쿠리 받으셨대.

"이건 밤이 아니야." 하실 정도로 크고 윤기도는 밤이었는데 그중 한 알을 외가의 고양이인 타래 삼촌이 물어갔다는 거야. 타래 삼촌을 네 어머니를 상징하는 존재로 생각하면 물려간 밤알이 너겠지? 이 밤톨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