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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Jun 05. 2024

'혁명의 맛'은 매콤하다?

2024년 5월 읽고 싶은 책 | 혁명의 맛 (가쓰미 요이치)

책속의 말

생채소를 바로 센 불에 볶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와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요리 시간을 단축하려고 인스턴트화를 시도한 이후의 일이다. (p.71)
왜 요리는 세월이 흐르면 스러지는 운명을 지닌 것일까. 그런 것보다, 하며 청 씨가 말했다. 중국의 맛은 남쪽은 달며 북쪽은 짜고 동쪽은 시며 서쪽은 맵다고 대략적으로 나눌 수 있었으나, 이 구분이 앞으로 몇 년이나 이어지겠나. 이제 순수한 만주족의 맛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한족도 마찬가지다. 베이징의 맛이 점점 더 케케묵은 맛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p.276-277)

중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의 먹거리였다. 한국 드라마였다면 커피를 사 들고 갔을 장면에서 중국 드라마의 주인공은 밀크티를 사 들고 갔고, 내가 먹어보지 못한 수많은 중국 요리가 드라마에 나왔다. 아는 중식이라고는 짜장면, 짬뽕처럼 현지화된 중식과 기껏해야 꿔바로우, 마라탕이 전부인지라 두 권의 책을 빌렸다. 한 권은 여기서 소개하지 않은 “중국의 맛”이라는 책이고 한 권이 바로 “혁명의 맛”이다. 

“중국의 맛”이 중국 사람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중국 사람이 선호하는 맛을 간단하게 설명했다면, 이 책은 중국 현대사에 따른 중국 요리의 변화를 다룬다. 특히 청나라부터 홍콩 반환까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에서는 일본인 저자가 중국에 자주 방문하여, 본인이 맛보고 직접 목격한 중국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마치 내가 그 역사적 현장에 있는 듯하다. 저자가 태어나기 이전 이야기도 묘사가 잘 된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이건 전적으로 저자의 역량으로 보인다.

고조선부터 민족의 구성이 비교적 균일했던 땅에서 살아온 나는 중국이 다양한 민족이 집권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렇게 중국 역사가 역동적인 만큼 중국 요리의 변화가 역동적이라는 게 보인다. 과연 ‘중국 요리’란 무엇일까? 싶을 정도였다. ‘중국 요리’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중국은 너무 복잡하고 넓은 나라다. 

중국 요리라는 것은 무엇인지 탐구하는데 한편으로는 한국 요리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지역의 음식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지, 그 나라의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지 이 책을 읽다 보면 고심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문화혁명 시기 식문화의 충격적인 변화는 문화로서의 음식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미식의 영역에서 확장된 음식은 역사와 상호작용해 문화가 되고, 이것이 다시 상호작용하며 음식에 영향을 미친다. 음식은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즈음 저자는 홍콩 반환의 순간을 지인과 함께 바라본다. 그는 변해가는 중국의 맛에 한탄하는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매우 쓸쓸하게 느껴졌다. ‘왜 요리는 세월이 흐르면 스러지는 운명을 지닌 것일까.’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며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는 게 음식의 맛이며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도, 영원할 수 없다는 그 사실 자체가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진다면 지나치게 과몰입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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