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눌루랄라
다정한 직업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기를 다룹니다.
이 한 마디로 N잡것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듯, 이 브런치의 시작이자 우리의 모든 글들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라면 단연 '다정한 직업인으로서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생각하는, 되고자 하는 '다정한 직업인상'에 대해서도 자주 고민하게 된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다정함이란 무엇일까. 내가 일을 하며 어떤 무정함에 상처받고, 또 어떤 다정함에 위로받았는 지를 떠올리면 금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정함에 이토록 집착하게 된 사연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A&R로 일하기 전, 나는 1년 정도 지역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막내 작가로 일했다. 내가 전담했던 건 지역 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교양 코너였는데, 매일 같이 인터뷰이를 탐색하고 섭외해 그들을 취재하는 게 주된 일과였다. 방송 원고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방송에 쓰일 인터뷰 음성을 편집하고, 직접 방송에 출연해 원고를 읽으며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도 내 일이었기에 왕왕 나를 리포터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에는 소질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글 쓰기에는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라디오 부스에 앉아 있으면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그렸던 꿈에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견고했던 '꿈뽕'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처절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서부터였는데, 업무 강도나 시간에 비하자면 너무도 터무니없는 급여와 몇몇 선배들의 도를 넘는 꼰대질,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의 처지가 그랬다. 4만원의 원고료를 받기 위해 왕복 택시비 2, 3만원을 써가며 일할 땐 시급이 1,000원에도 못 미치는 날이 수두룩했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었다. 취재원과의 의미 있는 만남으로 꽤 만족스러운 방송분이 나오는 날이면 어느 정도 보상이 되는 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방송국 내에 고여있던 악습과 소수 선배들의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는 늘 어린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상처는 더 깊게 곪아갔다. 작가가 됐다는 스스로의 자부심, 그걸 제외하면 나는 언제나 부모님과 사회의 걱정거리,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우리'라는 이름의 다정함이었다. 당시 같은 프로그램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가 내 SNS에서 일에 대한 고민을 적은 글을 보고 조심스럽게 아는 체를 해왔다. 힘든 일이 있을 땐 언제든지 본인에게 말하라고, 그간 몰라줘서 미안했다며 길지 않았지만 따뜻한 대화들을 나눴다. 그러던 중에 선배는 전국에서 뜻이 맞는 작가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여러 이유들로 노동법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단체가 궁금해 다음 모임에 곧장 따라나섰다. 이따금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서로가 처한 현실과 각자가 그것을 헤쳐온 방법, 앞으로 일하고 싶은 환경에 대한 것이었다. 후배들이 걸어갈 길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이들의 진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스러웠고, 각자의 성토대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고민할 땐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날 밤 일기엔 '깜깜한 지하철 플랫폼에 혼자 서 있는데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을 밝힌 열차가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유려하고 대단한 말 없이도 온전히 전해진 위로였다. '내가 너의 마음을 알아'라는 공감, 그게 참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해 가을, 방송작가유니온은 출범했지만 나는 얼마 뒤 결국 방송계를 떠났다. 정작 무정했던 사람과 부당했던 사회에게는 어떠한 사과나 위로도 받지 못했지만, 그때의 기억이 있어 포기하거나 도망치는 기분이지만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타의에 의해 좋아하는 마음을 잃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그것이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흡혈귀가 된 첫사랑과 13년 만에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고아라 작가의 만화 <마음의 숙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실마리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대단한 일들을 해내곤 한다.
엄청난 일들을 저지르기도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여기저기 선한 영향력을 뿌려가며 살아가고 싶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인생일 텐데.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주인공이 후배가 던진 전혀 상관없는 말 한마디 속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정을 붙일 실마리를 얻었다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대사다. 가만 보면, 다정한 말에는 생명력이 있다. 의심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면 빈 마음에 가 꼭 맞는 모양으로 자리한다. 무엇이 되길 바라며 건넨 말이 아니라도 그것은 살아 분명하게 무엇이 된다.
그 선배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몇 마디 말이 실질적으로 힘든 일을 덜어주거나 부족한 보상을 더해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받은 것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을 전했을지 모른다. 조합원으로 함께하며 힘을 실어줄 동료가 필요했기에 선뜻 손을 내밀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그들의 다정함에 위로받았다는 거다. 그들이 그리는 일터에서는 미래를 꿈꾸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거면 됐다. 누군가 내 수고를 알아준다는 것. 내 일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그 가치를 함께 지켜내자고 말해주는 것. 내 편이 돼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은 더 해볼 만하다.
대단치 않아도 누군가의 꿈을 지켜주는 다정함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대단한 일들을 해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