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엘리멘탈>을 봤다. 티켓이 하도 비싸니 OTT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는데, 쏟아지는 호평에 영화관에 안 갈 수가 없었다. 내게 주어진 배경지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로맨스, 다른 것은 K장녀다! 솔직히 어떤 전개일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걱정됐다. 장녀로서 받는 기대와 부담을 한껏 안고 있는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다라- 잘못하면 너무 뻔한 내용이지 않나. 균형이 안 맞으면 K장녀나 로맨스 두 요소 중 하나가 붕 뜨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엘리멘탈> 은 K장녀 앰버의 사랑과 성장을 다룬다. 훌륭한 이야기라기보단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상영관을 나오는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었다. 무지개 장면 진짜 멋지지 않아? ost 진짜 좋다. 웨이드 귀여워. 나는 이 세 문장을 여러 번 들었다. 나부터도 상기된 목소리로 동행에게 종알댔으니까.
무지개 장면에 초점을 맞춰보자. 무지개를 만들기 위해선 힘차게 달려야 한다. 웨이드는 앰버를 위해 주저 않고 달렸고 무지개를 선물한다. 환상적인 상자에 넣어서- 세상엔 수많은 색이 있음을 알려준다. 무지개를 닮은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방식이 있고, 모든 삶은 빛나기 그지없다고. 앰버, 네 삶도 그래. 어떤 방식이든 간에 아름다울 거야. 나는 웨이드의 선물에서 다정한 메시지를 보았다.
그렇다면 앰버가 추구하던 삶은 무엇일까? 앰버가 생각하는 본인의 빛깔은 어떤 색이었을까? 아버지가 일궈낸 가게를 훌륭히 이어받는 것,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것. 가게를 맡은 앰버는 자주 화내고 보라색으로 변한다. 마음대로 풀리는 건 하나도 없고 모두 극성맞은 제 탓인 것만 같다. 자책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게를 잘 운영해 가는 것은 좋은 딸임을 증명하고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앰버에게 good daughter라고 말하는 것처럼, 앰버는 좋은 딸이 되어야만 했다. 물론 가업을 잇는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어떤 이에겐 무지개처럼 빛나는 삶이다.
다만 앰버에겐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앰버는 본인이 아닌 가족에 초점을 맞춰 삶을 틀어간다. 마치 기린 퍼즐에 얼룩말 조각을 끼운 것처럼 이상하다. 이대로라면 퍼즐은 완성되지 않는다.
이때 사랑이 등장하는 것이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운명적이다. 다투고 우린 절대 안 될 거라고 말하면서도. 우린 불과 물과 같은 존재라고.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렇듯 기적적으로- 함께한다. 생각지도 않은, 어쩌면 미친 짓이라고 불리는 걸 해도 앰버와 웨이드는 여전히 앰버와 웨이드다. 절대 못 볼 거라고 생각했던 꽃을 본 건 사랑이었고, 도망쳤어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도 사랑이었다. 앰버가 가게를 잇지 않는다고 해도 무너지는 건 없다. 부모님은 여전히 앰버를 사랑하고 앰버는 여전히 좋은 딸이었다.
삶엔 절대적인 건 없다. 앰버는 사랑하고 성장하며 깨닫는다. 둘 중 하나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어쩌면 사랑과 성장 모두 필연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나가 없어도 성립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사랑과 성장은 같다. 무언가 사랑하지 않고선 성장할 수 없고- 성장하기 위해선 사랑이 필요하니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던 말이다. 드넓은 바다로 나가는 앰버와 웨이드를 보며 관객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모든 이들의 머릿속을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이라는 무지개에서 나는 무슨 빛깔을 띄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름다울 거라고. 그 여름밤, 나는 엘리멘탈과 사랑에 빠졌고 동시에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