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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Oct 06. 2022

코로나의 추억

#1 인간 코로나

나는 지금 코로나를 마시고 있다. 길다란 주둥이에 속이 훤히 보이는 멕시코산 맥주, 코로나 말이다.

저물어가는 나의 30대, 돌이켜보면 코로나와 함께 한 순간이 많았다. 


#1. 인간 코로나 

딱 서른이 되던 해, 나는 홍대의 작은 바에서 짧게 일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토요일 단 하루만 바텐더로 일했다. 경력도 실력도 뭣도 없었지만, 그저 술이 좋아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이 되서 회사에서보다 더 열심히 일했었던 기억이 난다. 


매주 토요일, 피크 시간 이후에 혼자 오는 손님이 있었다. 뭐 하는 사람인진 잘 모르겠으나 매우 단정했고, 오면 꼭 코로나를 시켰다. 다른 주문은 없었다. 오직 코로나. 그 뿐이었다. 당시 카스가 4000원, 코로나가 8000원이었기에 코로나를 마시는 손님은 그가 유일했다.


아무튼 우리 가게에는 일종의 미신 같은 게 있었다. 혼자 오는 손님은 ㄸㄹㅇ일 확률이 높다는.. 당시만 해도 혼술 분위기도 아니고, 바bar 라고는 하지만 홍대에 위치한 캐주얼한 곳이다보니 대부분은 20대 무리들이 왔기 때문에 용감히 가게로 혼자 들어서는 손님은 정말 드물 수 밖에 없었다. 


사장님 포함 알바들은 그 미신의 위력을 이미 경험한 바 있어, 인간 코로나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무관심으로 대응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모를 측은함에 휴머니즘을 발휘해 뻥튀기 한 종지를 내밀었다. - 알바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호의! - 안주를 시키지 않는 손님에게 이거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평소에도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바텐더로서는 매우매우매우 부적합한 사람이다. 뻥튀기 한 종지를 내밀고 나서는 아차 싶었다. 말이라도 걸면 어떡하지.. 괜한 일을 한 건 아닌지 너무너무 걱정이 됐다. 다행히 인간 코로나는 나의 이런 성격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매주 토요일 가게로 갔고, 그도 매주 토요일 가게로 향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천천히 친해질 수가 있었다.


그런 인간 코로나가 나를 이곳 남미, 파라과이로 이끈 친구다. 자신은 맥주 밖에 마실 줄 모르는데 그 중에서도 코로나 말고 다른 맥주는 잘 모른다고 했다. 코로나 3병만 마셔도 취하던 친구가 나중에는 나와 함께 마시면서 코로나 7병까지도 거뜬히 마시게 됐다.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맥주 빼고 모든 술을 즐기던 나도 이 후부터는 적어도 코로나에 있어서는 관용을 베풀게 됐다. 코로나라면 아무튼 괜찮을 것 같았다. 


이 후로 코로나에 위로 받을 때가 많다. 힘든 하루 끝에 라임즙을 듬뿍 짜 넣은 코로나를 한 잔 하면 짭짤하면서도 달달하고 고소한 끝 맛에 그냥 마냥 녹아내린다. 오늘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무렴 어떠냐고.. 코로나는 그렇게 무심하지만 시원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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