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크리스마스에 대한 단상
바야흐로 12월. 한파 속 한국과는 정반대로, 이곳 남미에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다. 이곳(파라과이)에 온지 6년 정도 지났지만 무더운 12월은 아직도 조금 어색하다(반대로 추운 7월도 그렇다). 한국이 추워질수록 지구반대편은 뜨거워진다. 움츠렸던 지난 2년간의 코시국을 뒤로 하고, 올해는 제법 연말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이곳에는 (당연히!)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느낌 가득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곳곳에 나타나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나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답답한데, 이곳 사람들은 너무도 익숙하게 여름날의 겨울을 즐긴다. 한쪽에선 징글벨이 정말 징글징글하게 들릴 때까지, 스피커가 찢어지도록 캐럴을 크게 틀어 놓는다. 따가운 햇빛으로 행인들의 얼굴은 붉게 타오르고, 거리 위의 캐럴은 갓난 아이의 울음처럼 우렁차게, 절정을 향해 울려 퍼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국에선 주로 친구나 연인과 함께하지만, 이곳에서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으로 치면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 느낌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에는 문을 여는 상점이 거의 없다. 우리 가게 역시 24일은 오전 영업만 하고, 직원들에게 지난 1년간의 보너스와 빵둘세(크리스마스에 먹는 빵, 단맛이 특징이다)와 시드라(크리스마스에 마시는 샴페인)를 선물한다. 명절선물세트처럼 두 손 가득 빵과 샴페인을 들고, 가방에는 두둑한 보너스를 챙겨 연말을 맞는 것이다. 코로나로 가장 어려웠을 때도, 조금은 해소되고 있는 지금에도 늘 한결같이 으쌰으쌰 해주는 직원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올해도 많지는 않지만, 작은 정성을 더해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따뜻하다못해 아주아주 뜨겁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한편 월드컵을 보면서 뜨거운 크리스마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봤다. 12월이지만 기존과 동일하게 6월에 하는 느낌을 주는(?) 이번 대회는 이곳에서 보기에 전혀 이질감이 없다. 거리의 사람들은 반팔차림이고 햇살은 카타르보다 더 뜨겁다. 검색해보니 카타르는 삼면이 바다여서 더위와 더불어 습기까지 굉장한 수준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여서 그런지 습기가 적은, 마른 더위의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습한 여름을 무척 힘들어 하기 때문에 이곳이 한국의 여름보다 오히려 견딜만하다. 아니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견딜만했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 더위의 양상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습기가 많아졌고, 비도 전보다 많이 오고 한여름의 평균 기온도 낮아졌다! 연일 40도를 웃돌았었는데 요즘은 35도를 상회하는 수준이니 말이다. 더운 나라는 더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과일이나 야채의 상태도 전에 비해 현저히 나빠졌다. 마당에서 잘 자라던 망고나무는 뜨겁지 않은 기온 때문에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계속해서 썩거나 떨어진다. 한 해 한 해 기후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한 30년쯤 지나면 이곳의 크리스마스도 선선해 지게 될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가을의 크리스마스로 변하게 될까? 단상으로 시작했는데 갑자기 생각들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