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게 의미가 크다. 유난히 한국인인들에게만 그런 걸로 느껴진다. 어딜 가든 먹을 게 널린 우리네와는 다른 유럽에서 지낸 시간만큼 우린 먹거리에서만큼은 풍요로움과 동시에 평등함을 느끼고자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분당이 성공적인 1기 신도시로 자리 잡는데 과정에 분당에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고향 아닌 고향은 분당이다. S는 고2 1년 내내 나의 절친이었다. S가 나를 절친이라 불렀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렇게 S에 대한 기억을 자세히 소환할 수 있으리라.
하이츄를 모방한 마이츄가 나오기도 전이였다. 하이츄를 파는 가게는 드물었다. 하이츄는 나름 고가의 희소가치가 있는 군것질이었다. S가 나를 절친이라 불렀지만, 나는 S를 절친으로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요구르트맛 하이츄때문이였다.
일본어 포장부터가 희소함을 자랑하는 하늘색 하이츄를 S는 먹고 있었다. 얼굴만 봐도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새로운 먹거리라니! 원래도 새로운 거라면 환장하는 10대의 호박씨인 데다, 야간자율학습의 유일한 낙은 먹는 행위인 상황에서 S는, 나를 절친이라 부르는 S는 혼자 묵묵히 껍질을 까 유유히 자기 입으로 집어넣었다. 육각형의 텍스쳐를 보기만 해도 이미 맛은 예상되었다. 쫀쫀해서 적당히 단단해 보이는 겉면 하며, 껍데기만 까도 맡을 수 있는 요구르트 향까지 S의 표정은 이미 느끼고도 남았다.
권하지 않으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먹어도 되냐고 묻기 조차 수치스러웠다. 관계의 현타가 뇌리를 힘차게 때렸다. S는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서 내가 필요한가 보다 싶었다. 화장실 같이 가려고 또는 오락실 끌고 가려고, 그도 아니라면 공주놀이에 없어선 안될 시녀 노릇을 위해서 내가 그녀의 절친이었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일어나고, S의 아버지는 삼성전자의 하청 업체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S는 아버지의 직업이나 집으로 흘러들어오는 돈의 규모를 내게 곧잘 말해주곤 했다. 덕분에 S의 아버지가 강압적이고, S의 엄마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으며 들어오는 돈과는 반비례하게 집안 분위기가 흉흉해지는 때도 있다는 고민을 상담했다. 고민 상담인데 내겐 돈 들어온다는 소리만 들렸다.
아, 그래서 하이츄를 쌓아놓고 먹을 수 있는 게로구나 싶었다. 먹고 싶다, 하이츄... 나도 원 없이 먹고 싶었다.
남편이 미국 출장을 갔다. 그가 돌아오면 부지런히 저녁을 차려줄 요량으로 그가 없는 동안은 끼니 준비를 최대한 간단히 한다. 음식 배달은 쓰레기가 많이 나오니 아이들을 데리고 걸어서 15분 거리의 강남역에서 저녁 외식을 한다. 플러스 뱅크에 넣어둔 내 월급을 꺼내서 아이들과 딤섬을 먹었다. 20,30대들이 바글바글한 딤섬 섬집을 선택한 이유는 회사가 이용하는 공유 오피스와 딤섬레스토랑이 콜라보를 해서 15퍼센트 할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 많은 강남역 음식점 중에서 할인되는 곳이 생기면 챙겨 가줘야 한다.
실컷 딤섬을 먹고 나온 아이들이 편의점으로 줄달음친다. 아이들 손에 들린 건 복숭아 맛 하이츄. 딤섬 사줬으니 편의점 군것질은 너희들 돈으로 내라고 했더니 사 온 게 하필이면 하이츄다.
딱 큰 아이만 할 때 S가 먹는 하이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옛날의 호박씨가 오늘 이 순간 편의점 앞을 잠시 왔다 간 듯하다. 각 맛 별로 하이츄를 들고 온 작은 아이가 이 편의점에만 하이츄 맛이 다양하다며 다양하게 골라온 하이츄를 내게 보여준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어 보인다.
S처럼 하이츄를 혼자 까먹을 줄 모르고 자꾸 내게 권한다. 엄마, 복숭아 맛이 제일 맛있어라며 자꾸 껍질을 까서 내민다. 흐릿한 복숭아 향이 코를 스친다. 권해줘서 마냥 고맙다. 이제 그날의 S도, 요구르트맛 하이츄를 향해 가진 억하심정도 떠나보내야겠다.
아이들이 하이츄 플렉스를 하고 살 수 있을 만큼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그거면 된다.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