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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Sep 22. 2024

노아의 방주에 함께 타실래요

 사람을 접시라고 생각해 보자. 생각을 담는 접시, 생명을 담은 그릇, 향유할 수 있는 정도의 부를 가질 접시라고 바라본다면 이야기를 풀어내기 쉬운 경우가 많다. 흔하게들 바라는 강남 아파트 당첨이 되고 나니 나란 접시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아, 나는 이 과정을 겪어낼 수 있는 접시인가 싶은 순간을 자주 맞닥 드린다. 

 분양이 되자마자 처음 전화한 데가 당연히 친정 엄마였다. 엄마에게 계약금의 일부를 빌려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그날부터 엄마는 나와 이야기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엄마와 순도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간 엄마와 했던 많은 대화들을 떠올리고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어렵고 힘들 일이 닥치면, 우린 가장 가까운데 있는 관계인 가족을 탓하기 쉽다. 노아의 방주엔 노아 혼자가 아닌 노아의 가족들이 함께 탔을 터인데 그렇다면 노아는 성공한 인생일 수밖에 없다. 지구 대멸망의 날만큼 큰 일을 겪는 순간 혼자가 아니면 된다. 내 옆에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단 한 명만 존재해도 그 삶은 꽤나 멋진 것이다. 대홍수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또는 신에게 나만 선택받는 그 특별함의 순간 인간은 외롭기 그지없다. 위기는 기회란 말은 뻔하지만 진리인 셈이다. 

 엄마와의 대화가 쉽지 않은데, 동생과의 대화는 더 힘들게 마련일 게다. 비록 실패로 돌아간 창업이지만, 그녀와의 소통도 처절한 실패였지만 그래도 우린 말은 통하는 자매지 싶었는데 그렇진 않았다. 결국 나와 함께 밥 먹는 가족, 남편이나 아이들보다 거리가 먼 사람들이 친정식구들이라는 걸 알아가는 지금은 생각보다 아프다. 난 여전히도 동생에게 축하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말이 뭐가 중하냐 하겠지만 난 말이 중하다. 그러니 섭섭함은 번지고 지나간 시간들은 자꾸 곱씹어진다. 




 공황 장애를 겪고 신경쇠약을 약과 병원 없이 극복하는 과정이다. 남은 나의 삶들은 지나간 그 시련을 내내 기억하고 두려워하는 시간들일 수 있다. 어떻게 죽지 않고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해 보면, 내게 가장 큰 힘을 준건 나 자신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고 바랄 수 없었다. 친정은 떠나온 지 벌써 한참이고 믿는 구석이라고 생각하기엔 이미 부모님은 힘이 빠지신 지 오래다. 그런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생 또한 부모님들의 리듬에 맞춰 가고 있는 중이란 걸 받아들이기가 시리고 어렵다. 아이들에게 밥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일어났고, 아이들과 외출을 해야 하니 지하철을 탈 수 있어야 한다 싶었다. 

 도움을 받아 일어난 게 아니라, 일어나야 한다는 상황이 나를 일으켰다. 거들어 줄 노아의 와이프 같은 이 단 한 명을 바라보지만, 그건 바란다고 되는 일이 아닌다. 동물들을 싣고 있던 노아의 옆에서 그를 돕는 와이프는 자발적이었을 테니 말이다. 노아가 바란다고 와이프가 기린을 방주에 태웠겠는가? 어디까지나 그녀가 기꺼이 했을 터이다. 

 당첨이 된 날과 그 주 내내 남편과 거듭 다짐을 했다. 우리는 한 팀이고 입주하기까지 남은 2년 동안 싸우지 말자고 여러 번 중얼거렸다.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어렵고 난처한 순간에 쓰러질 지경의 서로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힘든 순간 왜 내 옆에 있지 않아 주었냐고 탓하지 않는 접시가 되어야 한다. 

 나란 접시는 작아 욕심을 담을 수 없어서 넘치고 흘러나오는 이 상황은 가족도 친정 식구들의 탓, 그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나란 접시에 적당하고 딱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건 우연한 행운일 뿐이듯, 불운함도 아주 우연하다는 걸 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버거움에 지쳐 가족을 탓하고 있진 않은지 묻고 싶다. 혈연 또는 가족, 가까운 관계들을 탓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하길 빈다. 중학교 중간고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번 주 내내 고슴도치처럼 예민해져 있는 작은 아이와 사춘기의 무게에 넘어져있던 큰 아이가 내게 외쳤던 '엄마 탓', '이 모든 건 엄마 탓'이라는 그 말을 잊지 않는다. 상처는 아물어 가고 있지만, 나 또한 아이처럼 사춘기의 한창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어지나 보다. 방주는 못 지을지언정, 이 얇은 내 접시라도 박살 내어 조금은 더 큰 접시를 빚어내는 중엔 외롭게 마련이란 걸 이젠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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