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함이 묻어나는 뒷모습이 보인다. 내게도 그녀와 같은 뒷모습이었던 날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한가로운 주말 토요일 오후 어디로 간 걸까?
요샌 누군가의 뒤에 서고 싶어 진다. 눈을 맞추고 이를 드러내고 날을 세우기보단 등과 어깨에서 시간을 읽고 마음을 보고 상태를 더듬어보는 거다. 메밀전문 식당을 내건 경기도 변두리 식당은 테이블이 10개가 넘었다. 아내로 보이는 주방장과 남편으로 보이는 식당 주인, 얼추 나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부부가 운영하는 음식점이었다. 어김없이 식당 주인은 골프 채널을 틀어두었고, 아이가 너른 식당의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남편보다 앞서 자리를 잡았다. 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이들이 11시 방향으로 보이는 테이블에 앉고 싶었다.
아이를 바라보았다. 테이블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도 우리가 앉은 쪽으론 오지 않는다. 사람이 없는 테이블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내 시선을 느꼈을 텐데 아이는 나와 눈 맞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는 누구나 마다 아이를 보고 미소 지었다면, 아마 아이는 금세 내 주변에 맴돌았을지 모른다. 나와 눈을 마주어 미소를 건넬 시간을 내주었을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킥보드가 놓인 의자 옆에 앉은 그녀의 등에서 나이가 느껴진다. 그녀에겐 5살 정도의 남자아이 한 명뿐인데, 어찌하여 그녀에게선 나이 든 여자의 무게가 묻어나는 건지. 엄마가 아닌 걸까 궁금했는데 음식이 나오자 궁금증은 금세 해결되었다. 맵지 않은 막구수 딱 한 그릇만 시켰고, 주인에게 덜어먹을 아기용 앞접시를 부탁하고 있었다. 가위로 아이가 먹을 만큼 덜어 내고 아이를 부른다. 그녀는 엄마다.
불쌍하다했다. 남편이 내게 안됬다고 했다. 남편은 말재주가 없다. 여자 친구나 아내가 듣기 좋게 꾸며낸 말을 할 줄 모르기에 나쁘게 말하면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셈이고, 좋게 말하면 거짓말은 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오늘처럼 날씨가 흐린 여름과 가을 그 사이의 어느 날이었다. 서울대공원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큰 마음을 먹고 온 대공원인데, 날씨도 찌부두했고 내 상태도 그렇했다. 얼마 만에 남편이 골아떨어지지 않고 깨어있는 주말인지, 어떻게 마련한 네 식구의 시간인데....
서울대공원 구내식당엔 우리뿐이었다. 돈가스 1개와 라면 한 접시를 시켜 라면은 남편 앞에 돈가스는 애들 앞에 두었다. 두 아이에게 돈가스를 나눠주고 나니 남은 건 소스와 흰 밥이 다였다. 소스에 젖은 튀긴 빵가루를 밥에 적당히 비벼 두 숟갈 먹었을 때였다. 물끄러미 보던 남편이 내게 안됬다고 했다.
아이는 잘 먹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아이를 재촉하지도 않는다. 적당히 아이가 먹었다 싶은지 그녀가 국물을 들이켜고는 아이의 킥보드를 챙겨 일어난다. 엄마가 별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조용히 엄마의 뒤를 따른다.
아이가 홀을 다 돌아다녀도 별 말을 하지 않는 주인이 마음에 들었다. 장사도 안되는데 두 사람이 와서 한 그릇만 주문했다고 타박할 기색도 없었다. 아이용 접시와 포크도 암말 없이 가져다주는 주인 부부가 고마워 막국수와 메밀전병을 먹고도 메밀전병 포장을 했다. 작은 아이가 좋아한다고 남편에게 서너 번을 조르니 그제야 남편은 포장을 주문한다.
"사실 나 메밀전병 엄청 좋아해."
"몰랐어."
그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 스스로 내가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모르고 산 세월이 10년이 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완전히 나를 잃지는 않았기에 "난 이게 좋아." 또는 "난 이게 싫어"를 소리 높이는 요새다. 포장 주문까지 하니 주인아저씨의 얼굴색이 밝아진다. 소주도 한 병 시켰으면 더 좋았겠다만 우리 부부는 술엔 젬병이다.
어찌나 뜨끈한지 열기가 포일 밖으로 삐져나오는 전병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 음식점을 나간 지 한참인 아이와 엄마가 저 앞에 보인다. 한 손엔 아이 킥보드를, 다른 손은 아이 손을 잡은 그녀는 빠르지 않다. 잘 먹은 둘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집게 핀으로 대충 말아 올린 머리 덕에 그녀가 꽤 나이 들었다고, 노산인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와 걸어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생기 넘친다. 메밀국수 덕인가보다.
15년 전 대공원 식당에서 돈가스 접시 바닥을 긁어 포크로 야물 지게 먹었던 그때의 내 뒷모습 역시 씩씩했을는지도 모른다. 비록 나를 바라보던 배우자는 날 어여삐 여겼을지언정, 분명 어린 엄마였던 나의 뒤는 젊고 예뻤을 것이다.
사진: Unsplash의Toa Hefti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