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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Oct 07. 2024

오해는 금물

분양받은 아파트 대금 때문에 친정 부모님께 연락할 일이 부쩍 늘었다. 맡겨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뭔가를 맞겨둔 빚쟁이처럼 급하게 융통할 돈이 있으시냐고 묻게된다. 인생 최대의 로또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봐주세요라는 말은 가슴에 새기고 연락을 자꾸 드리는 쪽으로 작전을 바꿨다. 청약 당첨이 아니고서라도 난 이틀 걸러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일찌감치 시집간 장녀였으니 무지막지하게 어색한 일은 아니다.

 


 

실버타운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가는 건 사실 온전히 내 엄마 아빠를 위해서였다. 남편과 할머니를 뵙고 오는 건으로 엄마, 아빠와 네 다섯번은 전화를 하게되었다. 어떻게든 두 분과 돈 외에 공통 주제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100살을 향해 가시는 할머니를 방문할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내겐 복인게다. 아파트 계약금 내고나니 잔고가 0도 아닌 마이너스인 상태라 할머니께 내미는 봉투엔 고작 10만원이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이런 건 뭐하러 주냐고 하셨다.

"도둑이 있어서 집에 현금도 못놔둔다니까."

주기적으로 할머니의 실버타운을 청소와 정돈해주시는 분이 화장대와 서랍에 있던 물건이나 돈을 가져가신다는 이야기였다. 금시초문이라 할머니 이야기를 잘 들어드렸고, 그런 일이 있냐면서 대꾸해드렸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 많다니까."

 실버타운에 함께 지내시는 분들을 통해서 검증까지 받으신 눈치다. 드린 돈 잘 보관 하셔야겠다며 할머니의 고민을 공유해드렸는데도 실버타운을 나서자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는 할머니의 자식이 아니라 손녀일 뿐이며, 할머니를 돌봄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는 게다. 




"할머니가 치매인거 같다고 고모가 그런다."

 아빠의 목소리엔 근심이 서려있다. 은행 업무 때문에 아빠의 도움이 필요해서 건 전화였는데, 우린 돈 이야기는 1분도 채 나누지 않았고 온통 할머니의 치매 이야기였다. 아빠와 전화통화를 길게 나눈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빠는 고모들의 말을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자꾸 할머니의 상태에 대한 생각을 내게 건낸다. 한글날 할머니에게 가서 고기라도 사드려야겠다고 하길래 냉큼 나도 그 날 가겠다고 했다. 한글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어제 다짐했것만 만 하루를 채 못채우고 스케줄을 또 잡고 있다니...

전화를 통해서 아빠의 표정이 읽어진다. 함께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의 상태를 체크해준다면 기쁘다는 감정은 핸드폰을 타고 내게 전해진다. 전업 주부로 살아온 고모들이 할머니를 돌보는데 주로 시간을 쏟고있으니 할머니의 상태에 대한 평가는 고모들이 내리고 있는 중이다. 아빠로썬 그런 고모들의 이야기가 믿음직 스럽지 않지만, 엄마를 챙겨주는 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좀더 세밀히 관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아빠가 기뻐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있다면 그걸 하면 된다. 잘보이겠다고 증여 한 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이러는게 아니다. 아빠의 근심을 덜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것이다. 어쩔려고 그 비싼 아파트를 청약했냐는 소리를 들은지 한 달 밖에 안되었으니 뭐라도 해야한다. 아빠의 예상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아빠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덜어지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할머니는 비록 고기 한 점 정도 드시겠지만, 할머니가 식사하시는 모습을 함께 직관하고 나면 아빠의 마음은 분명 편안해질 것이다. 아빠도 노인이니 말이다. 내 자식들에게 쏟는 시간과 관심의 1/10만으로도 아빠의 기분은 달라질 예정이다. 


사진: UnsplashThe New York Public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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