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내내 남편에게 삐져있는 상태다. 나라는 인간은 노벨상 때문에 남편이란 존재에게 화를 낸다. 어릴 때도 그래왔고 오늘도 그러하다.
"마지막 승부"의 마지막 회차였다. 잠을 이룰 수가 없을 만큼 설렜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니, 근데 이걸 나만 혼자 보고 있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일찌감치 등교한 학교에서 누구에게 말을 걸어볼까 두리번거렸지만, 상고냐 인문계냐를 고민하는 학교였다. 한가롭게 달밤에 드라마를 보기보단 아이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도서관 비슷한 데 가서 남중 애들을 만나는 게 보편적인 학교였다. 책을 읽는 아이는 오로지 나뿐이었고, 이야기라면 사죽을 못쓰는 아이는 나 하나였다. 다른 아이가 있었을지언정 내겐 그런 귀한 인연을 만날 기회는 그 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오지 않았다.
" 이곳에서 친구 만들기가 쉽지 않구나" 하고 스스로를 뼈저리게 바라보는 날이었다. 주변 아이들이 주로 쉬는 시간을 메우던 소일은 눈썹을 다듬거나 앞머리를 자르거나 매점 간식을 사 먹는 일이었다. 지금은 재건축이 되어 반듯하기 이를 데 없는 동네지만, 그 당시는 언덕을 채우는 달동네 주택들이 그 동네의 주인이었다. 떡볶이를 사 먹을 용돈이 없던 그녀들이었다.
그럭저럭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던 날들이었는데, '마지막 승부'의 16부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돌아온 그날은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날부터 나는 이야기꾼들을 질투하고 샘내고 부러워하다 못해 분노하기도 하는가 보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영화 한 편이 극장에 걸리기까지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신나는 황홀경에 빠졌을까 알고도 남는다.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는 날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호수가 되는 날도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만큼은 키 작고 안경 쓴 아무나 여중생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의 목소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수없이 많은 이들과 공유되는 순간을 누리는 그 어떤 이야기꾼이든 나는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보이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 터이다. 영화라면 영화 제작자, 투자사부터 시작할 것이며, 책이라면 가족이라는 독자로부터 시작하여 번역가까지 아우를 테지. 부럽다. 부러움이 극에 달한다. 그만큼 나의 외로움은 깊다.
매일 남편과 산책을 한다. 일주일에 4번은 그와 함께 산책을 하는 중이다. 아파트 당첨이라는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선 그와의 협력이 최우선순위다. 팀장이라는 직책이 여유로워진 그는 큰 아이 양육이라는 짐도 덜어주고 있다. 두 아이를 독박으로 키운 시간의 무게만큼 그는 아이들에 대해서 무지하니 지금이라도 그가 함께 해주니 뿌듯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노벨문학상 누가 탄 줄 아세요?"
낯선 이가 말을 건넨다. 그는 멀리서부터 우리를 바라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우리 쪽으로 멈춰 서서 말을 건다. 남편은 걸음 속도를 늦추지 않고 걸어 나가고, 나는 낯선 이에게 눈으로 답을 물었다.
"한강 작가요."
탄성이 나왔다. 나의 탄성에 만족한 남자는 오던 길을 마저 걸어 나가고 남편은 뒤돌아보며 여전히 걷는 중이다.
기쁨이 벅차올라 남편에게 한강 작가에 대해서 설명하자 남편이 말한다.
"우리가 착하게 생겼나 봐. 지나가던 사람이 말도 걸고 말이야. 길도 참 자주 묻더라고."
노벨문학상이든 한강 작가든 남편은 관심이 1도 없다. 그가 책이란 걸 읽은 지는 참으로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는 나의 글도, 포스팅도 나의 꿈도 알지 못한다. 글을 그에게 공유하지 않은 건 글을 쓰고 3개월 정도 후였다. 글에 자신의 회사에 대한 내용과 관련 있는 사항이나 주재에 대한 이야기를 내려달라고 하는 날로부터 그에게 글, 작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읽기만 하는 척하고 있다. 나의 정확히 절반만을 그에게 공유하는 중이다. 책에 대해서야 아무리 남편이 말을 끊는다고 해도 그에게 비밀은 아니니 얼마든지 떠들어댈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책 제목은 훤히 알고 있고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 후보 중 확률이 낮은 편이었다고 주절주절 거렸다.
그다음 말은 뭐였을까?
침묵이었나 보다.
남편과의 대화를 이어가려면, 그가 조금이라도 아는 주제여야 하고 그가 잘 아는 주제 거나 관심이 많은 주제에 한해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흥에 겨워 잊고 있었다.
여느 중산층, 여느 중년 여성과는 다른 눈을 가지고 사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함께 책을 읽거나, 말이 잘 통하는 이들에게 종종 글을 쓴다고 작가가 꿈이라고 소중한 비밀을 공유하곤 했는데 실제 그들 중에서 내 글을 꾸준히 읽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나이까지 되었다. 마지막 승부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섭섭하던 여중생은 이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중년이 되었다. 글을 쓰는 이 황홀한 순간의 맛을 아는 작가가 되었다. 한강작가의 노벨 문학상 덕분에 외로움이 깊어지는 작가가 된 어제라니!
사진: Unsplash의Nick Fe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