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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natured Jul 03. 2024

[Review]소송은 진행 중, ‘카프카의 마지막소송

자기혐오, 무국적성, 불완전의 유해 속에서




 


어느 여름날 '변신'이 남긴 기억



카프카가 남긴 유산이 얼마나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소송을 불러일으켰는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전에. 카프카의 ‘변신’을 마주했던 첫 기억을 먼저 더듬어본다. 진을 빼놓던 입시 공부 틈으로, 공식적 딴짓의 장이었던 달콤한 주말의 인문학 동아리 시간. 별일 없으면 문과를 선택하겠지 싶었던 고1 여름 어느날, 그의 ‘변신’을 처음 읽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리고 좁은 시야를 가진 고등학생에게는 얼마나 어렵고 어이없는 첫 줄이었는지.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를 뒤좇는 가족들의 무자비한 외면과 멸시가 담긴 문장들. 얇은 책이라고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수능이나 내신과 연관성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배경지식도 없이 내재적 관점으로만 바삐 읽어내려간 텍스트였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연적 외로움과 배금주의 등등..으로 갈무리하고 덮어버린 작품이었다. 그런 카프카를 다시 사후 소송에 대한 이야기로 만나보다니, 어려움과 막막함을 뒤로 하고 그를 공부해볼 요량으로 첫장을 넘겼다.


 


 

막스 브로트, 양날의 검



카프카는 평생을 자신 안의 혐오와 부정으로 싸운 인간이었다.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불안을 그렇기에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일을 우울과 불안, 그외 다수 부정적 자아들과 싸워가며 남긴 작품들은 그를 실존적 체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부르게 했다. 그런 카프카가, 수많은 사적인 편지와 일기, 작품들을 출간할 수 있었던 데는 막스 브로트의 역할이 매우 컸다. 



첫 만남에서부터 카프카의 아우라와 작품성에 휘감겨 정반대 성향의 그를 다그치고 다독이며 작품 출간을 도운 막스는 카프카 유산의 집행 관리인이라는 책임을 적극적으로 떠맡는다. 카프카가 자신의 ‘낙서들’을 모조리 불태워 달라는 마지막 말을 무시 또는 왜곡한 채로. 


 

브로트가 카프카의 작품들을 얼마나 원본에 가깝게 편집, 출간했는가 혹은 곡해한 것은 아닌가를 두고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그러나 그 모든 분쟁마저도, 그가 아니었다면 기라성 같은 작품들을 후세는 경험하지 못했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바로 그 유산들 덕에 이러한 전례없는 역사적 소송도 시작되었고 말이다. 



 



2007년 이스라엘 당국은 텔아비브에 사는 에바 호페라는 73세 여성에게 카프카와 브로트의 원고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생전에 카프카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혈연관계도 아니었던 호페는 어떻게 해서 카프카 원고를 점유하게 되었을까? 또 프라하에 살았던 독일어권 유대인 작가 카프카의 유고에 대해 이스라엘이 권리 주장을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이 문화 전쟁에 독일이 참전한 계기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소송의 쟁점은 무엇이며, 어떤 결과를 맞이했나? 이 책은 한 개인과 두 국가 간에 벌어진 치열한 법정 다툼을 따라가며 각각의 주장과 이해관계를 탐독하고 판사들의 판결문과 그 의미를 독해한다. 저자인 베냐민 발린트는 표면적 사건들을 잘 정리해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자리한 복잡하고 심오한 층위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고심해보도록 유도한다.


-책 소개 중





카프카 소유권에 대한 치열한 3파전



카프카를 둘러싼 첨예하고 지리한 3파전은 9년간이나 이어진다. 막스브로트가 친밀한 관계였던 에스테르 호페에게 유산을 증여했고, 그것이 딸 에바 호페에게 상속되었으나 이를 좌시할 수 없던 이스라엘과 독일이 나서면서부터였다. 



카프카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가, 그의 작품은 어느 나라의 것이며 관리, 연구되는 것이 가장 적합한가를 두고 문학은 물론 민족, 역사, 철학적 담론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몇 명의 학자, 법조인, 관계자들이 등장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하나하나의 의견 모두를 완전히 이해하기보다는 에바, 이스라엘, 독일이 어떠한 관점에서 유산을 소유하고자 했는지 흐름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이 흥미를 유지하며 읽는 방법이다. 다음은 3자 입장에 대해 이해를 돕는 짧은 요약이다.





9년에 걸친 소송은 개인의 소유권과 두 나라의 국익이 맞대결하는 형태였으며 전문 법 영역에서 문학적 차원과 민족주의 레토릭까지 다양한 영역의 언어를 오가며 이루어졌다.


에바 호페단순명료하게 바로 ’상속'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가치 있고 역사적인 문화 유산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소유물을 국유화할 수 있는가? 더욱이 1974년 에스테르 호페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이미 내려져 있었으므로 이를 뒤집으려는 이스라엘 측의 시도에 대해 억울하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스테르 호페에게 유산을 어떤 조건으로 어떤 기관에 넘길지 선택할 권한은 주었지만 그 결정을 그녀의 딸들에게 물려줄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 카프카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카프카 문서가 독일 소관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다. 카프카가 명시적으로 시온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해도 그의 문학 유산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의 자산이 될 수 없으며 유대 민족의 문화재로서 유대국에 의해 소유되어 마땅하다.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 브로트가 1960년대에 마르바흐를 방문해 본인의 유산을 그곳에 두고 싶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적도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사유재산 압수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카프카와 브로트의 우정으로 시작된 일이 브로트의 재산이 되었고, 이어서 호페 가족의 가산이 되었고, 이제는 아예 국유재산이 될 참이라는 것이었다. 독일은 카프카 문학을 연구할 전문인력과 자원이 풍부하며 이미 세계적 규모의 저명 작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카프카 유산을 소장품 목록에 추가하기를 희망한다. - 그러면서도 독일은 소송 내내 철저하게 중립적인, 자국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옵저버처럼 보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 책 소개 중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들 속에서 사건과 입장을 골라내느라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근 몇년간의 도서들 중 가장 고비가 크고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읽어봄직한 책으로 권하고픈 이유는 명료하다. 지극히’ 카프카적인’ 법적 분쟁이 던져주는 명제들이 흥미와 설렘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 개인의 소유물을 국유화할 수 있는가?

- 작가와 작품의 국적은 무엇에 근거해 규정할 수 있는가?

- 국적의 정의는 소유권을 넘어 어떠한 문학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독일어로 쓰였기 때문에 단순히 카프카를 독일의 문인으로 알고 있던 것에 매 페이지마다 깊게 반성했다. 그리고 쉽게들 그의 작품을 독일문학이라 부르던 것에 의심없던 것에도. 원어로 읽어볼 기회나, 변신 외의  편지나 작품을 읽어볼 결심 없이 기나긴 소송 이야기를 접하면서야 카프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끝까지 부인하던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선행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대의 고난 속에서 독일에서 체코, 이스라엘로 끝없이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찾으려 애썼으나 무엇에서도 뿌리내리지 못했음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여 작품 저변에 깔려있다. 그가 원하던 마침내의 죽음에 달했을 때조차 자신의 유산을 제손으로 어찌할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까지도 너무나 카프카답다. 소란스러운 유산 소송을 그는 결코 원하지 않았을 테지만 사건이 남긴 중요한 명제들은 앞으로의 문학과 작가를 이해하는 데에 분명 선연한 흔적을 남길 테다. 


 

더 나아가 시대가 남긴 고통 속에서 그 모든 부정과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자신을 정의하려 고뇌한 작가에 대한 공감 또한 재조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한 상징적 인물로 기록되지 않더라도, 변화무쌍한 시간, 수많은 인연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공통점을 찾아내기에 이토록 적합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소송 드라마도 좋지만, 모두에게 공평히 남은 카프카의 작품들 또한 나에게 좋은 발견이었다. 




독일어로 소송을 가리키는 'Prozess'가 아직 진행 중인 무언가를 뜻한다는 것도 적절해 보인다. 언젠가 카프카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 덕분에 그것을 ‘최후 심판’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이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끝나지 않는 즉결심판이다.” 


예루살렘 판사들은 판결을 내렸을지 몰라도, 카프카가 남긴 유산을 둘러싼 상징적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 p.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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