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삶은 곧 의미 찾기의 여정이다. 의미를 찾고자 함으로써 삶이 지속되고, 삶을 살아가는 한 그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모두가 끊임없는 모험과 선택을 이어나간다. 때로 고통스럽지만, 아무런 감내할 것과 그로 인한 성취가 없는 삶이라면 그 또한 무료해 지치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이 땅에 도착한 나름의 크고 작은 사명을 갖고 축복이자 고통인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디 저마다 의미 찾기의 지난한 여정 끝에서 만나는 것이 무의미함이 아니길 바라면서 말이다.
Synopsis.
대부분의 옛것들이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거나 우주의 먼지로 변해 버린 미래. 쓸모없는 것들은 이제 그만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를 두고 전문가들이 논의하는 가운데, 보존과학자1은 아주 낡고 보잘것없는 물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애쓴다.
현재 이곳에는 한 가족이 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는 아버지, 사업에 실패한 후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첫째, 꿈에 가닿지 못해 포기 직전인 둘째, 돈을 벌기 위해 전공과 다른 일을 하는 셋째가 각자의 문과 싸우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된 어떤 문 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문은 자꾸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한다.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뒤섞이며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가 된다.
남기기 위해 무거워지는 마음
단 한 명의 인류가 남아 있는 세상. 그의 직업은 다름 아닌 보존과학자이다. 원래부터 보존과학자였는지, 모두가 사라진 후 남은 것들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 직업을 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하 몇백 층까지 꽉꽉 들어찬 유물들이 수많은 보존과학자들이 쌓은 노고를 보여주는 듯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란 물질인 철, 유리, 알루미늄 뿐.
철저히 혼자 남아 관객이 없는 ‘기획 전시’를 준비하느라 오래된 텔레비전 하나를 두고 열을 낸다. 분명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이어야 해, 영상이 나온다면 그 인물은 백남준이어야 해.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행위를 설명할 의미가 없어질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이다.
그러나 힘든 복원 끝에 만난 존재는 오래 전 한 가정의 텔레비전이자 그 안으로 들어가버린 평범한 아버지. 그간의 노력은 보존 가치가 없는 물건에 들인 시간 낭비였을 뿐일까? 그가 백남준이 아니고, 그의 작품이라 말하기 어려운 그냥 텔레비전일 뿐이라서?
보존 가치를 결정하다
‘모든 것이 소멸해도 이야기는 남는다.’
극이 끝난 후,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들은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말이었다. 실체 없는 전설은 몇백 년을 살아남아 이야기가 되고,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게 된 후부터 우리는 그를 통해 조상과 문화를 인식하며 스스로를 정체화해 왔다. 그리고 후대에 전해질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가며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존 가치가 부족해보이는, 일반 텔레비전의 존재는 유명 예술품은 아니라도 많은 이야기를 시사하는 매개체가 된다. 아버지의 정서적 안식처,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가 들어간 물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이동 수단, 그리고 마지막 인류의 최후의 의미 찾기 대상.
누군가가 가치 있다 말하며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기억하는 한,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충분한 남길 이유가 있는 물건이 된다. 세 자매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삶의 의미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본인 삶의 분명한 주인으로써, 만들어가는 길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자긍심을 가질 때에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 대상은 모두 다를지라도 말이다.
불가항력의 종말 앞에서, 가벼워지는 마음
그러나 종말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차례 대재앙이 이미 지나간 후 몇백년이 지났음에도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모든 것을 집어삼킬지 모를 끝이 오고 있다고 보존과학자는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불변의 그 진리 덕에 이제 종말과 함께 찾아올 모래바람을 그는 온몸으로 맞을 수 있게 되었다. 실로 세상의 끝에서 의미 찾기를 위한 여정이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일 수도 있었다. 지구가 내일 사라지더라도 마지막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의 말처럼 무모한 짓이라 나무랄 법한, 지난한 예술품 복원의 과정이었다. 비록 평범한 아버지와 텔레비전을 마주한 것이 그 결과였지만 별나지 않아도 가치 있다는 위로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기획전시도 마칠 수 있었다.
어쩌면 인간에게 한정된 저주일지도 모를, 의미 찾기에 대한 강박 때문에 삶이 무료하다 느낄 수 있다. 광활한 우주에서 너무 작아보이지도 않을 작은 인간의 가치는 무엇일까. 혹은 몇 시간 뒤, 며칠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지금 보내는 시간의 의미를 무엇에서 발견하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한 적도 물론 있었다.
그럴 때는 단순하게 눈앞의 행복에 집중하곤 했다. 이를테면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 한강의 윤슬, 코끝의 풀내음 나는 바람. 친구와의 주말 약속,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 발견하기, 이불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 반드시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두고 마음껏 기쁨을 누리는 것들 말이다.
모든 것은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고, 또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수많은 계절의 변덕과 쏟아지는 선택지 속에서 가장 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의미란 것은 너무나 주관적이라, 결국 의미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다. 철학적이라 어려우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인 주제의 극이라, 부러 어려운 말로 포장하기보다 솔직한 말로 감상을 채웠다. 삶의 어떤 지점에 서 있든 한번쯤은 물어야 할 인생의 의미를 생각할 좋은 시간이었다는, 추천의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