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나는 취미라고 부르는 것이 생길 수 있을까

시간을 들여도 아깝지 않은 무언가를 찾으며

by 예 진리


“노래를 한번 배워보면 어때?” 아빠의 말이었다. 그때 나는 의아했다. 노래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게 더 이상한 논리다. 아빠는 그저 내 음색이 좋으니 배워보면 좋겠다는 뜻이었는데, 20대 초반의 나는 그 말을 너무 크게 받아들였다. 가수라도 하라는 말처럼 들렸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말을 또 들었다. 특송 연습 중 기타 치던 오빠가 내 허스키한 음색이 좋다며 칭찬했다. 나에겐 조금 낯선 말이었고, ‘내 목소리를 좋게 듣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가볍게 놀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노래를 배우지는 않았다. 부르는 건 좋았지만, 해야하는 일이 아닌 마치 나와 상관 없는 듯해 보이는 것에 대한 배움은 여전히 먼 세계 같았다.








그러다 서른 중반이 되어 처음으로 노래를 배우기로 했다. 취미가 필요했고, 잠시 숨을 돌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장비도 특별한 준비도 필요 없는 활동. 생각해보니 노래가 딱 맞았다.


보컬 선생님은 두 번 바뀌었는데, 두 분 모두 “노래는 잘하지만 발성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 일을 하며 목소리를 낮춰 쓰다 보니 호흡과 발성이 무너졌다는 설명도 들었다. 꽤나 적극적으로 칭찬해주시는 선생님들 덕에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


발성을 바꾸려면 평소 말하는 방식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다. 노래하는 시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작은 취미 하나를 시작하려다 ‘역시 뭐든 그냥 되는 건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도 노래하는 시간은 좋다. 집중되고, 다른 생각이 줄고, 잠시 나에게 머무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걸 꾸준히 잘해갈 수 있을까. 언젠가 ‘취미’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시간과 마음을 들여도 아깝지 않은 무언가가 내게도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며칠 전 아빠가 또 말했다. “연극을 배워보면 어때?” 20대 초반에 흘려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는 내가 더 넓은 세계를 만나길 바랐던 걸지도 모른다. 이번엔 그 마음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늦어도 괜찮다. 노래든 연극이든, 지금의 내가 걸어가면 되는 길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언제나 나에게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주는 아버지께 심심한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