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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Aug 08. 2022

미래를 가로지르는 현재의 그림자

김초엽,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를 듣고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을 밀리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나 같은 전자책 덕후에게는 축복이다. 게다가 오디오북까지.... 사실 요즘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한 주정도 책을 쉬었는데, 이건 못 참고 오디오북으로 들어버렸다. 사랑해요 밀리.....


김초엽이 상상해낸 미래는 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SF는 자칫하면 선을 넘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기가 참 쉽고 잘 만들어진 SF만화나 영화라도 ‘저런 일이 일어날까?’를 의심하게 되는데 김초엽의 미래는 묘하게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하건대 그의 미래에는 막연하게 발전해버린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이슈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새로운 문제점을 이고 들어오는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브다니를 비롯한 가게의 손님들은 대체로 ‘소수자’를 상징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드래곤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든지 곰이 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체성대로 살고자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존중받고 이를 실현해낼 수도 있다. 또 주인공이자 1인칭 서술자인 현희와 친한 언니 또한 ‘솜 인간’인 인형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음에 공감한 적이 있고 장래희망을 인형이라고 써내기도 한다. 인형이 되려는 시도를 하지 않더라도 인형이 되고 싶었던 과거가 있었듯이, 태어난 대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적은 있었다. 어쩌면 왜 사냐고 물었을 때, 태어났으니까 산다고 대답하는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그런 일들로 치열하게 고통받았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최근 책에서도 많이 언급하고 있는 ‘사람의 경계’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안드로이드로 태어났지만 인간과 사랑을 하고 인간에 의해 인간화 작업을 할 만큼, 그러니까 정체성을 바꿀 만큼 사랑했던 사람과 인연이 다하고 헤어지는 과정조차 매우 인간적이었던 수브다니는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녹슬어버린 관계를 온몸으로 추모한다. 그렇게 녹슬어가는 로봇들 사이에서 녹슬지 않았던 유일한 안드로이드 인간은 자신이 영혼 바쳤던 시절과의 이별로 인해 로봇 1로 돌아간 자신의 몸을 녹슬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의 결과만을 선택하는 로봇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퇴행한다. 그를 녹슬지 않게 한 것은 단언컨대 의미와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를 인간화하게 하기도 했고. 그러니 그것이 사라지고서는 녹슬지 않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바다에서 녹슬어가는 그의 모습이 낭만적인 이유는 그 장면만 생각하면 3자의 입장에서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그는 망가져가며 매우 아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행을 선택하는 로봇이라면. 이제 인간과의 경계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도 조금씩은 로봇이다. 안경을 쓰고 있는 것도, 임플란트를 하게 되거나 보청기를 끼거나 휠체어를 타는 것도 조금씩은 우리가 로봇일지도 모른다는 근거다. 렌즈 삽입술을 받거나 전동 휠체어를 타거나 이렇게 기구가 진화하기도 한다. 김초엽 작가의 #사이보그가되다 에서도 작가는 자신이 끼는 보청기를 예로 들어 그런 말을 했었다. 나도 안경을 쓰고 이 글을 쓴다. #지구끝의온실 에 나오는 등장인물 ‘레이첼’도 그런 부분 인간화를 거친 사이보그였고, 그저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앞으로 어디까지를 인간이라고 정의하고 어디서부터 인간이 아니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생명체라고 부르고 어디서부터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이보그 앞에서 한낱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의 차이를 증명해낼 수 있을까.  

김초엽의 미래는 단지 발전에 머무르지 않아서 좋다. 발전 속에 현재의 문제가 들어있고, 조금은 퇴행할 줄도 아는 김초엽의 미래. 함께 생각해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미래를 관통하는 현재의 그림자.



#밀리의서재오디오북 #수브다니의여름휴가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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