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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Dec 02. 2022

희생이 아닌 존중으로 이룩하는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한 줄 평 : 성공한 애는 달라. 이 시대의 영자호걸.


책 내용 중에 '진아'라는 제자가 자기 이름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참 진에 예쁠 아. 예쁠 아는 계집 녀에 나 아를 붙여 만든다. 그런가 하면 영웅은 태초부터 수컷웅을 쓰는 한자다. 유교랜드에서는 알게 모르게 '~답다'라는 고정관념 속에 많은 것들이 당연하게 이루어져 온 것이다. 슬아의 엄마인 복희씨도 집에 찾아온 레즈비언 커플 손님을 보면서 '누가 남자 역할이고 누가 여자 역할인지'를 묻는다. 왜냐하면 그게 복희씨의 세계에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희씨는 이미 가녀장의 집에서, 가사노동의 대가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살고 있다. 사실은 그녀의 삶과 그녀의 인지에도 약간의 부조화가 있는 것이다.


그만큼 낯설고 유쾌한 이야기였다. 문학의 매력은 '낯설게 하기'라는 것을 닳도록 가르쳤는데, 이토록 신선한 글을 만나다니. 다 읽기도 전부터 이슬아 작가의 매력에 빠져서 책을 여기저기 들고 다니면서 자랑했다. 그녀가 어떻게 이야기꾼으로 성공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고 위트 있는 문장으로, 그러나 마치 판소리 한 마당이나 가족 드라마처럼 자신에게서조차 유체 이탈한 것처럼 자신의 삶조차 객관적으로 관찰한 듯이 쓸 수 있는 그녀의 천재성을 뭐라고 형언해야 할지 모르겠다.


슬아의 가족은 정말이지 흔한 K-가정에서는 본 데 없이 낯선 수직구조가 있지만, 사실은 매우 수평적이다. 슬아의 가녀장이 기존의 가부장과 다른 점은 '당연한 것이 없'으며 모든 일이 '그만한 가치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슬아는 가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그것을 희생이라 칭하지 않는다.가족들이 그녀의 생업을 도움으로써 가녀장의 존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눈물겨운 희생이 아니다. 가족들은 그녀가 준 역할을 분담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슬아에게 고용됨으로써 직책을 획득하고 정당한 소득을 취한다. 그들은 끈끈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하거나 무전취식하려 들지 않는다. 또한 슬아는 복희의 음식하기 등의 가사능력을, 웅이의 제작 및 청소하기 등의 재능을 방치하거나 당연시하지 않는다. 가족이라서 고용한 게 아니라 그만한 일꾼이 없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라는 인정도 덧붙인다. 효도가 아니라 복지라는 명목에서 이루어지는 가녀장 슬아의 사랑법도 남다르다. 효도, 모성, 가부장의 책임 등의 무형의 희생을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구조에서 모두가 가치와 노동을 인정받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이 되면서도 지극히 존중받고, 스스로의 가치를 잃지 않는 삶을 산다. 이 가족은 희생이 아닌 존중의 기반에 서있을 수 있기에 가능한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슬아의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하는 소설은 슬아로 내려오며 한 세대의 교체뿐만이 아니라 삶의 형태의 변화 또한 보여준다. 무언가가 당연하기만 했던 시대에서 그렇지 않은 시대로의 변화. 복희의 노동도 당연한 것에서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 다소 충격적인 청혼 멘트를 들으며 결혼에 응한 존자의 결혼 또한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 대입에 성공한 복희씨는 돈이 없어 대학에 결국 가지 못하는 게 당연했지만 세월이 흐르니 할아버지의 당연했던 가부장이 슬아의 가녀장이 되기도 하는 것 등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는 슬아의 타고난 천재성도 있겠지만, 그런 그녀를 그녀답게 길러낸 그녀의 뮤즈인 복희씨와 웅이씨의 유연함 또한 남다르게 한 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소설은 유쾌하게 당연함의 근간을 뒤흔든다. 히어로물이라기에는 시시껄렁한 악당과 맞서 싸우고 뻔한 승리를 거두는 허세 넘치는 전사아닌데, 그렇다기에는 특별한데 뭔가 흔해빠진 가족드라마와는 다른? 요란뻑적지근한 전복은 아니지만 새 시대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의 연속.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도 더 많은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책.  역시 성공한 애는 다르다. 그에게 짧은 한자실력을 감히 들이대 영자호걸이라는 호칭을 붙여본다.


이 이야기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라서 다행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럼으로써 이슬아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가능성으로 세계를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후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의 모습 중 하나를 그녀의 소설이 대변할 수 있음에.


이슬아의 다른 글들이 궁금해진다. 그녀의 글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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