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omo admir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드라운 고슴도치 Dec 15. 2022

어떤 말보다도 더. 마음으로 이어지는 느슨한 연대가 보

고태희, <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야지>를 읽고


한 줄 평 : 어떤 말보다도 더. 마음으로 이어지는 느슨한 연대가 보여주는 응원과 위로의 마법.



생각해보면 요즘의 내 삶은 꽤 많이 부치는 삶이다. 어릴 때는 뭐라도 되겠지 하고 파도의 너울과 파도가 지나간 후의 고통까지도 견디며 즐겼다면, 요즘은 슬슬 또 몰아칠 파도와 사정없이 콧구멍으로 눈으로 밀려들 소금물로 콜록일 일과 하염없이 떠있을 일에 지친다. 저 멀리서 울렁울렁 파도가 밀려오기만 해도 벌써 지치고, 막연하고 어둡고 까만 바다 위에 떠있는 것이 지친다. 언제까지 바닥에 닿지 않는 불안과 불규칙하게 나를 삼켰다 토하는 파도를 감내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30대가 꺾여가는 내내 나는 점점 지치고 두려워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태양을 즐기던 때를 지나 점차 뉘엿뉘엿 하루가 저물어가는데도 여전히 바다 위에 나 홀로 떠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초조해졌다.


바다 밖으로 나가보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았냐면 그렇지 않았다. 다만 힘껏 바다 밖으로 나가보려고 하면 할수록 점차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 표류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뿐이고, 발을 힘차게 저었는데 반대로 반대로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고 있는 내가 답답했다. 바다에는 길이 없는데도 함께 떠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배를 타고 떠났는데 나를 싣고 가 줄 배만 아직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를 태울 듯 태울 듯 태우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위태롭게 잡고 있는 부표를 뒤집어버리기도 했다. 한참 잘못된 것만 같았고, 부표를 놓아버리면 어떨까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날이 저물기 전에는 나를 태울 배가 올까? 홀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부표에 힘껏 매달려 파도를 맞으며 울었다.


꽤 열심히 살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삶을 예상하지 못했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생각보다 적다지만 왜 나만? 유독 더 그럴까? 방향을 잘못 잡고 여태 삽질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모든 것은 갑자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패배의 시간들을 견디며 내일이 없는데 내일이 닥쳐오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더 내려갈 바닥이 없어서 더 내려갈 수 없는 상태로, 바닥에 붙어서 겨우겨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게 시간은 흐르고 아침은 밝으므로.


그래서 어느샌가 힘내라는 말을 잃어버렸다. 힘내라는 말은 낼 힘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낼 힘이 없어보면, 힘이 없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한다는 게 얼마나 기망의 언어인지를 알게 된다. 하면 된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하면 되긴 뭐가 돼. 내가 뭘 안 해서 여태 이렇게 떠있나? 싶어서.


그런 내게 이 책은 제목부터 내용까지 페이지마다 구구절절 느슨한 연대의 손을 내밀어주는 위로였다. 알지도 못하면서 괜찮으니 힘내라고 하는 게 아니라, 혹은 아파보니까 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아니라 "알아, 괜찮아."라는 진심의 위로. 그게 맞고, 그래도 된다는, 힘을 낼 수 없을 때는 힘을 내지 못하는 게 맞고, 그래도 느슨한 연대를 통해 이어진 마음이 밝아오는 아침과 어두워지는 저녁을 살게 해 주더라는 그런 이야기.


작가는 나와 꽤 닮은 사람이었다. 소싯적 꽤 잘났던 사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사람, 그리고 인정받았던 사람. 성취할 만큼 성취해본 적이 있는 사람. 그래서 지금의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지고 초조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 그 낙차를 이렇게 쉽게 극복했다며 기억을 미화해 너도 할 수 있다고 오만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치유와 투병의 여정을 공유하는 사람. 바다 위에 떠있는 사람 나도 있다고 손 흔들어 주는 사람.


사는 게 제법 부쳐서 어깨너머로 배운 운명학이 위로가 되었던 것은 앞날을 알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디에 떠있는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디로 떠가게 될지를 나름의 근거로 설명해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너의 인생이 부치는 것은 한낱 미물 같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기 때문이라고. 미물인 나를 미물로서 받아들이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띠지의 말처럼 인간은 결코 성취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사실은 행복해지기 위해 성취하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자주 불행해지고 아주 아파지기도 한다. 때로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부럽고 대단해 보이며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될 것처럼 다그침 당하기도 한다. 사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일정 수준의 에너지맨은 존재하지만 그들도 부지런히 선수 교체되는 중인데 우리는 늘 성취에 목을 매며 쉴 틈 없이 힘을 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과 압박에 치인다. 그러니 죽겠을 수밖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몰래 부친다.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몰래 곪는다. 그래서 나도 어제부터 나의 외로운 터널 속 생존기를 기록하기로 했다. 원래 글은 평탄하지 않은 삶의 몫이 아니던가. 그럼 누군가는 그 기록을 통해서, 어두운 터널 속을 살았던 누군가의 부침을 통해서 이렇게 사는 삶도 이상한 삶은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부치는 나의 삶이 유의미해질 것만 같았다. 이 책이 딱 그렇다. 작가에게는 치유의 여정이 되면서 동시에 닮은 불안을 눌러 곪게 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책. 애써 힘내지 않아도 당신의 삶은 유의미하다는 말을 몇 마디의 성긴 위로가 아니라 촘촘한 공감으로 건네는 책.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남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이며, 섣부른 위로 또한 위험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삶의 문제의 정답을 사실은 알고 있고, 또 사실은 모르기도 한다. 거기에 어설픈 첨언과 해결을 감히 얹는 게 옳을까 싶을 때, 위로는 하고 싶은데 힘내라는 말을 해도 될지조차 모르게 상대가 아프고 지쳐 보이는데 그냥 지나갈 순 없어 어쩔 줄 모르겠을 때. 이 책을 선물하고 함께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꽤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위로와 응원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고양이가 도도하지만 시크하게 자꾸만 고마운 마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물어오는 것을 보며 얻는 따뜻함으로, 힘내지 못해 길 한가운데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을 던지며 그저 지나치지 않고 옆에 가만히 같이 앉아 시선을 견뎌내 주는 묵묵한 응원으로 당신은 그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펼치면서부터 가슴이 쿵 내려앉으면서 위로받았다. 그 순간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부분으로 이 글을 마친다.


"이 이야기는 우울증을 완치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조울의 파도를 타야 했던 나는 아직 그 바다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에서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했는지를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이야기는 성취가 선인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당신에게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무언가를 해내야만 존재가 빛난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하루를 흘려보내지만, 나는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초라한 마음을 안고도 살아가는 방법과 힘을 빼고 살아가는 방법을 말이다. 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는 세상의 응원에 조그맣게 답하고 싶다. 우리는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



#힘을낼수없는데힘을내라니 #고태희 #현대지성 #우울 #조울 #치유 #치유여정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책추천




매거진의 이전글 희생이 아닌 존중으로 이룩하는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