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파리에서 30분 거리,
오베르 마을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나지막한 언덕길을 올라간다.
좁은 골목, 돌담길을 따라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문득문득, 멀리서, 한쪽 어깨에 무거운 나무 이젤을 짊어진 그의 모습이 보인다. 언덕길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 고흐를 만날 것 같다.
그가 그림으로도 남겼던 작은 교회 옆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푸른 밀밭이 펼쳐진다. 이 곳이었다. 고흐의 ‘까마귀 떼가 나는 밀밭’이다. 스스로를 향해 권총을 쏘기 직전에 그린 최후의 작품이다. 밀밭은 멀리서 하늘과 땅으로 맞닿아 있다. 너른 밀밭들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바다처럼 파도 소리가 일렁인다.
1890년 7월 28일. 그날도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 밀밭은 푸르렀다. 멈춘 시간 속에 풍경과 캔버스는 하나처럼 흘러간다. 마치 그림의 원근법처럼, 멀리 밀밭 사이로 난 흙길이 소실점처럼 끝에서 자취를 감춘다. 나는 그 길에 이젤을 세우고 붓질을 하고 있는 고흐를 바라보는 듯한 환영에 빠져든다.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 파릇파릇 생명이 돋아나는 밀밭, 정겨운 저 흙길.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 이 아름다운 풍경은 폭풍우처럼 밀려드는 그 어떤 파토스(pathos)였을까...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 위로, 꿈틀거리는 하늘 위로, 검은 까마귀 떼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날고 있었다. 극도의 슬픔과 절대 고독이 엄습했으리라. 미친 듯한 붓 자국은 꿈틀꿈틀거리며 덧칠에 덧칠을 해댔다. 또다시 광기에 사로잡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어떤 순간이었을까,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는 리볼버 권총으로 가슴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더 불행한 것은 바로 죽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통스런 발걸음으로 비틀거리며 라부 여인숙으로 내려와 자신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피를 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다가 신음 소리에 놀란 여인숙 주인에게 발견됐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의사, 가셰 박사에게 그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숨이 끊어지지 않아 이틀 동안 방안에서 고통의 몸부림을 쳤다.
다음 날 저녁, 파리에 있던 동생 테오가 전보를 받고 급히 왔다. 테오의 품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광기 어린 세기의 천재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단말마적 고통으로 신음했다. 1890년 7월 29일 새벽이었다. 그는 서른 일곱의 비극적인 삶을 이렇게 마감했다.
고흐의 옷 속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가 발견됐다.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다.
‘그래, 나의 그림,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내 이성은 거기에 절반은 녹아들었다“
(Eh bien, mon travail à moi, j'y risque ma vie et ma raison y a fondu à moitié)
(테오의 마지막 편지 p.358. Lettres à son frère Théo (18 avril 2002)
형의 죽음 이후 테오도 6개월 후에 죽음을 맞았다. 형의 죽음에 따른 충격 때문일까, 건강이 악화됐던 테오는 네덜란드에서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따로 떨어져 묻혀있던 두 형제는 테오가 형의 무덤 바로 옆으로 이장되면서 20년 만에 재회한다.
밀밭 옆 마을 공동묘지에 고흐와 동생 테오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작은 비석 하나뿐이다. 천재 예술가의 묘지라기엔 너무나 초라하다. 어느 누군가 그를 생각하며 가져다 놓은 해바라기 한 송이가 외롭도록 노랗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나는 오베르의 밀밭을 걸으며, 강변의 오솔길을 걸으며, 눈부신 야생화로 가득찬 빛의 들을 걸으며, 고흐가 어떤 생각을 하며 그 길을 걸었을지를 생각한다. 왜 그는 스스로 삶을 끝내기로 했을까. 생전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불우한 인생, 가난으로 점철되고 자살로 마감한 삶, 그 모든 것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토록 절망적으로 고독했던 예술가는 시대와의 불화로 더욱 고통스러워했고 그가 선택한 극단적인 방법은 어쩌면 숙명적인 종말인지도 모른다.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 :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난다.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 별이 되기 위해 고난과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불꽃처럼 격정적으로 바치고 떠난 뒤, 후세에 어느 날 작은 별 하나 남아 있을지, 그 이름 하나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들이 밀밭 사이로, 어두워 가는 창공을 향해 솟구치듯 푸드득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