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내 주변 사람들이 싫어지고
세상이 싫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 것이다.
세상이 싫어지는 이유도 세상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아서 일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보통 겉에 드러나있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진짜 이유가 보인다.
사람은 말과 행동과 표정 등으로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싫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말, 행동, 표정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저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생각일 뿐이다.
100 명의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의 행동과 말을 두고도
100 개의 의견으로 나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들 느낄 것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대놓고
나쁜 짓들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들 애매하게 기분 좋지 않게 한다고 느낄것이다.
오히려 대놓고 나쁜 짓을 한다면
바로 지적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줄을 타듯이
경계선을 넘을듯 말듯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은 주변 사람과 세상을
눈과 귀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눈과 귀로 받아들인 후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더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에는
그동안 살아오며 배운것들이
물감처럼 묻어서 나온다.
사진을 자동 보정해주는
사진 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이 앱으로 셀카를 찍는다.
이 사진 앱은 정해진 과정에 따라
자동으로 사진을 보정한다.
눈을 키우고, 코가 올라가고,
턱이 갸름해진 사진이 나온다.
우리는 이 사진이 자동 보정에 의해
보정된 사진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으로 나온
우리의 생각은 의심없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내 주변과 세상이 미치도록 싫다면
시선을 밖이 아니라 안으로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내 주변과 세상이 미치도록 싫다는 말은
나 자신이 미치도록 싫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즉 나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고,(자존감)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감)
나 스스로를 좋아하지 못한다면(자애감)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부정적인 필터가 내 생각에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주변 사람과 세상이 미치도록 싫다면
잠깐 멈춰 서서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유심히 바라봐야 한다.
여기에도 단계가 있다.
잠시 자신은 어떤 단계에 있는지 파악해 보자.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의 공동저자 박상미에 따르면
스스로를 미워하는 단계에는 4단계가 있다고 한다.
1단계 내가 밉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2단계 나를 비난하고 욕한다.
3단계 나를 용서할 수 없다.
4단계 나를 처벌한다.
여기서 4단계에 가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처벌한다'까지 생각이 전염된 사람은
자해나 자살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남들에게 비슷한 상처를 입히게 된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한 사람의 성격은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는 것에 의해서 형성된다.
먼저 부모를 통해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여기서 성격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짧게는 초등학교 시절 길게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부모들의 보살핌과 친구관계,
학교 교육을 통해 대부분의 성격들이 형성되게 된다.
여기까지 우리가 선택한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만약 사랑이 넘치는 부모 밑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좋은 동네에 살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자존감, 자신감, 자애감이 높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반대로 차가운 부모 밑에서
가난하고 좋지 않은 동네에 살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자존감, 자신감, 자애감이 낮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과거일 뿐이다.
과거는 돌이 킬 수 없다.
과거를 후회와 원망으로 바라보는 것은
내 미래도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선언과도 것과 같다.
과거가 모여 현재가 되고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된다.
과거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현재와 미래도 부정적으로 된다.
그렇다면 지나가 버린
과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차가운 조부모 손에 키워졌다.
형을 주려고 찬장에 숨겨놓은 과자를 먹으려하자
짜증스럽게 화를 내던 할머니가 기억난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무관심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는 항상 소심했고
내성적이었으며 자존감이 낮았고 자신감이 없었다.
어머니는 일을 하기 위해
2주간 집을 비우는 일도 많았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나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니
어찌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알겠는가.
나 역시 한때는 나 자신을 미워했으며 그들은 원망했다.
하지만 내 미래도 원망과 후회로 채울 수 없기에
그들에게 감사하려고 한다.
조부모는 차가웠지만 굶기지는 않았으며,
따뜻한 집에서 잘 수 있게 해 주었다.
한 번씩은 맛있는 간식도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는 일하는 시간 외에는
가족에 충실했으며 따뜻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내가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셨다.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이 있다.
인간은 모두 변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손바닥 뒤집듯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변할 수 있다.
의지는 운명을 이긴다.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어있다.
최근 뇌 과학계는 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을 인정하고 있다.
이전에 뇌는 어린 시절만 발달이 가능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발달이 어렵다는 게 전반적인 이야기였다.
아래의 움짤을 보면 우리 뇌세포(뉴런)가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뇌는 우리가 집중하는 생각에
따라 그 생각 쪽으로 발달한다.
부정적인 것만 생각하면 부정적이 되고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된다.
행복에 집중하면 행복해지고
불행에 집중하면 불행해진다.
처칠은 말했다.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낸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집중하는 것들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집중해야 할 것들에도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고
믿어줘야 하는 것이다.
원래는 부모가
우리 어린 시절에 해줬어야 하는 일이지만
지나가 버린 일이다.
그들도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자.
나 자신을
완전히 사랑하고
완전히 존중하고
완전히 믿는다면
세상은 분명 달리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