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과연 상품일까?
전력산업구조개편, 그 아련한 기억과 암담한 미래
정부는 1999년 1월에 발표한 구조개편기본계획에서 구조개편 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민영화의 첫 단계인 발전부문 분할을 2000년에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력산업 민영화를 우려한 노동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반대 움직임이 벌어지고 2000년 4월의 총선에 부담을 느낀 정부 여당은 관련 법률안을 폐기하게 된다.
그러나 총선 이후 정부는 다시 구조개편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고, 2000년 12월 3일 이 법률안은 국회를 통과하게 되고, 그 결과 2001년 4월 1일, 한전의 일부였던 발전부문은 원자력회사 1개와 화력발전회사 5개로 분리됐다. 발전부문의 경쟁체제 구축 이후 정부는 배전부문 역시 6개의 지역별 회사로 나누고, 순차적으로 발전과 배전회사들을 민영화할 계획이었다. 당시 한전 직원은 모두 정부의 이런 전력산업 자유화 정책에 반대했다. 분할과 민영화가 이뤄지면 당장 자신들의 고용안정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우려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공기업 직원으로서의 일종의 책임감 또는 애국심 같은 일족의 공공노동자로서의 책임감이랄까,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한전 내부에서 정부의 분할 민영화에 대놓고 반대할 수 있는 구성원은 노동조합뿐이었다. 2002년 선거에서 당선된 40대 초반의 한전 전력노조 위원장은 더 이상의 한전 분할을 막는 방법은 전임 집행부가 실패했던 파업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침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 있었고 그는 주요 정당 후보들에게 한전 민영화 및 배전분할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정책질의를 했다. 이회창, 노무현 후보는 나름 성의 있는 답변서를 보내왔고 정몽준 후보는 질의서에 답변하지 않았다. 그중 노무현 후보는 기본적으로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정부는 구조개편의 2단계였던 배전분할을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전력노조는 고민 끝에 당시 노무현 정부가 기대를 걸고 있던 노사정위원회의 합의 구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2003년 9월, 정부(산자부), 사용자(한전), 노동조합(전력노조) 3자 합의를 통해 배전분할 문제를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노사정위원회 산하 공공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이 특위에서 노사정 이 각 2명씩 추천한 전문가로 총 6명의 공동연구단을 만들었다. 공동연구단은 2003년 10월부터 배전분할 문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이 결론을 2004년 5월까지 도출하기로 합의했다.
공동연구단 연구원들은 사실 가벼운 소풍 가는 마음으로 연구단에 합류했다. 대부분의 연구위원들은 이미 결정된 정부 정책, 즉 배전분할과 한전 민영화를 뒤집을 방법은 없고 따라서 이 연구단과 위원회의 목표는 형식적 숙의민주적 절차를 갖추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력노조가 추천한 두 명의 교수들만 생각이 조금 달랐다. 뭔가 획기적인 방법으로 국가기간산업과 공공기관 민영화의 시금석이 되는 한전의 배전분할 자체를 저지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노조 추천 위원들의 희망이 현실화되는 것은 사실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바로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소위 말하는 캘리포니아 전력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전력사태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2000년 말과 2001년 초의 겨울 기온이 평년보다 낮아서 전기사용량이 급증했고, 둘째, 당시 미국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전력시장을 자유화한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의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결과였다. 남캘리포니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12월과 2월 사이에도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 정도의 온화한 기후로 일반 가정에는 전기 이외에는 특별한 난방기구가 없다. 당시의 한파는 전기난방 수요를 크게 올렸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은 시장화를 위해서 기존 전력회사들의 발전소를 모두 매각하고 발전과 소매의 자유경쟁체제를 급하게 도입한 상태였다. 그런데 발전회사들끼리 경쟁하는 도매시장은 자유화했지만 급격한 자유화의 충격으로부터 소비자 보호를 위해 소매요금은 규제상태로 유지했다. 이게 문제였다.
전기수요 급상승으로 전기판매, 즉 배전회사의 판매량은 늘어났고 배전회사들은 전력시장에서 더 많은 전기를 발전회사로부터 사게 되니 전력도매가격은 당연히 뛰어올랐다. 그런데 도매가격은 급증하는데 비해 배전회사가 소비자에게서 받는 소매요금은 규제로 묶여 있었으니 비싸게 사서 싸게 팔던 배전회사들의 재무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일부 발전회사들인 도매가격을 높이기 위해 특정 시간대에 고의로 발전소 가동을 줄인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캘리포니아 최대의 송배전회사였던 PG&E는 파산하고 말았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미국 전력회사의 파산은 전 세계를 뒤흔든 뉴스로 퍼져나갔고, 전력산업 자유화, 민영화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이 사건을 놓고 자유화 반대 목소리를 높여 나갔다.
공동연구단의 노조 측 추천위원들은 당연히 진보적이었고 민영화 반대 입장이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 사태의 원인을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무리한 자유화와 구조개편의 부작용이 드러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서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자유화와 민영화를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공동연구단은 2003년 10월부터 국내 전력산업 현장을 돌아보며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고 또 각종 자료를 놓고 찬반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아직 자유화의 길을 가지 않은 상태에서는 과연 구조개편 추진이 옳은지 또 중단이 옳은지를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단은 해외 현지조사를 계획했다. 연구단은 노조, 정부, 한전에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완성됐거나 진행된 나라와 기관 방문을 요청했고, 최종적으로 9개 나라 32개 기관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
2004년 1월부터 3월까지 약 3달 가깝게 진행된 해외 현지조사는 공동연구단의 입장 정리에 큰 역할을 했다. 연구단은 정부기관, 연구기관, 대학교,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을 방문하며 지구를 한 바퀴 이상 돌았다. 그 결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급진적 구조개편을 추진했던 영국을 필두로 한 주로 영미권 국가들에서 급격한 시장자유화의 실패를 확인했다. 그리고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영미권의 자유화를 따라가지 않은 나라들의 입장도 확인했다. 최종 결론은 합의로 끝나지 않았다. 정부 측 연구위원들은 끝까지 배전분할 완성을 통한 자유화 계속 추진을 주장했고, 노조 측 위원들은 해외의 실패를 이유로 구조개편 중단을 주장했다. 중립 측으로 분류된 연구위원들의 입장에 따라 최종 결론은 내려지는 구조가 됐고, 최종적으로 이들도 배전분할 중단을 결정했다. 연구위원 6명 중 4명이 배전분할 중단, 그리고 2명은 소수 이견으로 계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정부는 당황했다. 노사정위원회의 공동연구는 발전분할에 이은 배전분할을 계속 추진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생각했지만, 연구단의 최종 결론이 정반대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토론회가 열렸고, 대통령은 공무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구단의 배전분할 중단 의견을 수용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전력산업은 발전은 분할 경쟁체제로 변한 반면 배전과 송전은 단일 국영기업 한전이 그대로 독점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렀다.
자유화 반대론자들은 만세를 불렀고 해외에서도 전력산업 자유화 중단의 최초 사례라고 소문이 났다. 자유화 찬성론자들은 청와대의 결정을 비판하며 아쉬워했다. 이후 두 차례 분할된 한전의 발전부문을 다시 한전으로 재통합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참모진들은 한전을 재통합하고 해외로 내보내서 해외사업에 치중하자는 주장도 했다. 전력노조와 청와대 참모진이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기도 했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참모진들이 교체되면서 흐지부지됐다. 2011년 9.15 정전이 터지자 다시 한전을 합치자는 법안까지 만들어졌지만, 정치적 이유로 국회 통과에 실패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배전분할 중단 이후 20년이 지났다. 그렇게 세월은 흐른다. 한쪽은 경쟁체제, 다른 한쪽은 규제독점체제의 절름발이가 바로 대한민국의 전력산업이다. 아무도 어느 쪽으로든 과감한 수술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전력산업은 급변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에너지전환은 당면 과제이다.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와 새로운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모두가 앞다투어 달리고 있다. 이 경쟁에서 뒤처지는 나라는 어쩌면 무역도 산업발전도 시키지 못하고 국제적 왕따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석유와 가스산업에 대한 투자 급감과 마침 터진 전쟁으로 유가는 가파르게 올랐고 거의 모든 나라는 전기요금을 두 배, 세 배 올리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정부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현실화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한전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전력산업과 그 후방 산업들 모두 도산의 위기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뭔가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되풀이되는 에너지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전환이 필요하다. 에너지전환에 앞선 현실 인식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에너지위기, 그리고 전력산업의 변화에 대응하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무늬만 남고 비용만 올리는 전력시장의 구조개편, 원가만 반영하는 CBP 시장과 연료원별 특성을 무시한 SMP, 전기요금 억제에 따른 비효율적인 전기사용과 낭비, 그리고 기본적으로 에너지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인식 부족 등등 열거하기가 벅차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바람도 햇볕도 불충분한 우리가 이런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지 못하면 참담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미 늦은 감은 좀 있지만, 지금이라도 좀 생각의 전환을 하자. 이를 위해서 과거의 역사를 한 번이라도 기록하고 되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