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와의 만남
30년도 지난 시절 이야기이다.
PC에 윈도우가 없고 모두가 DOS라는 운영체제를 직접 입력할 그 시절.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 과제물을 컴퓨터로 작성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Dsik Operating System, DOS는 PC 검은 화면에 모든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야 했고,
또 문서 프로그램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요새 많이 사용하는 MS 워드나 아래아 한글은 없었다.
타이프라이터, 즉 타자기도 많이 쓰일 때였다.
미국 대학의 첫 학기, 숙제를 PC로 작성해서 프린트해 오라는 교수의 말. 당황했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무료로 사용하던 PC를 모아 놓은 PC랩이라 불리던 방이 있었다.
거기에 가서 비어 있는 PC를 차지하고 플러피 디스크를 입력하고
문서용 프로그램을 불러와서 작업하고, 이를 다시 플러피 디스크에 저장하고,
마지막으로 공용 프린터에 인쇄하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던 문서 프로그램은 Word Perfect였다.
한국에서는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숙제하러 PC 랩으로 향했다.
사실 당시까지 PC에 능숙하지 않았기에 살짝 걱정됐지만
뭐 어떻게 되겠지하는 생각이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니까.
그날따라 PC 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감한 마음을 감추고 PC 앞에 앉았다.
전원을 켜고 PC가 부팅될 때까지 기다렸다.
당시에 많이 사용하던 5인치짜리 플로피 디스크를 넣고 기다렸다.
DOS로 운영되는 까만 PC 화면이 켜졌지만, 명령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 구석에 어떤 학생인지 교직원인지 모르는 덩치가 큰 흑인이 한 명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에게로 다가갔다.
뭔가 도와달라는 내용의 질문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걸어가는 동안 생각한 후 내가 한 말은,
“May I help you?”였다.
내 말이 끝나자 그 덩치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잘 못 알아들었나? 다시 또박또박 물었다.
“May I help you?”
나를 쳐다보던 그 친구, 잠깐 답을 하지 못하고 나를 계속 올려다봤다.
잠깐의 침묵 끝에,
“Oh, you need my help?”
이제야 알아들었구나.
“Yes.”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도 꽤 컸다.
그리고는 내게 어느 자리냐고 물었다.
그가 앞장서고 내가 그의 뒤를 따라서 내가 자리 잡은 PC로 걸었다.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 내가 거꾸로 물었다는 사실을.
엄청 창피했다. 그가 얼마나 황당했을까?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첨 보는 동양인이 나타나,
“뭘 도와줄까?”라고 물었으니.
하지만 그는 제대로 알아들었다. 내가 뭘 뜻하는지를.
이게 바로 커뮤니케이션이고 이게 언어의 기능이다.
거꾸로 물어보든 제대로 물어보든 뜻이 통하면 언어의 기능이 살아났다.
그 날 내게 봉변을 당했던 Mark는 나중에도 그때의 이야기를 가끔 하면서
나를 놀렸다.
물론 그날 이후 내 영어 실력은 계속 늘어났고 그 친구와의 대화는 점점 편해졌다.
외국 생활을 해 본 사람들에게 이런 어이없는 경험은 대부분 있을 것이다.
이날 이후 나는 느꼈다. 첨부터 영어를 잘 할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보통 외국어를 배울 때 귀가 뚫려야 한다고 한다.
알아듣기 시작한 후에야 말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도 한국어를 그렇게 배웠다.
엄마의 말을 아빠의 말을 들으면서 귀가 트이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그리고 따라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이와 똑같은 과정이다.
영어를 배우는 방법의 시작 지점이 바로 여기다.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