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반복의 모방
말을 배운다는 것은 우선 듣는 연습부터 돼야 한다.
아기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 생활에서 그 나라의 말에 노출되는 기간만큼
그 나라의 말을 배우게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안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에 따른 언어 능력과
또 얼마만큼 열심히 그 환경에 노출되는 것인가에 따라
개인별 차이는 분명히 난다.
기본적으로 나는 남들에 비해 언어 습득 능력이 조금 나았다.
그게 선천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후천적인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선천적인 부분은 개인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일 수 있지만,
후천적인 부분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언어의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이
거의 반반이라고 느낀다.
사람에 따라서 그 비율이 5대 5일 수도 있고 2대 8일 수도 있고
8대 2일 수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만약 내가 선천적 재능이 3이고 후천적 부분이 7이라면
그건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모국어는 배웠고 말을 한다.
그렇다면 선천적 언어 능력이 0이나 1이나 2 정도로 낮은 사람은 없다.
내 생각에는 아무리 언어 능력이 떨어져도 최소한 3이나 4 이상은 돼 보인다.
즉, 말 배우는 능력이 남들보다 낮아도 최소한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속도는 좀 늦겠지만 후천적으로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다 외국어를 배운다.
중학교 때 기억이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알파벳부터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 아버지가 1학년 교과서를 통째로 미국인들이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한 세트를 사 오셨다.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와 이를 틀 수 있는 카세트 플레이어도 흔치 않을 때였다.
집에 있던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틀었다.
완벽한 미국식 발음으로 녹음된 교과서 내용은 내게 신세계였다.
그들의 그 버터 발린 발음으로 녹음된 내용을 일단 듣기가 너무 좋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 테이프들을 되풀이하면서 들었다.
사실 당시에는 학교 선생님들의 영어 실력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한심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듣는 미국인들의 목소리는 너무 좋았다.
불과 한 달이 지나자 1학기 교과서 전체가 외워졌다.
계속 들었기 때문이었다.
2학기가 되자 아버지가 또 교과서가 녹음된 카세트를 사 오셨다.
이런 과정은 중학교 내내 진행됐고, 나는 매 학기 초에 그 학기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그냥 자동으로 외우는 일을 반복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그랬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미디어가 발전한 때가 아니었다.
라디오와 TV 이외에는 보고 들을 미디어가 없었다.
교과서 녹음테이프는 나를 영어의 세계로 이끄는 유일한 통로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내 영어 실력은 친구들보다 몇 발 앞에 가 있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짐을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알았다.
그 당시 고등학교 영어는 문법과 구문 독해가 중심이었다.
나는 그런 공부는 거의 안 하고 교과서 외우기만 열심히 했다.
그런데도 문법이나 독해 같은 구시대적 학습이 뒤떨어지지 않았다.
골치 아프게 문법을 외우지 않아도 그런 내용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그 시절의 문법 공부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이었는지는 나이가 좀 든 분들은 다 알거다.
나중에 깨달았다.
말은 말로 배워야 한다고.
듣고 따라하고 또 듣고 따라하고, 이 단순한 과정의 무한반복.
언제까지? 그게 잘 될 때까지.
영어 배우기의 첫걸음은 바로 맹목적인 따라 하기의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