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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아킴 Nov 12. 2024

전력산업민영화, 그 뒷이야기 19

화난 토론토 시민, 화난 공동연구단

   

고든 교수와의 면담은 약간 어색한 상태로 마무리됐다. 


처음에 김창석 교수를 비롯한 일부 일행은 고든 교수의 존재감을 알고 편안한 분위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양쪽의 입장의 차이가 보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쪽이란 정부 측이 추천한 위원들과 고든 교수 사이의 다른 시각을 말한다. 김 교수와 신중진 교수, 그리고 문재송 과장은 독점 전력산업을 자유화하는 것은 공기를 마시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일로 생각했지만, 고든 교수는 오염된 독가스를 마시는, 마치 죽음으로 가는 길로 이해했다. 규제와 자유화, 공공과 민간, 그리고 독점과 경쟁이라는 양측의 간극은 꽤 멀어 보였다.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회의록을 작성하던 최용석은 이 논쟁이 매우 가치 있다고 느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논쟁 자체가 없었다. 원래 지도자가 결정하면 모두가 따르는 한국식 문화. 일단 상명하복의 질서 속에서 아무도 반론을 꺼내지 않고 쥐 죽은 듯 조용히 있는데, 문제는 그 지도자의 권위가 흔들리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반기를 드는 그런 비겁한 문화가 우리의 조직문화이다. 옛날 어느 서양인이 한국인들은 쥐 떼와 같다고 폄하했는데 최용석은 이를 일부 인정했다. 남의 지배를 오래 받았기에 눈치는 기가 막히게 발달했고 서열 짓기 좋아하고 자신의 속마음 보이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한국인들. 어느 조직에 가나 남을 비방하는 투서가 많기로 유명한 민족. 이미 미국인들도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다고 한다. 과거 클린턴 정부 때의 그 유명한 사건 때문에.


영미 앵글로색슨 종족은 매우 교활하다고 느꼈다. 원래 해적과 장사꾼 피를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익 앞에서는 냉정하고 이를 합리적이라고 부른다. 유럽 대륙인들의 그 잘난 관념론은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현실적이다. 그래서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력산업 문제도 그렇다. 원래 미국에서 에디슨이 시작한 전력산업은 민간산업이었다. 전기가 현대문명의 총아로 필수 서비스가 되자 민간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 그렇게 되자 미국의 연방정부가 나섰다. 지역별로 전기회사를 쪼개고 소유는 민간에게 남기되 규제 권한은 정부가 가져갔다. 그 유명했던 인슐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에디슨의 비서 출신으로 전력산업을 한 손에 주물렀던 인술은 미국 연방정부의 반독점 정책에 맞서다 결국 전기요금을 비롯한 각종 규제 권한을 정부에게 내주고 자신은 에디슨 전기회사의 소유권만 지키기로 양보했다. 이후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기는 하지만, 사뮤엘 인술은 한때 미국 전력산업 전체를 손에 넣고 지배하던 존재였다. 미국보다 뒤늦게 전기를 사용한 유럽은 민간이 아닌 정부가 직접 산업을 시작했기에 모든 것이 정부의 규제 아래에 있었다. 전력산업의 자유화에 민영화가 따라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튼, 고든 교수는 미국인이었지만 전력산업을 시민의 규제 아래 둬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이에 반해 연구단의 정부 측 위원들은 영미권의 자유화에 맞춰 민간 영역으로 한국의 전력산업을 넘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둘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중간에서 지켜본 최용석은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고든 교수가 자리를 뜨자 브루노가 말했던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들 일행의 대표 격으로 캐나다소비자협의회의 저메인 윌슨이 발언을 시작했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했던 다이하드라는 영화의 독일인 좌익 테러단체 수장으로 나왔던 한스 그루버처럼 턱수염을 기른 윌슨은, 온타리오주의 민영화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말문을 열었다. 온타리오주는 사실 전력을 포함한 상하수도와 가스 등 전반적인 공익사업을 민영화하고 있었고,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실패가 전력산업을 자유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 정부의 약속과 달리 수급은 불안해지고 요금은 널뛰는 그런 카오스 상태를 초래했다고 민영화를 맹비난했다.


면담과 토론은 약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됐다. 그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연구단의 목적을 이해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부 소유의 기간산업을 민간에 넘겨주면 결국 손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주장을 경험을 통해 전달했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은 경영의 목적이 다르다는 평범한 사실을 그들은 강조했다.


정부 측 위원들은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단장이 허용했기에 시민단체와의 토론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견해차가 너무나 분명했으니. 대신 안현필 교수와 김명자 교수는 신이 났다. 자신들과 뜻이 완벽하게 같은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예정보다 긴 시간의 면담이 끝난 후 일행은 주변의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정부 쪽이 한전을 통해 선정했던 어느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정부 기관과 일을 하는 개인 컨설턴트였다. 


일행은 좀 의아해하면서도 변호사와 한 시간 정도 토론을 했다. 사실 정부나 한전에서는 토론토에서 섭외할 대상을 마땅히 찾지 못했다. 이미 민영화의 몸살을 앓고 민영화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나빠진 상태이며, 심지어 주지사마저 바뀐 상태로 정부 어느 기관도 한국정부의  민영화를 옹호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소개받은 사람이 그 변호사였다. 면담은 싱거웠다. 노조 쪽 위원들에게는 신나는 하루였지만, 정부 측 위원들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그런 하루였다.


오전 일정이 끝나고 토론토 하이드로의 사무실을 나설 때 브루노가 최용석과 김종호 국장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초면에 이런 초대를 받는다는 것이 좀 당황스러웠지만, 역시 노동조합은 연대의 정신이었다. 하루 만에 친구가 된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오후의 면담 일정을 끝내고 만나기로 약속하고 브루노와 헤어졌다.


최용석과 김종호 국장은 브루노가 가르쳐 준 곳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연구단 일행과 떨어져 나온다는 것이 조금 찜찜하기는 했지만, 이근석 단장에게 양해를 구했고, 이 단장은 흔쾌히 동의했다. 언젠가부터 이 단장은 최용석의 말에 거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는 매우 껄끄러운 그런 관계였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이애미로 가던 밤 비행기 시간 이후부터 이 단장은 매사에 최용석을 살갑게 대해줬다. 고마웠다.


브루노 가족과의 식사는 유쾌했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처음 먹어보는 메뉴도 다양하게 즐겼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브루노의 뿌리는 이탈리아였고 그래서 그런지 최용석 일행을 이탈리아 식당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최용석은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음식이 아마 이탈리아 음식 아닌가 생각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메뉴가 이탈리아식. 그다음으로 중국이나 태국 음식이 널리 퍼져 있다. 미국에는 그리스나 멕시코 음식도 보편적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를 이길 국제적인 음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브루노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큰딸은 10살 정도였고 둘째는 5살. 브루노의 여성판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아빠를 꼭 닮은 둘째의 재롱은 여느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브루노 부인은 평범한 40대 초반 여성이었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그런 이탈리아계의 풍성한 중년여성이었다. 한마디로 유쾌한 이탈리아계 집안. 최용석의 머릿속에는 대부 영화의 장면들이 스쳐갔다. 발랄하고 솔직한 이탈리안.


저녁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오던 두 사람은 로비 한쪽에 모여 있던 연구단 일행을 발견했다. 간사 이병호 교수가 로비로 들어서던 최용석을 발견하고 손짓을 하며 불렀다. 김 국장과 최용석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이병호 교수는 김 국장에게는 그냥 방으로 올라가라 하고 최용석에게는 자신들이 둘러앉은 탁자 주변의 의자를 권하며 앉으라고 했다. 최용석은 엉거주춤 의자에 앉으며 일행을 둘러봤다. 그 자리에는 다른 일행을 뺀 연구단 6명만 모여 있었다. 분위기가 무거웠다.


“최 부장,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요.”

이병호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된 건가요? 당초에 노조 쪽만 만난다고 했는데, 그 교수님은 뭐였고, 또 그 시민단체들은 또 뭐였나요? 일정에 미리 포함하지 않고 그렇게 현장에서 바꿔도 되나요?”


최용석은 어리둥절했다. 사실 그도 그 사실을 미리 몰랐고 당황했지만, 분명히 단장한테 승인을 받기는 했는데, 무슨 오해가 있나?


“저.... 사실 저도 그 친구가 그렇게 준비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단장께 여쭤보기는 했는데요.”

우물쭈물 말을 하며 이근석 단장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단장은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일은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사전에 서로 인정한 일정을 따라야지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이병호 교수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최용석은 속으로 억울했다. 잘 된다고 생각하던 일이었는데 이런 식의 추궁을 받는 것이 못내 억울했다. 노조 측 김명자 교수와 안현필 교수도 입을 열지 않고 무거운 표정이었다. 뭔가 좀 문제가 생겼구나.


“예,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용석으로서는 이 말 밖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앞으로 주의하라는 이병호 교수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많이 억울했다.


토론토에서의 이틀째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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