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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덕질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창극 <리어>

by 이경화

국립 극장을 찾은 건 십 년만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남편과 뮤지컬 <영웅>을 보고 그 앞에서 번데기를 사 먹었던 기억이 있다.

팬텀싱어를 보고 김수인 님의 팬이 되고, 지난 2월 콘서트를 처음으로 예매해 보았는데, 이번에 창극을 올린다는 걸 알게 되어 공연 하루 전 부랴부랴 표를 찾았다. 모두 매진인데 딱 세 자리만 표가 있는 걸 발견하고 가족들 의견도 묻지 않고 일단 예매를 했다.


사실 국악은 나보다 남편이 더 좋아했다. 창극 <리어>의 음악 감독을 맡은 한승석, 정재일의 앨범을 사서 듣고 아이 어릴 때 차에서도 틀어놓아 아이가 따라 부르기도 했었다. 어쨌든 덕질에 눈먼 나보다는 두 사람이 듣는 귀가 있으니 나름 즐거울 거란 생각도 있었다.


예매를 하고, 두 사람에게 허락을 받은 후 도서관에 가서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내가 읽을 것과 아이용으로 빌려왔다. 아이도 등장인물과 줄거리 정도는 알아야 하고, 나도 내용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공부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원작은 무척 신랄하고 통쾌한 면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으며 어떤 공연이 될지 기대했다. 수인 님이 연기하는 에드먼드는 어떤 모습일까.


공연 전날엔 잠을 설쳤다. 혹시 늦지는 않을까, 아이가 세 시간이나 잘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고마운 남편은 만약의 경우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 있을 테니 혼자라도 보고 오라고 했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노라니, 내가 부질없는 짓을 벌인 것 같았다. 셋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더 많은 걸 바라는가, 나는.


다행히도 내 걱정은 괜한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늦지 않게 도착해서 국립극장 마당에서 조금 놀다 3시에 시작하는 공연장에 들어갔다. 공연은 무척 좋았고 나는 물론이고 남편도 배우들의 소리와 연기, 아름다운 무대와 음악에 감탄하고 눈물을 흘리며 보았다.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아이도 함께 웃고 조금 울고, 박수도 치며 옆에서 끝까지 보았다.

극에는 살면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담겨 있고, 무대 위의 물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을 비추고, 나는 인물들에 나를 비추며 나의 욕심, 악덕, 어리석음, 불효, 후회와 돌이킬 수 없음, 허무를 보았다. 그래서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찍은 커튼콜 모습. 2층이라 머네ㅠㅠ 그래도 충분히 좋았지만, 다음엔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


나오는 길에 프로그램북을 사서 보니, 대본집이 실려 있어서 공연을 본 다음 날인 오늘 읽어 보니, 공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실 요즘 눈도 침침해서 안경을 맞췄고, 기억도 깜빡깜빡한데 공연을 보려고 준비하고 공연의 여운을 즐긴 요며칠은 그런 것도 잊을 만큼, 아니 그런 변화도 즐길 만큼 신났던 것 같다


심연을 잠시 들여다보려 한 시간이 정말 좋았다. 이렇게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나의 덕질이 가족과 추억을 쌓는 길도 되어서 기뻤다.

가능한 한 오래 공연과 가족과 함께한 추억을 기억하고 싶다.


나를 고쳐쓸 방법도, 시간을 되돌릴 마법도 없지만,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지내보고 싶다.

기쁨은 잠시라도 여전히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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