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불청객)
이비인후과 의사라고 비염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 없듯,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고 정신과 질환에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반갑지만은 않은 손님이 있다.
각종 재난과 재해들이 그런 것이고, 사람에게 상처받는 순간이 그런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내가 아프게 되는 날들이 또 그렇다.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지만 막상 닥치면 도저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 때가 있다. 혹자는 이런 맛에 사는 것이라지만 그 순간만큼은 끔찍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 글을 쓰는 2022년 11월 어느 날 나에게도 그러한 객(客)이 연락도 없이 찾아와 내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물론 내가 진료 보던 환자였던 건 당연히 아니고, '공황발작'이라는 이름을 가진 놈이었다.
공황발작이 오면 보통 심장이 빠르게 뛰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차고 식은땀과 함께 안절부절못하게 되며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 하는 극도의 공포심이 지배한다고 책에서 배웠고 그런 고통을 호소했던 수많은 환자를 치료해왔다. 아직도 정확한 발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신경전달물질(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가바 등) 시스템의 이상으로 인해 자율신경계(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밸런스가 망가지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고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할 때에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발작은 10분 내외로 지속되는 경우가 많으며, 극도의 불안과 공포감 이후에도 잔잔한 불안감은 유지되어 또다시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되는 예기불안이 있을 때 흔히 공황장애라고 할 수 있다.
평생 유병률이 2~5% 정도로 알려져 있는 불청객이 왜 느닷없이 나한테 찾아왔을까?
당시에 나는 수개월 동안 꾸준히 치료해오던 환자와 면담하고 있었다. 중년의 여성 내담자는 과거부터 이어져오던 시댁에서 받은 서러움, 특히 무시하고 천대하는 듯한 태도의 보수적인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트라우마가 컸고 평생을 노력해와도 그 누구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며 살아오던 분이었다. 남편은 젊어서부터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매일 같이 싸우는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이어오며 워킹맘으로서 두 아이를 키워왔다. 만만하지 않은 인생의 역경을 헤쳐오며 여기저기서 쌓인 꾹꾹 눌러 담았던 화가 본인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향하게 될 때가 많았고, 그 과정에서 회복되기 어려운 큰 상처들이 자녀들 가슴속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렇게 당긴 활시위에서 떠난 상처라는 화살은 시간이 지나 자녀들과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으로 독화살이 되어 거울에서 반사되어 당신의 마음 깊은 곳까지 찔러 들어갔다. 나의 내담자를 포함한 자녀들 모두 정신치료를 받는 상황이었고, 각자의 상처가 서로 가시처럼 얽히고설켜 늪에 빠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구원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구원자라고 착각해서도 안된다. 치료자는 페이스메이커로서 중립을 지키고 많은 참견 하거나 개입은 하지 않고 내담자 스스로 힘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들의 장점을 찾는데 중점을 해야 한다. 특히 복합 트라우마를 가진 분들을 치료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번에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 나는 내담자가 흐느끼며 절망 어린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에 갑자기 '더 이상 해줄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찰나의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며, 그 환자가 평생 쳐했던 상황에서와 같이 나 또한 마치 감옥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출구가, 없다!
이러한 느낌이 강하게 밀려오는 순간에도 내담자의 오열은 멈추지 않았고, 엄청난 불안감과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진료실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있는 힘껏 참으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책상 밑에서 양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손바닥을 꼬집으며 버텼고, 점점 이러다 큰일 나겠다는 느낌이 들며 환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것 같은 느낌에 다급하게 "ㅇㅇ님, 죄송한데, 잠시 면담을 멈추겠습니다. 저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운데, 갑자기 제가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깊은 면담은 여기까지 하고 간단하게 마무리하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말씀드리며 약 처방에 대한 내용, 안정화에 대한 교육적인 내용을 간단히 전달드린 후 다음 약속을 잡았다. 공황발작으로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찌할 수 없던 환경 속에 놓인 나는 알몸의 상태로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느껴진 무력감의 크기는 그다지 줄진 않았다. 약 5분 정도의 공포가 지나간 후 다행히 복식호흡을 하며 다음 환자를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증상이 찾아온 걸까?
내담자가 치료자에게 느끼는 감정인 전이 감정과, 이로 인해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느끼는 역전이 감정이 작동한 것일까? 물론 이러한 절망적인 복합 트라우마 환자와 면담할 때에는 외상성 전이나 역전이 반응은 완벽하게 피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서로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치료 계약 설정과 치료자를 위한 지지체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떠나... 내가 정말 역전이 감정으로 인해 그랬던 것일까? 지지체계의 원리로 다른 몇몇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께 이러한 경험을 공유했지만 아직 나 스스로 내면의 답은 찾지 못한 상태이다.
아마 나는 '구원자(savior)'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치료자로서의 선을 지키지 못하고 공감을 넘어 내가 제대로 치료해 주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환자의 견디기 힘든 블랙홀 같은 상처에 빨려 들어가며 그렇게 쉽게 볼 게 아니라고 혼이 난 것만 같다.
물론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를 통해 공황장애 환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더욱더 알게 되었다. 지친 환자들의 삶을 등산 동반자로서 같이 고민하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고, 때로는 등대처럼 방향성을 잡아주는 그런 존재가 좋은 정신과 의사라고 믿는다. 나 또한 조금 더 겸허한 마음을 갖고 서두르지 않는 자세를 가진 정신과 의사가 되길 스스로에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