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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y 23. 2022

17세

    나이는 17세, 여고 1학년. 18세까지는 아동 병실에 입원이 된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에 동그랗고 커다란 검은 눈동자가 안경 뒤에서 반짝거리는데 입가에 담긴 미소는 귀여움을 더해 주었다. 침대에 앉아 긴 머리카락을 찰랑대며 주위에 둘러선 어른들을 둘러보는 모습은 병원에 들어와 불안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기는 듯 여유로웠다. 입원 사유인 '자살 미수'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어 보였다. 소녀의 곁에는 간호사가 앉아 소녀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자살 미수로 병원에 들어오는 환자는 24시간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규칙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소녀의 엄마인 듯한 부인이 굳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소녀에게 정신과 담당 의사가 왜 병원에 들어왔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네, 제가 약을 먹었어요. 죽으려고 스무 알을 먹었어요.”  

  “약이 어디서 났는데?”  

  “의사가 하루에 하나씩 먹으라고 처방해준 약인데 안 먹고 모아놓았던 약이 있어요.”  

  “어느 의사가 왜 먹으라고 준 약이지?”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치료제로 준 약이에요.”  

  “먹고 죽으려고 모아놓았니?” 


소녀는 방긋 웃었다.  


  “약을 먹은 것이 이번이 세 번째인 것이 맞니?” 


의사의 물음에 소녀는 자랑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며 소녀는 병실 안에 모여있는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얼핏 민감한 틴에이져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가 후회하는, 이따금 보게 되는 케이스 같았다. 단지 그런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어색하고 민망스러운 표정이 없을 뿐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부인이 그 모든 소녀의 말을 부인하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 약은 한 알도 모아놓을 수가 없었어요. 처음부터 불안해서 그 약은 내가 감춰놓고 매일 한 알씩 입에 넣어주고 물을 입에 넣고 삼키는 것까지 확인했었어요. 정신과 닥터 리가 이 약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해서 내가 직접 챙겨 먹였는데 그 약을 모아 두었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아니에요, 그 약을 입에 넣고 삼키는 시늉만 했어요.” 


그 말을 하며 소녀는 놀랐지요, 하는 얼굴로 또 방긋이 웃었다.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부인의 얼굴은 당혹함과 연민과 고통까지 교차했다. 의사가 부인에게 말했다.  


  “차트를 보면 부인은 이 환자의 법적 보호자가 아니고 앤티(aunt)라고 되어있는데 그런가요?”  

  “네, 저는 이 아이의 큰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이 애가 중학교 2학년 때인 4년 전에 조기유학으로 한국에서 왔어요. 그동안 쭈욱 제가 데리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여기까지 말하다가 소녀의 큰엄마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예민한 나이의 조카아이를 맡은 책임감에다가 터무니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현실에 충격이 컸던 듯 가늘게 떨고 있었다.  


  “앤티(auntie)께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의사가 부인에게 물었다.  


  “며칠 전 새벽이었어요. 평소와 같이 일어나 제 방에서 아침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재은이가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날 새벽 세 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하니 그만 자라고 야단쳤어요. 그 전날 밤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밤을 꼬박 새운 것을 알거든요. 그러니까 이틀 동안 잠을 안 잔 거예요. 나는 학교 못 가는 것만 걱정이 되었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래도 학교 갈 준비를 하는구나, 했는데 별안간 아래층에서 까다당, 하는 깨지고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 놀라서 내려가 보았더니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거예요.” 


부인은 그 말까지 하고 감정이 격해지는지 손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법적 보호자는 아닐지라도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외면해버릴 수도 없는 어린 조카딸의 이상 행동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큰엄마를 바라보며 재은이는 재미있다는 듯 방글거리고 웃었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편안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눈물이 그치기를 기다리는 병실 안의 스태프들을 위해 그는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니? 하고 물으니까 재은이가 하는 말이 ‘큰엄마, 나 약 스무 알 먹었어요’ 하더라고요. ‘무슨 약?’하니까 ‘수면제요’ 하는 거예요. 수면제가 어디서 났냐고 하니까 전에 엄마가 한국에서 머리가 아플 때 먹으라고 타이레놀을 줬어요, 하는 거예요. ‘왜 그 약을 먹었는데?’ 하니까 ‘죽으려고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응급실로 데리고 왔어요.” 


그 말을 들으며 그 방에 있는 의사도, 간호사도 담당 조사관도 할 말을 잊은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우선 현 상태로는 재은이가 미성년자라 법적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친부모가 와서 데리고 가든지 아니면 정신질환 센터로 보내야 합니다.” 


담당 조사관이 말했다.  


  “한국에 연락했어요. 내일 아침 얘 엄마가 여기 도착한다고 합니다.”  

  “잘됐군요. 그럼 내일 아침 의논하기로 해요.” 


재은이를 24시간 보호(?)하는 임무를 가진 간호사만 남고 모두는 병실을 물러 나왔다. 큰엄마가 복도에서 나를 붙잡았다.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요.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시지요.” 


나와 마주 앉은 큰엄마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 한숨 끝에 한탄이 묻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내가 도무지 어떻게 해야 재은이를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한국의 제 부모에게 보냈으면 딱 좋겠는데 내가 그러면 조카 돌봐주기 싫어서 그런다고 할 것이고, 그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내 아이라면 야단칠 때 야단치고 말로 타이르면 되는데 그게 안 돼요. 그런데 재은이가 너무 나를 힘들게 해요. 그냥 예민한 나이의 아이라기보다는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이 상태에 따라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하고…. 이번에도 의사한테 자살 미수가 세 번째라고 말하는데 물어보니까 얼마 전에 타이레놀을 여섯 알 먹었다는 거예요. 애가 하도 힘들게 해서 내가 그 어떤 약도 눈에 안 띄게 놔두고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 하니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 나이 또래면 내 아이도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다. 조카도 자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내 아이같이 쥐어박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한국의 부모에게 보내도록 하세요. 저 애 나이에는 부모가 데리고 있어도 힘든 나이인데 미국에 부모와 떨어져 와 있으니까 방황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모를 리야 없겠지만 내가 다른 할 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좋겠는데 재은이가 한국에 가는 것을 원치 않아요. 한국에 가서 다시 학교에 들어가면 그동안 4년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학년이나 분위기에 다시 적응하기가 힘들다고 해요.”  

  “아까 의사의 말로는 그렇게 되면 여기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부모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을 텐데요.”  

  “재은이는 한국에도 가기 싫고 정신병원에도 가기 싫은 것이 확실한, 정신 질환 환자가 아니에요.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해요.”  

  “무슨... 소리가요?” 


나는 옛날에 본 어느 영화 생각이 났다. 여자아이에게 붙어있는 귀신. 귀신에 사로잡힌 아이. 그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 사람의 머릿속은 실로 묘해서 멍하니 있는 것 같아도 때와 상황에 따라서는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나 읽었던 책, 혹은 쓸데없는 헛소문 같은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의식 세계로 재빨리 모습을 나타낸다. 그 영화 속의 소녀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변해서 가족들을 경악시키기도 했지만, 약물이나 수술이 아닌 귀신 쫓아내는 의식으로 완전히 치유된다. 이 애도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다음 날 오후, 재은이의 엄마가 한국에서 날아와 병원의 딸을 찾아왔다. 아직 젊고 고운 자태지만 딸로 인해 받은 정신적 충격과 오랜 비행시간으로 인해 초췌한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줄곧 울었던 듯 퉁퉁 부은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멍한 시선은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딸보다 더 깊은 병에 걸린 사람 같아 보였다. 엄마와 큰엄마 그리고 병원 관계자와 정신과 의사, 담당 간호사가 또다시 재은이의 향후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 옆 방에 모였다. 두 가지의 선택권은 어제와 같았다. 정신병원에 수용시키든지 아니면 엄마가 데리고 있든지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는 어떻게 되지요?” 


학교 문제가 엄마는 제일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담당 의사가 나섰다.  


  “재은이는 깊은 병에 걸렸어요. 수술이나 다른 요법으로 치료해야만 하는 병보다도 더 깊은 병입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재은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병을 치료하는 일입니다.” 


엄마는 한국어로 통역을 해주어도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마치 그까짓 약 한번 먹은 것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듯했다.  


  “재은이는 4년 전 처음 여기 중학교에 들어왔을 때 공부도 잘하고 적응에도 별문제가 없어 학교 성적도 아주 좋았어요. 그 후 친구를 잘못 사귀었는지 조금씩 성적이 떨어지더니 이렇게 됐어요.”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딸의 상태를 너무나 모르고 있는 듯했다. 학교 성적, 나쁜 친구, 병실 안에 둘러 서 있는 스태프들에게는 오히려 생소한 언어일 것이다.   


  “그러면 엄마가 한국에 데리고 가셔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 제일 좋겠네요.”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사실 그 길만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병든 아이를 멀리 떼어 놓고 학교 성적이니, 나쁜 친구니, 할 때가 아닌 것이다.  


  “네, 한국에 데리고 가면 외국인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그 기간에 1년이 모자라요. 1년을 더 여기에 살아야 자격이 돼요.” 


나는 이 엄마의 말을 의사에게 전해줄 수가 없었다. 나도 잘 모르는 한국의 학교 시스템을 어떤 말로 설명해야 의사가 '아, 그렇군요' 하고 수긍하며 도울 것인가…. 외국인 학교에 보내 영어를 익혀놓고 어찌어찌 일류 대학에라도 들여보내 놓는다고 해도 정신적인 병이 들어 있는 아이가 어떻게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한 세대를 이끌어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답답해졌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정신질환 병원에 보내야 하는 길 뿐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엄마는 한마디로 거절이다.  


  “멀쩡한 애를 왜 정신병원에 보내요?” 


멀쩡한 아이 같지만 재은이와 그동안 상담해온 한인 정신과 의사 닥터 리의 견해로는 전혀 멀쩡하지가 않았다.   

  <병명: 몽상 혹은, 망상증. 우울증세. 환각 증세>


그리고 재은이가 죽으려고 먹었다는 스무 알의 수면제는 피검사에도 소변 검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면 왜 먹지도 않은 약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하지도 않은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귀에서 누군가가 속삭인다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담당 간호사가 의학계의 제일 어려운 분야는 정신과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귀신이 장난치고 있는 환자도 보았다, 는 것이다. 나는 병실을 나왔다. 인간인 의사가 귀신의 영역까지 넘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언뜻 재은이를 돌아보니 인사라도 하듯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방글거렸다. 귀여운 모습이지만 어른들을 데리고 노는 듯한 노회 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라있었다고 한다면 외려 내게 망상 증세가 생겼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정신 상태에 깊은 병이 온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귀신이 놀고 있는 것인가. 마음이 답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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