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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Oct 03. 2022

자바 기차여행

자카르타 근교에 볼 일이 있어서 7시간 30분 걸리는 기차를 탔다. 반둥이나 스마랑을 지나지 않고 자바 중부에서 서부까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루트였다. 차를 타고는 지날 일이 거의 없는 루트였기 때문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살고 있는 족자카르타에서 수라까르타(솔로)까지 통근열차를 타본 적은 있지만 일반 기차는 이번이 처음이라 약간의 설렘과 긴장이 느껴졌다. 특히 뿌르워끄로또와 찌르본 사이의 루트는 인상적이었는데 앞으로도 기차가 아니면 볼 일이 없을 풍경이라 더욱 그랬다.  

족자카르타에서 자카르타까지의 노선

토요일 아침 일찍 그랩으로 차를 호출해서 족자카르타 역(Stasiun Yogyakarta)으로 갔다. 기차를 탈 때도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이 백신 접종상황을 확인한다. 부스터 샷까지 맞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앱에 있는 증명서를 보여주고는 역사로 들어갔다. 이곳 시스템이 어떤지 몰라서 처음엔 비슷한 시간대의 (자카르타행) 다른 열차에 올라탔다가 급하게 내리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다시 여유를 찾고 역사를 둘러보았다. 족자는 자바 문화의 중심지답게 곳곳에 자바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와 공연들이 있다. 족자카르타 역사에도 역시나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악인 가믈란(Gamelan)을 연주하는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끔은 공연자들이 와서 전시된 악기들을 가지고 직접 연주를 하기도 하는데 이곳은 어떤지 모르겠다.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역에 도착했었기 때문에 로띠 오라는 번 가게에서 커피 한 잔과 번을 사서는 여유롭게 키피를 즐겼다. 

족자카르타 역사와 플랫폼
역사내부와 전시된 전통악기들

KAI(Kereta Api Indonesia)라는 이름의 인도네시아의 기차는 여러 종류의 노선과 차량으로 구분되는데 같은 열차 내에서도 다시 좌석 등급이 서너 개로 나눠진다. 긴 시간 가야 하니 침대칸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과 금액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반칸은 다시 에어컨이 나오는 칸과 나오지 않는 칸으로 구분된다. 나는 7시간 반이 걸리는 노선이라서 한화로 4만 원 정도 하는 익제큐티브 A 표를 끊었다. 사진에서 보기론 일반칸 좌석이 뒤로 젖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차는 족자의 신공항이 있는 남쪽으로 출발했다. 족자 신공항은 인도양에 접해 있는데 아마도 자카르타행 열차는 공항까지는 공항철도와 같은 노선을 이용하는 것 같다. 완행열차인 건지 기차가 느리고 자주 정차했다. 정차하는 역들은 찌르본을 빼면 지나가 본 적이 없는 곳들이었다.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다룰 이슬람이라는 극단주의 무슬림 단체가 현대 인도네시아의 건국 시기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고자 게릴라 투쟁을 했던 지역들을 배웠었는데, 중간중간 수업에서 이름을 들어본 도시들이 나왔다.  

열차내부와 역사모습
자바 중부의 풍경

한참을 지나도 같은 풍경이다. 한두 시간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지루해져서, 식사를 파는 카트에서 과자를 하나 고르고 커피를 한 잔 시켰다. 그리고도 다시 두어 시간 동안 논과 밭, 산과 강, 그리고 숲의 모습이 이어졌다. 발리의 우붓이나 자바의 반둥 같은 곳엔 계단식 논들이 발달해 있는데 이곳은 평지가 많아서 드문드문 얕은 계단식 논들이 보이고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종종 산이 하나씩 솟아 올라와 있는데 주로 화산이다. 한국처럼 계란판 모양의 산들이 아니라 멀리서 봐도 확연히 보이는 하나씩 우뚝 솟은 활화산들이다. 우리 집도 북쪽으로 10km도 안 되는 곳에 대단히 활동적인, 백두산보다 높은 므라삐 화산이 있다. 그 화산들이 늘 재앙인 것은 아닌데 므라삐 화산 근처로 끄두 평원이라는 넓은 평야지대가 발달해 있다. 화산의 분출은 엄청난 재앙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농업생산력을 높이기도 하는 것이다. 논농사의 경우 이곳에선 삼모작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중부 자바는 고대로부터 끄두평원의 농업 생산량을 바탕으로 마타람 왕국과 같은 국가들이 발달해 왔다. 대승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와 힌두사원인 쁘람바난의 건축도 바로 이러한 농업생산력을 중심으로 발달한 왕국의 번성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도 지나가다 보면 한쪽에선 모내기를, 옆에선 추수를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참 이국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들이 종종 가지고 있는 편견 중 하나는 이렇게 좋은 농업환경에서도 더운 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인데, 아니다. 이 분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한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늘 웃으면서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국가의 경제문제를 그렇게 단순히 평가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찌르본

4시간 넘게 달려오다 보니 드디어 차로 지나가 본 도시가 나왔다. 바로 찌르본이다. 드디어 아는 브랜드가 나왔다. 슈퍼 인도는 나도 평소에 이용하는 마트 체인이다. 반가운 KFC 할아버지도 있었다. 문명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바 남부의 도시들과 북부의 도시들의 발달 정도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자카르타에서 수라바야까지 이어지는 자바의 북부지역으로 한국과 일본의 공장들이 퍼져 있다. 인도양에 닿아있는 자바의 남쪽 지역으로는 산업이 크게 발달하지 못하여 주민들은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카르타에 가까워질수록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확연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자카르타의 감비르 역(Stasiun Gambir)에서 야간열차를 탔다. 그래야지 이른 아침 족자에 도착해서 편하게 집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열차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족자가 대학도시이다 보니 주말을 자카르타에서 보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자카르타에는 세 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그중 모나스 광장 옆의 감비르 역이 가장 큰 거 같다. 감비르 역은 1층이 상점들과 식당들, 2층이 대합실, 3층이 플랫폼으로 되어 있었다. 역에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1층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올라가서 기차를 탔다. 비행기처럼 자리마다 담요가 있어서 왜 그러나 했는데 가는 동안 너무 추워서 담요를 꼭 끌어안고 있어야만 했다. 7시간 넘는 여행 끝에 족자에 도착했다. 그랩을 부를 정신도 없어서 나가자마자 기다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갔다. 아이들이 여전히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가방 가득 들어있는 한국 과자를 보고 아이들이 좋아할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여행을 마무리했다. 

자카르타의 감비르 역과 야간열차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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