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양
당신의 가장 오래된 꿈은 무엇인가요?
내가 기억하는 생의 첫 꿈은 가족들과 함께 살던 단칸방에서 꾼 악몽이다. 어김없이 도망치는 어린 나. 골목 끝으로 빠져나갔을 때 마주한 건 큰 대로변이었다. 따돌렸나? 주위를 돌아보자 저기 멀리서 스포츠카를 몰고 내게 달려오는 해골머리. 그 해골머리로부터 더 이상 도망칠 곳도, 도망칠 힘도 없다고 여겨질 때 나는 압박에 못 이겨 강제로 나를 잠에서 깨운다.
일어나. 꿈에서 현실로 도망쳐!
헉!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보이는 건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동생이 잠들어 있는 단칸방이었다. 아빠는 사고가 났었는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의자 위에 다리를 올려두고 자고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파란빛이 좁은 방을 가득 채웠던 것이 기억난다. 뜨겁게 쿵쾅거리는 내 심장과 달리 고요하고 차갑던 방. 내가 기억하는 그 방은 아마도 아빠가 중국집을 할 때 같이 얻었던 단칸방이었던 것 같다. 나의 기억 단편에는 어린 내가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세일러문 하는 시간에 맞춰 아빠의 중국집으로 달려갔던 장면이 있다. 매장의 천장에 달려있던 뚱뚱한 옛날 티브이로 봤던 세일러문. 이 기억의 단편들은 너무 희미해서 이 모든 것이 다 꿈속의 꿈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었다. 아빠가 덜 무서워졌을 때, 아빠에게 물어보기 전까지 말이다.
'아빠 혹시 중국집 했었어?'
아빠는 놀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내 기억에 아빠가 중국집을 했던 기억이 있어.' 아빠는 어릴 적을 기억하는 나를 놀라워했다. '네가 고작 2-3살이었는데. 그게 기억이 나나?'. 실제로 한국에서 세일러문이 방영된 건 1992년부터 1997년인데, 내가 1994년생이고 동생이 96년생이니 내가 기억하는 단칸방의 기억은 2-3살 때의 일인 것이다. 아빠는 내가 얼마나 더 많은 걸 기억하고 있는지 들었다면 더 놀랐을 텐데.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다가 걸려서 혼났던 기억(3살이 무엇을 위해 돈을 훔쳤을까?), 동네 남자애들이 새총으로 돌을 쏴 참새를 맞춰 죽였던 사건, 그 옆에서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초조하게 타들어가던 마음, 남자애들이 떠나고 내가 참새에게 다가가자 미용사 아주머니가 가게 앞으로 나와 참새를 조용히 묻어 주셨던 장면, '이런 짓은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던 목소리.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느끼던 죄책감.
아빠가 돌아가시고 막내 삼촌은 장례를 치른 나를 데리고 아빠가 중국집을 하고 내가 누볐던 놀이터를 데려가주었다. '진아, 기억 나나? 여기서 느그 아빠가 중국집을 했는데. 느그 가족들 여서 단칸방 얻어 살았다. 내가 니 데리고 이 놀이터에서 자주 놀았는데. 기억 안나제?' 막내 삼촌은 그때 대학생이었는데, 학교 마치면 종종 나를 데리고 이 놀이터에서 놀아줬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분명 2-3살의 기억이 있었는데, 놀이터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동네의 모양도 처음 만난 듯 어색했다. '히야(형)가 배달을 했잖아. 그러다가 사고 나서 다리부러져서 배달 못하고 그랬지. 히야 사고 많이 쳤지.'
내가 기억하는 아빠가 깁스한 모습도 꿈이 아니었다. 아빠와 중국집에 대해 얘기할 때, 아빠가 요리를 했냐고 물어보니까 아빠는 사장이라 배달을 했고 요리는 외삼촌 담당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외삼촌이 노름에 빠져 요리를 하러 안 와서 일일 요리사를 따로 구하느라 돈이 두배로 들었고 그러다가 망했다고. 나는 그 말을 반만 믿었다. '아빠의 책임이 없었을 리가 없어.' 막내 삼촌의 얘기를 듣고 나니 깁스를 하게 된 것도 술을 먹다 넘어진 거라고 했다. 아빠가 배달을 못했으면 배달부를 썼을 테고, 그럼 또 돈이 2배로 들었겠지! 아빠는 중국집이 망하고 정리를 하면서, 누가 자신의 식기와 자재들을 쓰는 게 싫어 새것들인데도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렸다고 했다. 마치 그것이 자랑인 양 나에게 얘기했는데, 내게는 자격지심처럼 느껴졌다. '망했다는 걸 인정할 수도, 누군가 자신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덕을 보는 것을 용납할 수도 없는 거겠지.'
나는 이렇게 아빠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비난하고 힐난하고 난도질하고 증오했다. 그런 아빠가 죽어버렸을 때, 나는 웃어야 했나 울어야 했나. 장례식에 찾아온 막내 삼촌은 나를 보더니 '진아, 못난 아빠라도 있는 게 낫다.'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못난 아빠가 있는 게 나은지 없는 게 나은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해방감인지 아니면 절벽 끝에 선 막막함인지 알 수 없으니까. 장례가 끝나고 막내 삼촌은 왜 나를 옛 동네에 데려간 걸까. 잊지 말라고? 못난 아빠라도, 나쁜 기억이라도, 상처투성이라도.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나의 모든 기억이, 삼촌의 말이, 옛 동네에 데려간 그 마음이, 나의 증오와 원망이 모두 사랑이라는 걸 알겠다. 왜 이게 사랑인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고, 사랑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걸.
p.s 글을 쓰는 내내 왜 끊임없이 애프터양이 떠오르는 걸까. 기억에 대한 글을 써서 그런 걸까. 눈물을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