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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연재 Jul 12. 2022

현상유지와 운(運)빨

기도하는 남자(feat)

현상유지와 운(運)빨

 하다 보면 언제나 제자리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현상유지. 나쁘다면 나쁜 말이지만 좋게 받아들이면 참으로 감사할 수도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정말 내가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면 어떨지?


정리해 보면 현상유지에는 3가지 타입(type)이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 우상향 하는 타입,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타입, 우하향 하는 타입. 여기서 하나 정해야 할 것 있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방향성을 보느냐이다. 이것도 쉽게 퉁쳐서 정리해 보자.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니 '돈'을 y값으로 보자. 물론 노골적으로 왜 '돈'만 y로 보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행복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통한 자아실현, 이런 것들도 높은 우선순위를 둘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면 너무 변수가 많아지고 복잡해지니, 단순화해서 문제를 논의해 보자. 


우하향 하는 타입. 이건 볼 것도 없다. 인생이 잘못 가고 있다는 거다. 나날이 돈이 마르니 나중에는 사람 구실 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된다.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설상가상이라고 어느 하나의 구멍에서도 돈줄이 막힌다. 다음은 평탄한 타입을 보자. 평탄한 타입도 돈의 총액으로 보면 상(上), 중(中), 하(下)로 나눌 수 있다. 하(下)는 볼 것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생이 골로 간다. 중은 어떨까? 글쎄다. 변화 없이 그대로 간다면 좋겠지만 세상에 그렇게 순탄하게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이 흐르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현상유지'라는 말은 상당수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우상향 하는 타입은 어떨까? 이게 좋은 상황이다. 돈도 늘어나고, 여기에 자아실현이나 뭔가 선(善)한 가치를 증대하는 것이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이런 경우는 현상유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야, 너 요즘 잘 나간다며....' 이때는 뭔가 타인에게 자신의 삶이 순풍을 탄 것처럼 보이게 된다. 


회사도 그렇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매년 성장해야 한다. 만약 정체 상태라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이런 상황도 결국 두 가지로 정의 가능하다. 원래 시장 자체가 작고 쪼그라 드는 상황이라서 현상유지 자체가 베스트인 경우다. 표현이 좋아 베스트이지 이 상황도 결국은 시간문제다. 다음은 시장은 성장하고 매력적인데 내가 못하는 경우다. 사실상 이는 현상유지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동종업계에 일하는 다른 회사에 비해 내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회사가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는 건 사실은 뒷걸음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현상유지는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유지 자체가 안되게 된다.


영화 기도하는 남자 중에서


얼마 전 우연하게 박현권 씨가 주연을 맡은 영화 '기도하는 남자'를 보았다. 박현권 씨가 개척교회 목사 역할을 담당했다. 신앙만을 삶의 중심으로 믿고 올곧이 걸어가던 한 중년의 남자가 무너지는 과정을 눈물 나도록 생생하게 그린 영화였다. 특히 화장실에서 울부짖으며 고뇌하는 박 씨의 모습이 내 마음을 때렸다. (사진 참조). 그는 개척교회 목사라는 신념이자 삶의 신앙을 '현상유지'하면서 걸어가려 했다. 하지만, 상황 변수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마침내 무너졌다. 


예전에 아내의 권유로 주말농장을 한 적이 있다. 감자, 가지, 옥수수, 피망, 고추 등등을 심었다. 한 5~6평의 텃밭이었는데 눈으로 볼 때와는 달리 농사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가뭄 때면 물 걱정, 비가 많이 와도 물 걱정, 잠시 돌아서면 온갖 틈새에서 잡초와 힘겨루기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신기한 게 어찌어찌 씨를 뿌리고 때가 되면 수확량이 꽤나 된다는 거다. 씨감자를 파종하고 감자를 캘 때는 깜짝 놀랐다. '이야 이 작은 씨알들이 이렇게나 주렁주렁 감자를 내게 선물로 주다니'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물론 익숙치 않은 농사를 하니 힘은 나름 들었다. 그런데, 사실 초보 농부로서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땅과 물과 태양과 바람이 곡식을 영글게 했다. 농부의 땀도 너무너무 값지고 소중한 것이겠지만, 나는 수확을 하면서는 이런 생각이 오히려 더 컸다. '정말 신비롭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씨와 모종들에게서 이런 풍성함을 얻다니, 이건 거저 누군가가 주신 거야'


말이 잠깐 옆으로 샌 것 같은데, 여기서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이렇다. 하물며 농사도 씨앗 하나에서 100배, 1000배의 결과로 돌려주는데, 현상유지라니? 감사하려고 하면 끝없이 감사할 수 있지만, 현상유지는 감사할 상황이 아니다. 벗어나야 하고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각자의 삶을 보자. 어떤가? 현상유지라 행복한가?


사실 모르겠다. 어느 정도 현상유지에 달했다고 생각되면 이제 새로운 곳을 의식적으로 찾아야 한다. 굳이 현상유지가 되는  위해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현상유지를 위한 노력보다 새로운 곳의 열매가 훨씬 크다면 이때는 결정을 해야  시기이다.


나는 현상유지 하니까 좋아! 그렇게 아내자식에게 말할  있다. 그런데, 사장이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회사는 이제 끝을  보여준 셈이다. 왜냐? 여기가 끝이니까.


시장의 어느 업종을 볼 때, 전체 시장 규모와 여러 회사의 시장점유율(market share)도 함께 보는 경우가 많다. 만약 해당 업종이 무주공산이고 미지의 영역이라면 어떨까? 새로운 회사가 기지개를 켜고 성장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가 운(運)빨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시기다. 성공한다 못한다로 한마디로 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새로 무언가를 하기에 유리한 상황이 이런 때이다. 그런데, 이미 쟁쟁한 업체가 눈을 벌겋게 뜨고 있다면 어떨까? 이때, 잘해야 현상유지하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시간 속에서 상황변한다. 상황을 구성하는 개인 또는 회사도  역할과 위상이 지속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나는, 우리 회사는 어떤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시장 상황을 면밀히 보아야 한다. 그러면 운빨이  시기인지 아닌지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있다.


다시 영화 기도하는 남자로 돌아가 보자. 아무튼 절망 속에서 붙잡고 있던 자신의 전부를 속이고 잃어버렸던 남자가 새롭게 태어난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이 그렇게나 붙잡고 있던 신앙이 아니었다. 우습고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연한 기회에 들어오게 된 돈이 그의 꿈을 실현시켜 주게 된다. 그는 어엿한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그의 아내는 목사 사모로서 평화롭게 신도들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겉바속촉이면 좋을 텐데.... 아마 박현권 씨가 열연한 목사의 겉은 평화였겠지만, 안은 어떨지?


영화 기도하는 남자 중에서


호호야,

그날이 그날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도 사람에 따라서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인생이 있을까? 내가 어제 본 강과 똑같은 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어떤 현상유지의 상태에 있는가?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운빨은 어떨지  안테나를 세우고 감지해야 한다. ? 그렇게 사는  인생이니까. 그렇게 살아야 자신의 y 정한 값이 우상향으로 올라가니까.

이런 변화 속에서 휩쓸려 떠내려 가면 자신도, 가까운 사람도 모두 잃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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