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연재 Oct 17. 2021

진(眞), 선(善), 미(美) 중에서 고른다면?

진(眞)을 향해...

요즘은 사라졌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우량아 선발대회가 있었다. TV에서 중계를 하기도 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그야말로 발육이 잘된 아이를 자랑하는 대회였다. 또 다른 대회로는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TV 중계를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미스코리아에 선발된다는 것은 전국적 인기를 한 몸에 얻을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연예계로 직행할 수 있는 골든 티켓을 갖는 것이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도, 선도, 미도 다 좋은 것인데, 왜 등수를 매기면 항상 '진'이 가장 좋은 것일까? 이유는 도대체 뭘까? 등수로 굳이 환산하면 진은 1등, 선은 2등, 미는 3등에 해당했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나름 궁금증이 일었다. 왜냐하면 교회에 가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보게 되는데 모두 다 좋은 것들인데 이중에서 굳이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것과 같은 격이니 말이다.


성경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 선, 미도 그런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또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한 등수를 매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라는 것. 단순히 아름답다는 건 보기에 좋다는 것이다. 보기에도 좋고 또 그 속이 알차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아름답다는 것이 엄청나게 평가절하될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빛 좋은 개살구. 성경에도 보면 바울 선생이 방언을 하고, 예언하고, 산을 옮길 능력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고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처럼, 단순히 아름답다는 ‘미’는 뭔가 모자란다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좋다. 그렇다면 미를 3등으로 치자. 굳이 또 다른 표현을 빌리다면 백치미는 어떨까 싶다. 아름답지만 뭔가 모자라고 그래서 오직 아름다움만이 부각되는.


그런데, 왜 그러면 ‘선’은 2등일까? 선은 착함 또는 이타적임을 의미를 내포한다. 어쩌면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그 마음이 선하고 타인에게 친절하며 배려하고 또 이타적이라면 그건 단순히 아름다운 것(미)보다는 더 높게 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정리하다면 선이 미보다 높은 등수에 있는 것이 나름 납득이 된다.


이제 나머지는 ‘진’과 ‘선’의 우열을 가르는 문제이다. 그럼 왜 진과 선 중에서 진이 선보다 더 앞선다 말인가? 이 문제로 나름 고민을 했다. 한자사전에서 '진'을 검색해 보면 참, 진리, 진실, 본성 등의 단어가 뜻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참이라는 것과 선함이라는 것에는 왜 굳이 등수를 매기는 순위가 생기는 걸까?


나름 개똥철학이지만 내가 답에 이르게 된 몇 가지 이야기를 적고자 한다.

가끔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 위에 로드킬을 당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보는 경우가 있다. 출근길에 이런 걸 보면 왠지 하루 운세가 사나울 것 같은, 뭐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이걸 단순히 동물이 죽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가끔 로드킬을 볼 때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에 저 동물과 동일한 물질이 있다고 하면 저 동물을 만들 수 있을까? 또 그 동물을 만들어서 똑같이 움직인다 손 치더라도 그 동물이 본성을 그대로 흉내 내게 만들 수 있을까?'


모든 물질은 우주로부터 기원되어 우연한 기회에 와서 지구 전체에 생명을 이룬다고 배웠는데, 그럼 물질로 만들어진 각자의 생명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살까? 이걸 본성이라고 말해도 될까? 이런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서 나라는 인간(아니 인간 전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생각해 보았다. 물질로 이루어진 나라는 사람을 모두 걷어내면 나는 무엇일까? 뭐라고 정의할 수 있고,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 끝을 모를 거대한 우주의 한조각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구라는 곳에서 잠시 생명이라는 시간을 부여잡고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생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본성, 그러한 지향점을 혹시 '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니까 주변 환경이나 외부와 상관없는 순수한 그 자체, 자신은 '진'이며, 가장 진다운 진을 가질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나름 지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본성대로 살아라.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유명한 라틴어 문장으로 아모르파티(Amore fati)가 있다. 의미는 다 알다시피 자신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는 뜻이다. 내가 나름대로 의역한 또 다른 표현은 '자신만의 영혼의 노래를 부르라'이다. Amore fati가 말하는 이런 개념을 '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름의 논리로 진, 선, 미를 정의하고 왜 이들 간에 우열을 생기는 지를 정리해 보았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건,  굳이 세가지에서 우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예쁘고 아름다우면 좋고, 또 거기에 선하고 이타적인 삶이라면 더 좋고, 그런 일련의 모습이 아모르파티가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본성에 딱 맞는 자신만의 영혼의 노래를 부른다면 그 개인의 삶은 어떨까? 정말 퍼펙트하지 않은가?


호호(昊昊)야, 진, 선, 미 중에서 진이란다. 이제 청년이 된 너희들이 방향을 두고 살아야 할 모습은 진정한 자기 본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영혼을 노래하는 거란다.


작가의 이전글 무상 속 무소 찾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