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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연재 Dec 07. 2021

저 능력이 안돼요?

擔雪塡井(담설잔정)의 마음으로

스타트업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수준의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요사이 젊은이들의 벤처기업 근무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참한(?) 인력 확보는 여전히 녹녹지 않은 숙제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정되고 누가 봐도 폼나는 대기업 타이틀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일전에 한 유명 정치가도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사업한다는 것도 결국은 적재적소에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다. 하지만, 사업의 첫걸음부터  떼기 어렵다는 것이 스타트업의 실상이다.


이리 어려운데 어떻게 '개천에 용'이 날까? 그래도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달리다 보면 그중 몇 개의 회사는 자기 분야에서 나름 인지도를 가질 정도로 성장한다. 여기에 순풍이 도와주면 상장(上場)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고. 어느 벤처 생태계 관련 보고서에서 본 기억이 있다. 대략 1,000개의 기업이 시작한다고 할 때,  매출 100억을 달성하는 기업은 그중 대략 하나 정도라고 한다. 확률로 치면 0.1%이다. 이건 성공한 기업만의 이야기일 뿐이다. 보고서에서는 실제 75%의 회사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경우가 있다. 생존하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먹고살만한 (영업)이익을 내느냐로 보면 이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아무튼 스타트업의 속내는 이렇다. 내가 속한 AI 사업부는 창업한  3 반이 되었다. 현재 직원은 대략 50명이다. 사업 초기에는 작은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먹고 살았다. 대표이사와 전무이사인 내가 세세하게 사업 내용을 파악한 덕분에 대부분 무탈(?)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회사 나이가 3살이 넘은 지금, 동시에 진행되는 사업 건수를 헤아려 보니 10건이 넘는다. 우리 회사는 주로 굴지의 대기업 고객들의 AI(인공지능) 문제를 컨설팅한다. 고객과의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 당연하며, AI라는 창의성까지 요구하다 보니 나름 업무의 강도와 복잡도가 높은 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딜레마가 시작된다. 공성(攻城)이냐? 아니면 수성(守城)이냐?


사상누각(砂上樓閣) 안되려면 충분히 내실을 다지고 치고 나가야 한다.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다.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직원들 장교(?) 수준으로 충분히 훈련시키고 사업을 확장시켜야 한다. (1)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마인드(mind) 사업을 하긴 어렵다. 그렇게 하다가는 직원들 월급 주기 위해  꾸러 다니는 신세가 된다.  주변에 사업하면서 선산을 팔아먹은 친구들도 많다. 행여나 조심하고 조금 재다 보면 어느새 다른 경쟁자가 나타나 눈앞의 사업기회를 채간다. 매출 손실 정도는 작은 쓰라람이다. 때론 미래로 가는 비밀 열쇠를 놓쳐 버리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기회는 기다려주면서 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갖추고 사업을 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길을 걸으면서 우리 회사도 야금야금 성장해 왔다. 사업은 주로 프로젝트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제안 과정에서 업무 요건을 면밀히 살피면서 팀원들의 스킬(skill)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이후 프로젝트매니저(project manager) 결정하고 팀원별로 R&R(Role & Responsibiliby) 결정한다. 나름 실제 프로젝트 수행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온갖 시뮬레이션을 한다.  ' 친구는 이렇고  친구는 저러니까 이건 이렇게 막아질 거고 저건 요렇게 가능하겠네'  상상  상상을 하고 만들어진 팀이 프로젝트를 기차가 철길 미끄러지듯이 잘  내면  이상 기쁜  없다. 한마디로 '따봉'이다.


하지만 어찌 모든 것이 그린대로 흘러가겠는가? 마치 인생의 모든 법칙을 설명하는 파레토(pareto) 법칙처럼 언제나 결과는 8:2이다. 대략 20% 사고가 나고, 나머지 80% 그냥 그렇게 마무리된다.  중에 군계일학이 가끔 나오기도 하고. 서울대 다녔던 친구가 술자리에서 우스개 소리로  얘기가 있다. 전교 일등을 하는 애들을 모아 놔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고.


우리 회사와 같은 벤처의 경우, 노련한 친구들도 있지만 아직 처음 PM이라는 업무 자체가 생소한 친구들도 많다. 사실  분야는 역사가 짧아 경험 있는 PM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처음 PM을 하는 친구들에게는 내 경험담과 마음가짐, 그리고 주의해야 할 것 등등에 대해서 시간 날 때마다 일러 준다. 물론 프로젝트 중간중간에 이슈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서도 '비단 보따리' 풀 듯 조언을 준다. 그래도 지금까지 다행인 건 그렇게 짠 프로젝트팀이 아직까지는 대형사고는 안 쳤다는 거다. 3~4년 사업을 하다 보니 나도 나름 관상가 수준의 안목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최근 몇 년간 이렇게 팀을 꾸리면서 PM 관련해서 예외 없는 특이(?) 현상 하나가 있다. 나의 주관적인 안목이긴 하지만 그래도 PM으로 잘 성장할 것 같은 역량과 자질, 그리고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부분이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다. 바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이나 직후에 어김없이 나를 (여러 번) 찾아온다는 것이다.  


"전무님, 저 못할 것 같습니다. 능력이 안돼요."


참다 참다 고민하다 하다 한번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친구들도 있다. 심하면 대여섯 번 많으면 열 번이 넘게 개인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생각하는 거 당연하 거고, So far, So good이야. 내가 객관적으로 보고 말하는 데 너 정말 잘하고 있어. 다 그렇게 그렇게 가는 거야. 내가 너의 어려운 순간마다 함께 할게."


그러면 듣고 지긋이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사무실을 떠난다. 가끔 이런 친구들이 오면  주는 이야기가 있다. 더닝 크루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하는 지식곡선. 대부분 이렇게 찾아오는 친구들은 어느샌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고 노련한 PM 되어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


더닝 크루거 효과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하다. 아무것도 모르면 자신감에 충만하고 조금 알기 시작하기 하면 자신감이 바닥이 되고 절망한다. 그리고, 절망의 계곡에서 쉬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 조금씩 자신감이 회복되고 마침내 전문가의 길로 간다는 것이다.


처음 PM  때의 절망감으로 나를 찾아온 우리 회사 직원.  그들은 바로 더닝 크루거 효과의 '절망의 계곡' 건너다 나의 방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리고,  달이 지나면,  친구들은 '깨달음의 비탈길'순례자가 되어 있다.


진짜 문제는 위의 친구들과는  반대의 경우다.  모르 못하면서 자신감은 태평양, 타인의 조언에 대해서 개무시.


담설잔정(擔雪塡井)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우물에 눈을 쌓는다이다. 우물에 눈을 쌓으면 무엇하겠는가? 우물물에 닿자마자 눈은  녹아 버린다. 담설잔정은 결국 헛수고라는 의미사자성어이다.


예전에 이 담설잔정을 다르게 해석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떤 일이 금세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탓하고 원망하지 말고 우물에 눈을 붓는 것처럼 쉼 없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해라.   


호호(昊昊)야,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단다. 처음 하는 일은 다 잘 모르고 어색하고 두렵기 마련이란다. 하지만 배우는 과정 속에 절망이 있음이 당연하며, 절망을 넘으면 반드시 깨달음이 있단다. 이때 잊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바로 담설잔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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