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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May 10. 2022

닮고 싶었던 우상, 아니 환상

요즘 어른이 되기까지 애착 형성 문제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을 읽으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어릴 적 내가 내 엄마와 가진 애착 성향을 알 수도 없고 그 시절 엄마가 갓난아기인 나를 어떻게 대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어떤 면에선 일반적인 발달을 했구나. 정상적 정서적 발달을 한건 아니지만, 그냥 그 환경에 처했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수순을 밟으면서 큰 거 같다.


아이였을 시절 내가 가진 부모에 대한 감정은 양극이었다.


유치원 시절 나는 내 부모가 내 임시 보호자일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었다. 부모 자체를 부정을 하고 싶을 정도로 내가 매일 마주하는 부모의 모습은 어린아이 눈에도 시끄럽고 난잡하고 비이성적이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할 때 내일 일어나면 내 진짜 부모가 나를 찾으러 올 거라는 기대를 했었고 아마도 그 상상으로 그 시절을 버틴 거 같다.


유치원 시절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성탄절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자고 있는걸 뻔히 알면서도 형광등을 켠 채로 동네 슈퍼 과자세트를 내 머리맡에 놓고 온갖 부산을 떠는 바람에 그냥 떠넘겨진 과자에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부모로서 버킷리스트 달성을 하고 싶은 그들의 욕구 때문인 것이지 나를 위한게 전혀 아니라는 건 잘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동심 속 산타 같은 건 없다는 것 또한 잘 파악하게 되었고 성탄절의 즐거움도 그 해 이후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처럼 입고 먹고 꾸미려고 노력했다. 엄마는 전형적인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로써 시간을 같이 보내는 친한 친구도 없고 인생에 낙이 될만한 취미 또한 없었다.  사람을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정서적인 면이나 인간적인 가치, 행복 지향적인 면이 아예 없다 싶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따라   있는  껍데기뿐인 외적 모습과 기호 식품뿐이었다. 커피를 내리  잔을 마시고 박카스를 마시며 졸음을 버티는 것을 따라 하고 싶어 했고 미용실 돈이 아까워서 질끈 머리 묶는 것을 동경했으며 바지를 입는  또한 따라 하려 했다.


엄마가 좋지 않았으면서 왜 그랬냐 하면 솔직히 나도 답을 못하겠다. 고립된 환경에서 정서적 방임을 당하게 되면 다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상담할 때 그런 말이 나왔다. 마치 이건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것이라고. 가해자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고 그를 우상화 함으로써 가해자가 나를 해하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행복 회로를 돌리는, 그런 인간의 이상한 뇌 구조 때문인지. 어린 나도 조금이라도 이 여자가 하는 것들 따라 하면서 이 집안에 융화되는 느낌을 받고, 더 나아가 이 여자 눈에 들어야 내가 안전하게 살아남을 꺼란 것을 직감했던 거 같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둔 사람으로서 가장 서글픈 점은 사람의 ‘내면’을 닮는걸 전혀 배우지 못하고 나르시시스트들이 혹할 만한 껍데기뿐인 삶만 따라 하는 것을 배운다는 점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껍데기만 따라 하는 법을 배웠던 나는 고등학교 때는 체중에 집착, 20대 때는 성적과 커리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내면에서 뭘 갈구하는지에 대해 한 번도 탐구해 본 적이 없다. 자기중심적 사고와 거대한 환상을 추구하는 이들과는 정 반대 선상에 있는 cptsd환자인데도 불구하고 난 적어도 20대 중반까지 소위 Cluster B 인격장애로 분류되는 이들이 가진 그런 얕디 얕은 물질적 가치에 많이 동요되어 살아갔다. 날씬한 몸, 비싼 장신구, 승승장구하는 커리어, 자산 등등.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 역겨움이 올라왔지만 이런 것들을 쫒지 않는 다면 나락에 떨어질 꺼란 공포 또한 자주 올라왔다.


그리고 내 내면의 감정 또한 파악하지 못했던 건 물론이고 말이다. 나는 공포, 분노, 슬픔, 서러움 이런 것들을 따로 느끼고 표현하게 된 지 얼마 안 된다. 감정적 소통이 불가능한 이들 아래서 자랐으니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어려서부터 단순한 감정을 느끼고 서서히 쌓아간다기 보단 여러 감정이 폭탄처럼 뒤엉키는 트라우마로 감정을 접했기 때문일 런지. 그렇기에 나는 울분을 토하고 싶을 때 공포부터 느꼈고 즐거움을 느낄 때면 파괴의 구름이 나를 덮치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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