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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집아들 Aug 07. 2022

블리커 스트리트로 와요.

브루클린 다리 아래에 홀로 불행한 남자

 오늘은 뉴욕에서 아니 미국여행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이다. 내일 나는 미국을 떠나 모로코로 향한다.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으로 보기로 한 날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이름부터 거창한데다 비할  없이 유명한 터라 뭔가 대망의 마지막 날에 자유의 여신상으로 마무리를 해야 겠다 싶어 일정을 미루어 두었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직접 보게 되다니... 하긴 실제로 본 적은 없어도 하도 여기저기에서 너무 자주 본 까닭에 사실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설렘은 덜했다. 그저 그 유명한 것을 내 눈으로 딱 확인한다는 느낌이었다. 


 브루클린에서 맨하탄으로 넘어가전에 또 엄청 화제가 된 브루클린 브릿지를 보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남들하는 거는 또 해봐야 하니까 유명한 포토존에서 남들처럼 사진 한장 찍어보자 했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가까이 가서 보니 덩치가 아주 크고 그 골격이 굵직굵직한 것이 아주 남성미가 넘쳐 보였다. 청동의 푸른빛이 인상적이며 다리에 잔가지가 많이 나 있는 듯한 모습이 야성미를 더했다. 메탈감과 색감이 주는  웅장함이 어우러져 압도감을 주었다. 이 크고 털이 많은 덩치 큰 미국 남성같았다.


 더비라는 곳이었던가. 이곳에 오면 한 번씩은 거기 서서 사진을 찍는 포인트가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고도 했었는데 우리는 여기가 거긴가 긴가민가하며 돌아다녀 봤지만 거기를 찾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는 걸 여행을 하는 동안 알게 되었지만 한참 쫓아다니고 보니 그렇다고 너무 쫓아다니는 것도 주체성 없어 보인다 싶었다.


 주변을 걷다가 슬슬 점심때가 되어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맨하탄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점심 먹을 데를 찾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부글거렸다. 아침에 분명히 화장실을 다녀 왔는데도 불구하고 슬슬 아파오나 싶더니 그 좁은 내 아랫배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듯 싶었다. ‘와~ 이건 사태다...’ 우리나라처럼 화장실을 쉽게 찾아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점심 먹을 식당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할 판인데 하늘이 노랗게 보일 지경이고 브루클린 다리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나 빼고 다들 행복해 보였다. 어제 시원하게 먹은 이국적인 랍스터에 내 대장이 놀랐나보다. 온 힘을 집중해서 괄약근을 조이고 아랫배를 부풀린 채 점심 먹을 식당을 부랴부랴 찾았다.     


 하지만 웬걸 아무데다 그냥 들어가려고 하는데도 찾으려니 또 그저 그런 식당 하나잘 보이지가 않았다. ‘아...이건 완전 대형 참산데...’ 내 안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느끼며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견뎌내며 내 인내력의 극한을 발휘하며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였다.     


 가까스로 식당을 발견했지만 이런 내 속을 알리 없는 승연이가 여긴 별로라며 다른 데로 가자고 했다. ‘뜨악!!’ 지고 싶지 않았다. 약한 말로 별로라도 그냥 들어가자고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참을 수 있다. 난 참을 수 있어.’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심지어 분노마저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그 화력으로 나를 버티며 다음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머지않아 꽤 세련되어 보이는 식당이 나왔고 승연이의 컨펌 후에 그 식당으로 들어섰다.     


 자리를 안내 받기 무섭게 “메뉴 좀 보고있어.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라는 대사를 끝으로 곧장 화장실로 향했고 정말 크나큰 위기를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내 자신을 대견해했다.


 ‘하아...이번에도 이겨냈어. 잘했어.’ 고생한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었다. 화장실을 ‘해우소’라 이름 붙인 우리 선조들의 센스에 찬사를 보냈다. 게다가 옆 사람에 일말의 티도 내지 않고 위기를 넘어서다니 기특했다. 어릴 때부터 IBS를 앓아 온 나에게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언제 이럴지 알 수 없으니 매 순간을 준비 하고 있을 순 없다. 그저 타이밍만 좀 맞춰 주기를 바랄 뿐이다.      


  천신만고 끝에 사선의 경계를 넘어 완전히 hollow 해진 몸으로 자리로 왔다. 승연이는 아직 주문을 하진 않고 있었다. 메뉴판을 보다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주재료가 빵인 듯한 음식을 주문했다. 맞게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문에 미슐랭이라고 읽힐 법해 보이는 듯한 단어가 적혀 있는 스티커가 년도 별로 여러장 붙어 있었다.   

   

 “우와, 여기 뭐지? 그 말하는 미슐랭 거기 인가? 우연히도 어마어마한 곳에 들어온 것 같네. 진짜 내가 들어본 그 미슐랭 맞나 여기?”

 “그러게요. 진짜 그런가?”

 “고급 레스토랑 같은 데만 찍어 주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네.”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갑자기 기대가 되는 걸?”


 하긴 그런 거야 사실 아무려면 어떠랴. 일단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법한 상황을 맞을 뻔 한 나를 구해준 식당이었으니 그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거기다 또 요리들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미슐랭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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