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아픈 마음을 품고 산다는 건 너무 외롭고 괴롭다.
죽은 사람의 냄새가 진동한다.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천천히 사람들로부터, 분리가 된다.
인간관계, 하는 일 사는 삶의 전반이 모두 무너질 때 이 사람만은 내 곁에 평생 있어줄 것만 같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가족들이, 여전히 폭력을 휘두른다.
나는 힘이 없다. 몸은 점점 더 굳어가고 등은 굽어지고 입은 닫힌다.
그렇게 통증이 오래가니까 결국 무너졌다.
오랫동안,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혼자 싸워야 했다.
일단 도망갔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용기가 없었다.
영원히 혼자가 될 것만 같아서.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그게 나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몇 년간 겪고 죽고살기를 반복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 중 하나는
어둠 없이는 절대 빛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
인생이라고 다를 리 없더라 -
행복은 여간해서 그 실태를 알아차릴 수 없지만,
불행을 배우는 순간, 불행과 다른 행복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다.
행복에 대한 갈망은 불행한 가운데 키워진다.
절망적인 운명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는 한,
희망의 본질에서 빛나고 있는 삶의 비밀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다.
평범한 어느 날에, 어떤 무엇에 '내가 생존했구나'
'나 지금 꽤 살만하구나'
'극복하고 있고 많이 좋아졌다.' 하며 혼자 광광 운다.
살다 보니 때를 놓친 것, 사라져 버린 것,
엉망이 되어 버린 것, 말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 쌓여 갔다. 참을 인자로 가슴이 가득 찰수록 입이 꾹 다물어졌다. 토사물 같은 말을 쏟아내긴 싫었던 거 같다.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실즈가 자기는 말을 더듬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는데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없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글 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안전한 수단이고,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나를 이해하는 수단이었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뒹굴더라도 연꽃 같은 언어를 피워 올린다면 삶의 풍경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미련이 내게 준 선물이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 사는 일들이지만 죽지 않고 생존하고 악착같이 살아가려는 모습이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평범하고 별 다를 것 없는 일상, 남들이 다 그렇게 살듯이 적당히 살다가 -
지나가다가 -
어느 날 평범한, 어느 날에,
어떤 무엇에-
'내가 살아있구나, 나 지금 살려고 애쓰는구나.'
하며 광광 운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거나,
내가 죽거나 모두가 죽고 나만 홀로 남겨지는 그런 꿈을 꿔보지 않았대.
나는 살고 싶다.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사람들은 걱정되고 슬프지만 웃어야 하는
이런 순간들을 아이러니하다고 말하지만,
해가 쨍하니, 해가 떠있으니 곧 맑게 갤 거라는 마음. 비가 와도 괜찮아질 거라는 마음.
혹은 비가 와도 괜찮다며 웃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살아있다는 것은
자주 뭉클해지는 것,
자주 울컥하게 되는 것.
나는 누구보다 내 행복을 바라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