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인사
오늘은 엄마가 나를 보러 여기까지 오셨다.
백화점에 데리고 가더니 신발 한 켤레와,
코트를 사줬다. 응? 갑자기요?
생전 안 하던 행동이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속옷한벌,
아니 양말 한 켤레 사준적도 없는 사람이다
나 추워 보인다고 명품샵에 데려가서
덥석 머플러도 사줬다.
지금 와서 여태껏 하지 못한 엄마역할에 대한 미안함이라도 밀려오는 걸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거야 이상하게.
죽을 때가 다돼 가나.'
너무 낯설어서, 어색했다.
우리는 같이 밥도 먹었다.
같이 밥도 먹었다. 나는 엄마랑 같은 식탁에서
밥을 함께 먹은 적이 있었나? 기억도 안 난다
학창 시절엔 매일 할머니가 밥 해주시거나
아빠가 김치볶음밥해주고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근데 지금 와서 둘이 밥을 먹다니?
진짜 어색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나랑 말도 잘 안 했었다.
내가 먼저 엄마에게 다가가서
애교 부려도 엄마는 귀찮다며 저리 가라 하고
다리 주물러라는 것만 시켰다.
함께 밥을 먹는데 엄마는 밥을 잘 먹지 않았고,
내가 먹는 모습만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는 배부르다면서.
'안 먹을 거면 왜 밥 먹자고 하는 거야'
그러곤 주차장에서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내손을 꼭 잡았다.
그 손 끝에서 알 수 없는 마음이 내 가슴속에서 요동쳤다. 뭉클했다. 뭔가 슬펐다 왜지?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손끝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가슴 깊은 곳을
세게 건드렸다. 뭉클했고, 이상하게 슬펐다.
엄마의 눈동자와 손에는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어색했고,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들었다.
'아 왜 오늘따라 안 하던 행동하는 거야
낯간지럽게.'
그땐 짜증 냈지만 엄마의 눈빛에서
외로움, 슬픔이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엄마는 울었다.
울면서 나를 안아줬다.
그리고 말했다.
처음이었다. 엄마가 나를 안아준 것도,
사랑한다고 말해준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나는 엄마가 왜 울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때는 왜 그렇게 울었는지 묻지 않았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끝내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괜히 소리치면서 말했다.
'나이 먹으니까 나한테 못해준 것들이 생각나나 보지?' 라면서.
암튼 그렇게 헤어졌는데, 지금도 마음이
계속 찝찝하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날의 장면은 내 안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감각처럼 맴돈다.
어색했고, 늦었고, 눈치채지 못했고,
그래서 더 깊이 남아버린 하루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그대로 슬프게 기억하고 있다.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
엄마가 이곳에 다녀간 지 이틀째 되던 날,
오늘 전화가 왔었다.
익숙한 질문이었다. 예전에도 가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끔 했던 말이다.
일도 피곤하고 짜증 나서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마냥 가볍게 들리지가 않았다.
또 사랑한단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랑'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한다 계속 사랑사랑타령을 한다
마음이 계속 걸린다. 어디 아픈가?
그 말을 받아내는 방법을 모르겠어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알겠다 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근데, 전화를 끊었는데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저려왔다
엄마의 목소리, 조금은 떨리던 숨결이 뒤늦게 밀려왔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자꾸 사랑이라는 말을 했을까
마음이 자꾸 걸린다
괜히 불안해졌다 어디 아픈가? 아무래도 조만간 고향에 다녀와야겠다.
나는 그 사실을 그날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어떤 순간들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억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끝나버린 시간으로 남는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서야 이해했다.
그때는 몰랐고,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다.
사람은 늘 그런 거 같다.
중요한 순간이 지나가고 나서야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조금'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 알지 못한 채,
놓쳐버린 채 살아간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알게 되었다.
처음이 마지막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나가지 않은 것들이
다시 나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마지막으로 나를 보러 왔던 날의 기록은
유독 오래 붙잡았고,
감정소모가 심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엄마는 그날,
울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 순간이 어색해서 그 마지막 온기를 밀어냈다.
"왜 안 하던 짓을 해."
그 말이 엄마를 향한 마지막 말인지도 모르고.
엄마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기를 썼다.
그날의 감정을, 그날의 어색함을
그저 평범한 하루처럼 적어 내려갔다.
그 문장들 속에는 이별의 기척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읽으면 더 아프다.
지금 그 일기를 다시 읽으면
내가 놓쳐버린 것들이 많아서 나는 조용히 운다.
죄책감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늦게 도착해서 더 깊이 박혔다.
그리움도 그랬다.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몰랐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넘겨버렸다.
나는 결국,
엄마의 마지막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그 사실은 지금도 내 안에서 끝나지 않은
어떤 알 수 없는 감정들로 뒤섞여 남아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멈췄다.
숨이 막히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문장을 더 이어갈 수가 없어서.
그래도 쓴다.
나는 이겨내고 싶다.
겉으로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J를 만나면서 진흙탕 같은 시간 속을 몇 번이고 넘어지며 지나왔지만,
그리고 엄마의 죽음,
그 안에서 연꽃 같은 문장 하나라도 피워낼 수 있다면
내 삶은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그 믿음이 내가 이 시간을 견디는 이유다.
이제는 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없애려 했던 시간들,
그건 결국 나 자신을 외면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생각한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떠나기 직전에야 비로소
마음을 말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어떤 사랑은
너무 늦게 도착한다.
그리고 남겨진 나는, 그 마지막 문장을
다 읽지 못한 채 평생 붙잡고 산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늦지 않기 위해
말하려고 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끝까지 닿는 말을 남기기 위해서
나한테 만큼은 솔직해지기 위해서.
하지만, 막상 입을 열려고 하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분명 수많은 문장들이 많은데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모두 끊어지고
손을 덜덜 떨고 있다.
나는 J와, J가족들 앞에 서면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미 말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은 있었지만,
형태를 가지지 못하겠고,
생각은 있었지만,
문장으로 이어 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침묵으로 돌아갔다.
말하려 했던 순간이 오히려 나를 더 무너뜨린다.
'어.. 엄마..'
엄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언어
'엄마. 나 어쩌면 좋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