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리가 끝난 후
다시 내 자리로 가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J와 H, 그들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문 앞에는 소금이 놓여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소금을 내려다봤다.
누군가 나를 위해 놓은 것인지, 아니면 나를 막기 위해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위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집 문턱을 넘으려 하자 안에서 어머님이 소금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내 쪽으로 흩뿌렸다.
하얀 알갱이들이 머리와 어깨 위로 흩어졌다.
내가 부정 타는 사람 마냥,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 말이 끝나자 문에서 나를 밀어냈다.
나는 소금을 잔뜩 뒤집어쓴 채 목욕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몇 걸음 못 가서 길가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 집안에서, 가장 조용한 타인이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며칠을 버티던 몸이
그제야 힘을 놓았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그 집 문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끝내 혼자가 되었다는 걸 알 때 운다는 걸.
너무 서러워서 주저앉아 버렸다.
'장례 치르느라 고생 많았다'
라는 위로가 필요했는데.
J가 나를 꼭 안아주면서 위로해 주길 바랐는데.
예상외의 모습에 너무 서러웠고, 외로웠다.
그렇게 목욕이 끝난 후 아파트 앞에서 H와 마주쳤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중에 옷깃이 스쳤다.
H가 더러운 오물이 묻은 것처럼 옷을 털더니
'이야기 다 들었어 울고 싶고 힘들면 밖에서 풀고 와 괜히 집에서 우리 가족이
너 눈치 보게 하지 말고.
그리고 가게도 다음 주에 복귀해
일 바쁘고 몸이 고단하면 마음 힘들 여유도 없어 빨리 정상복귀해. 그게 너 정신건강에 좋다.'
순간 머리가 삐 -
H에게 뭘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H의 직장, 아니 나의 직장도
엄마가 죽고 13일 만에 가게에 복귀했다.
눈치도 보였고, 정말 바쁘게 일하다 보면
몸을 계속 움직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나는 몸이 고장 나버렸다. 쉴 수 있을 때 쉬고
충분히 아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그리고 맘껏 슬퍼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애도기간을 가지지 않았다.
엄마가 죽고 나서 엄마의 물건들도
곧장 다 버리고, 태우고, 팔아치웠다.
빨리 다 정리하고 끝내고 싶었다.
하루는 음식을 하다가 칼에 손가락이
베어서 피가 많이 흘렀다. 흐르는 피를 보자마자
'어.. 피다' 하며
뚝뚝 떨어지는 피를 계속 바라보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바닥에 붉은 점 들이 하나씩 번져갔다.
그걸 보고 있는 동안,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졌다.
몸 안 어딘가가 갑자기 꺼져버린 것처럼 힘이 빠졌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조여왔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숨을 쉬려고 발버둥 쳤다. 그런데 그 순간,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가 죽어있던 집.
벽과 바닥을 닦아내던 내 손.
걸레를 짜낼 때마다 올라오던 그 피비린내.
그 냄새가 갑자기 코끝을 찔렀다.
실제로는 아무 냄새도 없는데,
분명히 그 냄새가 났다. 나는 몸을 웅그린 채 소리를 질렀다. 가슴을 주먹으로 마구 쳤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바닥에서 몸부림쳤다.
그날 처음 알았다.
어떤 기억은 끝난 것이 아니라 몸 안에 그대로 살아남아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겪은 첫 번째 트라우마였다.
J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중에
119를 불러 진정제를 맞은 뒤 안정을 찾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현장에 H나, 어머님이 없었다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앞을 쳐다보는 게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H의 말대로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가게에 있을 때 외에는 모자를 매일 쓰고 다녔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푹 눌러썼다.
모자를 쓰면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매일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약 과다복용으로 하루 종일 눈꺼풀이,
동공이 풀려있는 걸 가리려고 그랬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내가 그렇다.
하루 종일 눈이 풀려있었다.
영혼 없는 사람의 동공.
그래서 나는 거울을 잘 안 보게 되었다.
우연히 내 모습을 거울로 보면 엄마모습이 보인다.
엄마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반쯤 감긴 눈 초점 없는 눈동자
한 날은 저녁 10시 30분에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주저앉아버렸다.
펑펑 울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모두 가린 채로. 너무 지쳐있었다.
알 수 없는 영역에 서 있다. 부팅이 되지 않는다 풍경도 없고 소리도 없다.
전혀 틈이 없는, 이름도 없는 공간이 내 안을 천천히 부풀리듯 채운다.
나는 그곳에 붙박인 사람처럼 오래 서있다.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다. 무서웠다.
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도, 가게에서 일하는 시간도..
슬픔과 무기력,
서러움 같은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나는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혼자 매일 울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울기만 했다.
울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감정은 계속 쏟아지는데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단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이건 감정이 아니라, 이미 무너진 상태라는 것을.
나는 슬픈 사람이 아니라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날부터 나는 살아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쪽에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