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온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야간등산을 하고 왔다.
정상까지 이어진 길은 가팔랐고, 숨도 가팔랐지만 그 끝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정말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순간 행복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날밤,
나는 그 풍경의 여운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몸 어딘가에서 금이 간 것처럼 복부가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익숙하면서도 잊고 싶었던 그 냄새.
머릿속은 순식간에 과거로 무너져 내렸다.
J와 있었던 시간들, 엄마아빠의 죽음.
기억들은 순서 없이 들이닥쳤다
나는 그 안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는 라면을 네 개 끓였다.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채워 넣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뜨거운 국물을 삼키면서 나는 라면냄새를 음미했다.
아무것도 다른 냄새도, 느끼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수면제를 먹고 자려고 누웠다.
깨어있는 나를 끊어내기 위해서 좀 더 일찍 누웠다.
하지만 불안은 약보다 빠르게 몸을 파고들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가슴을 내리치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였다.
또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다 문득, 미리 준비해 둔 번개탄을 꺼냈다.
화장실로 들어가 창문을 막았다 틈이 없도록.
불을 붙였다. 생각보다 잘 붙지 않아서 나는 다시 부엌으로 나가
불을 옮겨왔다.
그 짧은 사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엄마는 어떻게 불을 붙였을까?
나는 미리 모아두었던 약봉지들을 꺼냈다.
서른 두 개였다. 싸구려 와인을 마시고
거의 한꺼번에 목안으로 밀어 넣었다. 씹었다.
와그작와그작.
그리고 술을 들이켰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유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종이를 꺼냈고,
펜을 잡았는데 아주 작은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죽고 싶은 게 맞을까..'
하지만 그 질문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그게 뭐가 중요해.'
손이 떨려서 글자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눈물이 떨어져서 잉크가 번졌고, 나는 몇 번이나 멈춰 섰다.
사과할 사람도 없고, 설명할 이유도 없고, 전할말도 없었다.
나는 마지막까지도 아무에게도 닿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죽으려는 순간 생각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 인생 어떻게 산건가 허무했다 내가 사라져도 슬퍼할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 내가 사라져도
내 죽음이 아무에게도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의 삶에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다.
남겨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울게 했다.
나는 유서조차 남기지 못할 만큼,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빨리 끝내고 싶었다.
이왕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삶이라면, 이대로 조용히 사라져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았다.
붙잡힐 이유가 없다는 건 떠나도 된다는 뜻 같았다.
손에 잡히는 것들을 하나씩 치웠다.
그건 준비라기보다는, 마무리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 멈춰서 주변을 둘러봤다.
늘 보던 내 방인데, 이 날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이곳에서 더 이상 이어질 일은 없다는 것처럼.
나는 모든 문을 닫았고, 창문도 막았다.
번개탄에 불이 붙었고, 탄 냄새가 화장실 가득 채웠다.
숨이 조금씩 무거워졌고, 생각은 천천히 흐러졌다.
숨이 막히고 눈과 코가 동시에 타들어갔고,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물이란 물은 흘러나왔지만
몸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약 때문인지, 현실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써진 것처럼
모든 감각이 흐릿해졌고, 눈이 서서히 감겼다.
그 순간 엄마가 죽은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샤워기 헤드를 집어 들고, 있는 힘껏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고통이 와야 했는데 고통대신 이상하게도
쾌감이 올라왔다.
숨이 끊어질수록 몸은 더 가벼워졌고
머릿속은 더 조용해졌다.
이대로 몇 분이면 끝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정말 뜬금없이,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우림 콘서트 가기
일본 여행 가보기
벚꽃구경
놀이공원 가서 혼자 맘껏 놀이기구 타보기.
아직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들, 해보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그 장면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이상하게 억울했다.
그게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뒤늦게 밀려온 삶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결국, 엉기적거리며 화장실을 빠져나와서
핸드폰을 찾았다. 귀에 대고 있었는지,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다는 것만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다.
119에 전화를 걸었다.
3월 23일 01시 11분 oo119 안전센터 출동기록.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다음은 구원이 아니었다.
다니던 병원으로 갔지만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아니,
내가 기초수급자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 진료는 거부되었다.
나는 응급차에 실린 채 병원을 몇 곳이나 더 떠돌았다.
일명 응급차 뺑뺑이.
결국 도착한 곳은 병원이 아니라 경찰서였고,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지만 너무 위험하다며, 오늘 하루만 경찰서에서
보호를 받아라고 했다. 그날 밤, 나는 경찰서 한구석 바닥에서 잠들었다.
다음날 복지센터 직원이 왔다. 나는 가기 싫어했지만
거의 끌려가듯 병원으로 향했고, 강제입원 조치가 내려졌다.
두 번째 입원이었다.
그때 나는, 살아남은 것을 후회했다. 왜 멈췄을까,
몇 분만 더 버티면 끝났을 텐데
도대체 무엇이 나를 붙잡은 거지?
병원의 시간은 길고, 무겁고, 쉽게 끝나지 않았다.
죽고 싶다는 감정이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해되지 않았고,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J를 만나고부터였을까
엄마의 죽음, 아빠의 죽음 이후였을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전, 처음부터 잘못 놓인 삶이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조울증을 앓는 사람의 15%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고.
그 문장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 숫자 안에 내가 포함될지 아닐지.
한때 나는 밝고, 활발하고, 잘 웃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그런 사람은 없었던 걸까.
나는 원래부터 예민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태어나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 질문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남아있다.
지금도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는 하루 속에서
갑자기 그날의 감각이 아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이유도 없이 숨이 막히는 것 같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순간들.
그럴 때면 나는 직감한다
아직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모든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어떤 것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어떤 감정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삶이란 모든 것이 정리된 상태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조금씩 이어가는 것이라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무게가 아주 조금 많이 무겁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